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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지 Dec 01. 2023

Sunset Beach Yoga at Bali

발리 선셋 비치에서 요가를

물구나무 서서 해가 지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살면서 처음으로 몸이 뒤집혀서 노을 지는 걸 바라보는 데 장관이었습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목덜미 뒤로 살랑거리는 바람, 해변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는 노을. 줄에 거꾸로 매달려 석양에 감탄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런 제 모습이 신기했던지 열심히 사진을 찍어 가더라고요.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요.



무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2019년 8월의 어느 날, 여름휴가로 발리에 있는 작은 섬 ‘길리 트라왕안’으로 떠났어요. 왜 여기로 떠났냐고요? 최대한 한국인 없고 푹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거든요. 섬 안 이동 수단은 딱 2개, 말과 자전거예요. 시끄럽고 매연을 내뿜는 교통수단은 없어요. 바다 거북이를 보며 스노클링 할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까지. 평소였으면 이것저것 고려해서 여행지를 선택했을 텐데 이번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떠났습니다. 머리를 비우고 싶었나 봐요.



5박 6일을 한 숙소에서 지냈어요. 덕분에 직원인 Eta랑 친해져서 매일 일정을 공유했어요. 그날 숙소 오는 길에 요가원을 발견해서 오후엔 요가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추천해 줄 곳이 있다며 ‘Sunset Beach Yoga’라는 곳을 알려줬어요. 해변 앞에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얼마 전에 가보니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해변 앞에서 요가를 하는데 노을까지 볼 수 있다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당장 그날 오후 예약을 했어요. 요가원에 도착해 이름을 적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소개로 왔다면서 Eta 이름을 말하니까 “아, 너희구나? Eta가 오늘 우리 숙소 손님들 갈 거니까 잘 부탁한다고 전화가 왔어.” 4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당시에 느꼈던 따뜻한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녀의 사소한 배려가 절대 사소하지 않은 고마움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어요. 심지어 여기는 아무도 모르는 타지잖아요.



수업은 해변 앞 오두막에서 진행됐어요.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 필리핀계 남자 선생님, 중국인 청년들, 캐나다에서 혼자 온 여성분, 사이좋은 백인 커플과 친구와 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수련하는 내내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어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말이죠. 참 신기하죠? 특히 마지막 동작을 할 때는 그들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졌어요. 혼자였으면 덜 했을 감동이 함께여서 더 크게 느껴졌거든요.



마지막 동작은 줄에 다리만 걸고 거꾸로 매달려 노을 지는 해변을 바라보는 거였어요. 그냥 서서 바라보는 석양이랑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죠. 피가 머리로 쏠려 그만 올라오고 싶다가도 경이로운 풍경에 어떻게든 버티게 되더라고요. 석양은 그대로고 바라보는 자세만 바뀐 건데 완전히 다른 광경을 보는 듯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요. 그 황홀함에 방금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까지 들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여행지에서 우연히 요가 수업 하나 듣고 온 거잖아요. 그런데 다녀와서 마음가짐이 꽤나 달라졌어요. 생각을 줄이고 우선 행동하자는 거예요. 마지막 동작이 힘들다는 걸 미리 알아서 ‘과연 저 자세를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 고민만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평생 볼 수 없었겠죠. 고민만 하다가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고 후회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앞으로는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려고요. 일단 시작하면 길은 열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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