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그림 한 점, 생각 하나
시작하면서
아내는 사람들의 치아를 치료하고 학생을 가르칩니다.
남편은 방송에서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틈 나는 대로 여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십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남편은 글을 씁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모인 그림과 글을 묶어 보았습니다.
함께 즐기고 생각해 보면 참 좋겠습니다.
P.S 그림 속에는 작은 낙서 인간들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찾아보세요. :)
1. 역치
자신과 역치가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곤혹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애인이 잘 씻지를 않아 불편을 느낀다면 이렇게 말을 꺼내보자.
"자기는 더러움이라는 자극에 대한 역치가 매우 높구나. 난 좀 낮은 편이거든."
"넌 왜 그렇게 씻는 걸 싫어하니"라는 말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평화롭게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족: 역치는 훈련을 통한 조절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도하다.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더 큰 자극을 주기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감각의 순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때 속옷을 다른것으로 갈아입으면 그 즉시는 촉각을 느끼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옷이 피부에 닿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지는 경험과 같은 것이다.
2. 사랑
사랑을 느끼는 4가지 유형
▶스킨십 (고양이) type
단순히 등을 쓰다듬는 행위부터 성관계까지, 스킨십이 사랑의 핵심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접촉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은, 똑같이 그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관심 (카나리아) type
함께하는 시간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이런 식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스킨십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를 위해 뭔가 해주는 것도 크게 바라지 않는다. 특히 얘기를 잘 들어주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칭찬 (강아지) type
칭찬해주면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꾸짖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급격히 위축된다.
▶배려 (금붕어) type
금붕어 같은 사람이다. 금붕어는 건드릴 수 없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듣지 못하며 누가 옆에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는다. 금붕어는 오직 먹이를 주고 어향을 깨끗이 청소해주길 바랄 뿐이다.
사족: 이 4가지 유형은 개인마다, 또 상황에 따라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물론이고 나의 배우자, 애인, 자녀, 부모, 친구는 어떤 타입인지 생각해보자.
3. 친구
사족: 마당발을 부러워 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4. 우주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그것도 점점 빠르게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우주가 뜨거운 한 점에서 태어났다는 빅뱅 우주론은 우주 배경 복사가 관측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우주 배경 복사는 빅뱅 직후 최초의 빛이 탄생하며 퍼져나간 흔적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질량(은하, 별, 행성, 소행성, 혜성, 성간 구름 등의 질량을 다 합친 값)이 우주 전체 질량의 약 5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나머지 95%는?
◦은하의 속도,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암흑물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 팽창을 가속하는 밀어내는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주에는 암흑물질뿐 아니라 암흑에너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 분석된 바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 전 우주의 질량 가운데 암흑에너지의 비중은 69.2%, 암흑물질의 비중은 25.9%, 보통 물질의 비중은 4.9%이다.
사족: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의 '암흑(dark)'은 어둡거나 검다는 의미가 아니다. 관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볼 수 없다는 말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투명하다(invisible)는 이미지에 더 가깝지 않을까.
5. 천재
사족: 적절한 동기부여에 관하여 읽어볼 만한 책- <다크호스> 토드 로즈, 오기 오가스 著
6. 관계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라는 조건이 갖춰지면 B라는 사건(현상)이 일어난다고 가정하자.
이럴 경우 'A 때문에 B가 일어났다', 즉 B의 원인은 A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 A는 B의 원인이 아니다.
1. 우연
2. A 때문에 B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B 때문에 A가 일어난 경우
3. A, B 각각의 원인이 되는 C라는 사건(조건)이 존재하는 경우, A의 원인은 C이고 B의 원인도 C인 것이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어떻게 될까.
세상을 잘못 인식하거나 편견을 갖게 된다.
정책 결정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엉뚱한 곳에 돈과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사족: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는 너무나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그 예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다음은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가 쓴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 나오는 예이다.
10년 사회 경력을 가진 하버드 졸업생의 평균 수입은 12만 3천 달러, 같은 경력의 펜스테이트(Penn State University) 졸업생은 8만 7천 달러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생들을 추적한 결과, 성적과 배경이 비슷한 두 학생이 하버드와 펜스테이트를 갔다면 이 두 학생이 졸업한 후에 올리는 수입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하버드에 진학한 학생은 다른 대학에 갔더라도 그만한 소득을 올렸을 거라는 것이다. 출신 대학과 소득에 있어서는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수의 성공한 하버드 졸업생을 보여주고 성공한 펜스테이트 졸업생은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버드에 가는 것이 대단히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7. 파국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우리 문명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이 세상에는 나쁜 점도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대체로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게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스 로슬링도 무척 걱정하는 일이 있다.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 5가지 사건이다.
