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째 그림과 생각
많은 사람 앞에서 혹은 소중한 사람 앞에서 망신당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최근 일이 아니라면 아마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 뇌의 기억저장소 제일 밑바닥에 꼭꼭 숨겨 두었을 테니.
굴욕을 되새기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경험이어서 누구나 잊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굴욕을 당한 직후 드는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거나 '그냥 콱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은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정신적인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를 남기게 마련이어서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을 나도 모르게 회피하게 된다. 첫사랑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뒤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하고 어릴 적 학급 친구들을 앞에 두고 발표하다 웃음거리가 된 경험 이후 무대공포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굴욕을 도약의 계기로 삼는 사람이 있다. NBA의 최고 독종,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의 인터뷰를 들어 보자.
기자 : NBA 데뷔 시즌 유타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3개의 에어볼(림도 맞지 않고 빗나간 슛)을 던졌죠.
코비 : 아마 5개였을 걸요?
기자 : 그때 말론이 와서 뭐라고 했어요. 물론 당신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요. 그리고 샤크도 와서 귓속말을 했죠. 그때 뭐라고 하던가요?
코비 : 모르겠어요.
기자 : 기억이 안나는 건가요?
코비 : 아뇨, 아예 듣지도 않고 있었죠. 저의 ‘asshole’ 같은 면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마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했을 텐데. 저는 ‘난 X발 괜찮다고!’라고 생각했어요. ‘뭐 전국 생중계 방송에서 에어볼 5개쯤 쐈지. 그것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난 18살이잖아. 괜찮아.’이런 생각이었죠.
기자 : 그러한 굴욕을 겪고서 어떻게 멘털 관리를 하나요? 발보사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유능한 선수임에도 중요한 순간에는 늘 흔들렸죠. 어떻게 정신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거죠?
코비: 순간 현실을 직시하는 거죠. 결국 자신을 극복해야 해요.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니니까요. 창피당했다고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잊어버려야죠. 사람들이 어떻게 날 생각할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왜 에어볼을 5개나 던졌는지를 알아내야 해요. 고등학교 때는 일 년에 최대 35 경기를 했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경기쯤이니 충분히 쉴 시간이 있었죠. NBA에서는 늘 back-to-back(이틀 연속 경기)이에요. 체력이 모자랐던 거죠. 그때 슛을 보면, 방향은 모두 정확했지만 거리는 모두 짧았어요. 그래서 체력을 키워야 했어요. 훈련 방식도 바꿔야 했고요. 웨이트 프로그램도 82경기에 맞춰서 조정했죠. 플레이오프에 들어가도 다리 힘이 약해져 슛이 짧아지지 않도록요. 이유를 찾아야 해요. ‘에어볼은 체력이 문제였어. 그럼 체력을 길러야겠군.’ 그럼 끝이죠.
그렇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왜 실수했는지 잘 생각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노력해서 보완하면 그만이다. 어렵지만 그럴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사족: 올더스 헉슬리의 말도 경청해볼 만하다.
"만성적인 자책감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잘못을 뉘우치며 능력껏 그것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 다짐해야 옳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에 두고두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이 몸을 깨끗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