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그림과 생각
태생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봉건 사회는 불평등했다. 그래서 능력에 따라 직업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지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믿음이다. 오랜 시간 학습과 수련을 거치면 누구나 최고의 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능력주의의 예루살렘인 미국에서 의심이 싹트고 있다.
문제는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표준화돼 있으며 획일적이라는 데 있다. 한마디로 사다리 오르기 방식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비슷한 내용을 배우고 같은 시험을 쳐서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등급별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지려면 또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은 대개 비슷하다. 표준화돼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려내 떨어트리는 방식이다. 이후에도 경쟁과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동료 혹은 같은 직종의 다른 회사 사람들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한 소수의 사람이 승진을 하거나 높은 연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엘리트'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진다.
이런 방식이 평등한가? 공정한가?
3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각 개인이 다양한 방면의 능력을 타고나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와 동기 부여되는 학습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모두 같은 시험을 치러서 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억울한 사람을 아주 많이 만들어 낼 것이다.
둘째,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유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 역시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패배자들이 많아진다.
셋째, 표준화된 평가를 바탕으로 한 능력주의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심지어 사다리를 제일 먼저 올라간 엘리트조차 불행하다. 그들은 그동안 이룬 것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능력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없다. 또 자녀가 자기처럼 엘리트가 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돈은 물려줄 수 있지만 능력을 물려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학교, 기업, 국가의 효율적 운영이 목적인 시스템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조직의 효율이 아니라 구성원의 충족감과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인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족: 상류층에게도 현재의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미국의 상류층 자제들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지 않고도 부모가 나온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한 뒤 부모가 일군 사업체나 부동산을 물려받아 유유자적하며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 상류층 자제들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부모는 대학이 원하는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퍼붓는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에 가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거나 월스트리트에 들어가 고액 연봉자가 된다. 야망이 더 큰 사람들은 실리콘벨리에서 창업에 성공해 IT기업의 CEO가 돼 일반 근로자 수십만 명의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 곧 자산이다. 이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단련하고 혁신해야 한다. 과거처럼 부모가 물려준 기업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 먹고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