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그림과 생각
한동안 해외에 머무르다 귀국했을 때였다. 지하철을 탔는데 분위기가 낯설었다. 왜일까. 찬찬히 살펴보니 승객들 태도 때문이었다. '누구든 건드리기만 해 봐. 가만 있지 않을 거야.'라는 표정들. 나이 성별 불문하고 모두 화가 나 있었다. 전에는 나도 마찬가지 상태여서 인식을 못했던 것 같다.
불법 투견 도박을 취재한 적이 있다. 투견의 룰은 잔인하고 단순하다. 싸우다가 도망치거나 죽으면 진다. 그리고 패배하게 되는 또 하나의 룰이 있다. 먼저 짖으면 진다. 훈련받은 투견은 웬만해서는 짖지 않는다. 살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더라도 짖는 경우는 드물다. 짖는다는 것은 투견에게 있어 공포에 질려 싸우기를 포기한다는 표현이다.
사람도 그렇다. 공포에 질려 있거나 두려움에 휩싸여 있으면 오히려 화를 낸다. 목소리를 높이고 싸움을 건다. 누군가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지금 무서워 죽을 것 같아요. 나 좀 살려주세요.'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공포의 대가 스티븐 킹은 공포라는 감정을 3가지로 분류한다.
1. gross-out: 질병을 유발하거나 비위생적인 대상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역겨움과 연결된 감정
2. horror: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 즉 자연재해나 전쟁, 맹수 등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감정.
3. terror: 자신이 안전한지 불안전한지 알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