퇴사 8개월 차 백수의 독립출판으로 내 책 만들기
퇴사 후 사무실 대신 매일 가는 집 앞 투썸플레이스 2층 커다란 창문 앞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 시간을 축이고 있는데 메일함 알람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창작자님. 창작자님의 프로젝트가 승인되었습니다.”
나흘 전 텀블벅에 올린 프로젝트가 승인되었다는 알람. 드디어 생애 첫 책이 세상이라는 시험대에 오르는구나. 펀딩은 초반에, 특히 첫날 펀딩 달성률이 높아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강사님의 말씀이 스쳐 지나났다.
카카오톡을 열어 채팅방 목록에 들어가 친한 지인들에게 펀딩 링크를 조심스레 보내기 시작했다. 일명 지인 찬스. 사실 가까운 사이라고 다 후원을 해주는 건 절대 아닐 거다. 지갑을 여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며 어떻게 펀딩 글을 써야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글 속에서 내 책에 관심을 가져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우선 눈에 띄어야 사람들이 한 번이라고 클릭해서 읽어보고 사든지 말든지 결정할 거 아닌가. 지인들이 구매하지 않고 글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까닭이었다.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펀딩 대표 이미지부터 프로젝트 소개, 예산, 펀딩 일정, 창작자 소개, 리워드 설명까지. 글을 작성하기 전에 레퍼런스부터 수집했다. 그동안 올라온 성공한 펀딩 이삼십 개를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며 최종적으로 참고할 만한 글 두세 개를 고심해 선택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니 너무 많은 레퍼런스는 오히려 독이라고 생각했다. 내 콘텐츠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하고 나니 두세 개로도 충분했다.
대표 이미지로 쓰일 책 표지는 구글에서 ‘book mockup psd free’로 검색해 목업 파일을 찾아 포토샵으로 만들었고, 책 소개와 표지, 목차 및 책 구성, 책 속 문장, 서지 정보, 작가 소개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글을 시작은 책을 쓰게 된 계기와 어떤 내용을 담은 에세이인지에 대한 책 소개와 앞표지와 뒤표지, 책등이 보이는 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 두 장을 첨부했다.
책 구성은 목차와 책에서 보여주고 싶은 글과 사진을 추려 10 페이지 내외로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읽는 사람이 피로해서 읽다가 그냥 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문장 세 개를 골라 책 속 문장으로 소개하고 책의 판형과 쪽수, 제본 방법, 표지 및 내지 용지 종류, 가격을 표기한 서지 정보를 작성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의 첫 책이기에 작가 소개도 고심해서 썼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구구절절 말할 수 없으니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링크를 첨부하고 그 아래에 소개 문구를 서너 줄로 간략하게 적었다.
마지막으로 텀블벅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리워드 설명. 사진이 들어간 여행 에세이집이라 책 속 사진으로 엽서, 책갈피, 포스터 등 사진으로 만들 수 있는 굿즈는 많았다. 그 많은 걸 다 만들 수도 없고 선택지가 너무 많아도 선택하는 사람이 피로하기 때문에 엽서 하나만 만들기로 결정했다. 펀딩 성공 시, 후원해 주신 모든 분께 엽서 2종을 무료로 증정하고 A 세트, B 세트를 만들어 원하는 사진의 엽서를 고를 수 있도록 선택지를 두었다.
펀딩률 210% 달성, 모인 금액 1,052,000원, 후원자 45명으로 펀딩을 마쳤다. 감사하게도 지인분들이 첫날부터 후원해 준 덕에 이틀 차에 펀딩 100%를 달성할 수 있었다. 거의 7할은 지인들 지분이니 이번 펀딩은 지인분들의 응원이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 묵묵히 펀딩해 주신 분도 계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며 두 권씩 사준 분도 계셨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헛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펀딩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며 두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첫 펀딩은 지인들의 도움이 크고 받을 수 있지만 그다음부터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 한 번이야 처음이라는 명분으로 염치를 무릅쓰고 지인들에게 홍보할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나만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두 번째는 펀딩 하려는 제품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여줄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고 한들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으니 말이다. 무언가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마케팅과 브랜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첫 책을 출간하며 깨닫고 배운 것들로 부족함을 채우다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진 모습의 나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고여있지 않고 흐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날 두 번째 책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