그 다섯 가지는 전 세계를 휩쓰는 유행병, 금융 위기, 제3차 세계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소행성 충돌이나 대규모 화산 폭발 등) 가운데 왜 이 문제들이 걱정되는 것일까?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는 예전에 일어났고, 나머지 두 가지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통받게 하며 인간의 발전을 여러 해 또는 수십 년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살인마를 막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족: 위에서 언급한 5가지 사건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는데, 바로 unknown unknowns이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들'이라는 뜻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따로 다뤄보았다.
8. 앎
세상에는 4종류의 앎이 있다.
첫 번째는 known knowns, 즉 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실험, 관찰 등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나 법칙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known unknowns,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연구 중이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면, '의식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발생했나' '암흑물질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unknown knowns,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은 질문을 던지는 추종자나 의심하는 자들에게 얘기한다.
"모든 해답은 너 자신에게 있다.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사족: 13세기 페르시아의 시
One who knows and knows that he knows... His horse of wisdom will reach the skies.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빼어난 말을 타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의 지력이 하늘에 닿을 것이요.
One who knows, but doesn't know that he knows... He is fast asleep, so you should wake him up!
자신이 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속히 잠들 것이니 당신은 그를 깨워야합니다.
One who doesn't know, but knows that he doesn't know... His limping mule will eventually get him home.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는, 절뚝이는 노새를 탄 것과 같아서 고생 끝에 결국 집에 다다를 것이요.
One who doesn't know and doesn't know that he doesn't know... He will be eternally lost in his hopeless oblivion!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희망없는 망각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을 것이로다.
9.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네 번째 앎인 Unknown unknowns,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들은 무엇인가.
행동, 계획, 실험, 관찰의 결과가 예측, 상상 가능한 범위를 완전히 벗어 낫을 때, 우리는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지동설, 진화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 세상을 보는 인류의 관점 자체를 바꿔놓을 발견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구나.'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이라크와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That is unknown unknowns."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예측하지 못한 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해 unknown unknowns 담당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 팀의 성패는 상상력에 달렸다. 아무도 상상치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내야 하는 일이다.
사족: 이런 미친 상상력은 예술가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데, 이런 천재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적지 않다. 일반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내는 창의성이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혁명적인 과학 발견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10. 존재
존재(Be)가 행동(Do)을, 행동이 소유(Have)를 결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거꾸로 생각한다. 즉 소유가 행동을, 행동이 존재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큰돈이 있으면 (have) 평소 하고 싶던 것을 마음대로 하고 (Do) 결국 행복해질 것이라고(Be).
그러나 인간은, 세상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Be) 당신은 멋지게 행동할 것이고 (Do) 결국 원하는 걸 갖게 될 것이다(Have).
무언가를 가지려면 우선 생각을 바꿔라. 그럼 행동이 달라지고 그 결과 그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믿음이다.
사족: 이런 생각을 실험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심리학, 경영학 쪽에서 이뤄지고 있고 관련된 서적-특히 자기계발서-도 매우 많이 출판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가운데 상당수는 사이비 종교에 가까우니 주의해야 한다.
11. 시간
인간은 시간이란 개념을 공간 개념으로 바꾸어서 인지한다. 시간의 흐름을 흔히 '강물' '바람' '화살' 등에 비유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뇌는 시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는 말을 상상해보자. 당신의 상상 속에서 화살이 한 대 날아갈 것이고 그 화살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마찬가지이다.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먼 기억을 '보는 것'과 같고 그것은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사물을 확대해서 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일수록 실제보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실제보다 최근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족: 시간의 본질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탈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글을 읽어 보자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의 간격(기간)을 결정하는 토대는 세상을 이루는 다른 실체들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장 field의 한 양상이다. 이 역동적인 장은 도약하고 요동치며 상호 작용할 때만 구체화되며, 최소 크기 아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12.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
◦ 회상 효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10대와 20대에는 갖가지 첫 경험을 많이 하게 되지만 60대와 70대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기회가 줄어든다. 70대의 1년은 10대 때의 1년보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단순하게 기억되기 때문에 짧게 느껴진다.
◦ 생리 시계 효과
인간의 몸속에는 생체적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몸속 시계가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 시계를 보지 않고 마음속으로 3분을 세어보라고 해보면, 젊은이들은 오차가 10~30초인데 비해, 노인들은 오차가 100초 안팎이나 된다. 젊은이들은 2분 50초나 3분 30초를 3분으로 느끼는데 노인들은 실제 시간 4분이나 5분을 생체 시간 3분으로 느낀다는 말이다.
사족: 아주 간단한 산수로 설명할 수도 있다.
10년을 살아온 어린이에게 1년이란 자기 인생의 10%이다.
50년을 살아온 어른에게 1년은 자기 인생의 2%에 불과하다.
같은 1년이지만 나이 많은 사람에게 더 짧게 느껴질 수밖에...
13. 8%
많은 고수익 금융상품들이 약속하는 금리는 연 8%이다. 왜 하필 8%일까.
5%는 성에 차지 않고 10%는 의심스럽다.
연 8% 금리로 복리 투자하면 약 9년 만에 투자금이 2배가 된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투자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적절한 수치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 전에 90년 전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을 한 번만 되새겨 보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안전한 투자를 해서 4%의 이익을 거두기보다 위험한 투자를 해서 8%의 이익을 얻는 것을 선호한다. 결국 이들은 경제적인 타격을 자주 입게 되고, 끊임없는 근심과 걱정에 시달린다. 나는 돈이 있으면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돈이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돈이 많은 것을 과시하면서 이제껏 엇비슷하게 살던 사람들을 따돌린 채 호사스럽게 살기를 원한다. 미국의 경우, 사회 계층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사회 계층이 고정되어 있는 사회에 비하여 속물성이 훨씬 강하다. 돈이 있다고 품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 품위 있게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90년 전의 미국을 현재의 한국으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을 듯.
14. 경험과 기억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경험과 기억이다.
사랑을 하고 친구를 찾는 것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도,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도, 교회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도 어떤 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기억으로 내재화된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과 기억이 한 개인의 내면을 구성하게 된다'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경험하지 않은 기억, 기억하지 못한 경험을 상상해본다.
기억을 바꾸거나 아예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경험을 했는데 전혀 기억할 수 없다면?
이미 내가 알아야 할 모든 지혜와 진리가 내 영혼에 담겨 있는데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면?
현대 의학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엉뚱하게도 깊은 종교적 체험을 경험한 사람도 그렇게 얘기한다.
경험하지 않은 기억, 기억하지 못한 경험은 '나'라는 본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험과 기억에 우선하는 '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15. 성취 혹은 성장
인생의 목적이 '성취'라고 가정해보자.
우선 성취의 대상이 필요하다.
돈, 명예, 인기, 화목한 가족(또는 공동체), 유전자의 번성 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필연적으로 성공 또는 실패라는 개념이 뒤따르게 된다.
모든 사람은 목표를 성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즉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이 '성장'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에게도 무언가 목표가 필요하다.
신체나 정신적 능력이 향상되는 것, 어떤 기술을 익히는 것, 혹은 인격적이나 영적으로 더 완성되는 것 등이 목표가 될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나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성장의 부수적 효과일 수는 있겠으나 그 자체가 성장의 목표가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우열'을 따지는 데 무관심하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나아졌는가 하는 점이다.
사족: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인 삶, 하루하루 더 나아지는 것이 목표인 삶. 대부분의 기성 세대는 후자를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선택의 여지를 주면 좋지 않을까.
16. 힘들다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졸지에 갈 곳이 없어져 버린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사람을 보라.
이들에게는 분노하거나 도움을 청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최근에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닌데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갑자기 벌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면.
가슴이 답답해서 숨 쉬기조차 어려운데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힘들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힘든 사람이 아니다.
17. 분노
분노를 표현하는 이유는 "나는 열 받았고, 네가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너도 나처럼 기분이 더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저 녀석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뜯어고치고, 나의 불만을 보상받고, 일이 올바르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하지만 분노를 표현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분노와 증오는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만 힘들게 할 뿐이다.
실제로 분노의 대상에게는 전혀 해를 주지 못 한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 독을 마시면서 적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사족: 분노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 - 분노의 시대를 사는 법 (Carol Tavris 著)
18. 보수와 진보
보수주의자들은 “공정한 세상 이론(Just World Theory)”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곧, 누군가가 성공하고 부를 얻었다면 그것은 그가 성실하고, 영리하고, 창조적이고, 위험을 무릅썼기 때문이며 성공은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가난은 게으름, 무지, 상상력 부족, 위험 회피, 자기 절제와 의지의 부족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이미 공정하며 지금 존재하는 명백한 불공정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며, 곧 공정한 사회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고 이러한 기회의 평등이 자연스러운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불공정한 세상 이론(Unjust World Theory)”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이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성실과 창의성, 위험 감수 등의 특성을 배울 수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사람이며, 또한 성공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뛰어난 친구, 가족 등의 도움을 얻었다. 따라서 가난하거나 불안정한 가족에서 태어나 사회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위험한 환경에 처했던 불운한 이들에게 사회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가진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상이 이미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제도와 전통, 신앙과 가족, 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하며 지금의 사회 제도가 놓치고 있는 약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기존 질서와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권위에 도전하고, 다양성을 지지하며, 신앙과 전통을 종종 비웃을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 무질서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을 바꾸어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족: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수와 진보 혹은 좌우로 나누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세계관, 가치관에 있어 의미있는 차이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 죄책감
죄책감은 언제 일어나는가.
부모, 국가, 종교가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일을 저질렀을 때다.
죄책감은 규칙을 어김으로써 받을 벌에 대한 두려움과는 구별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흠모하는 선생님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한 학생이 있다면, 그는 죄책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벌을 받을 것이란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더러워지고 나쁜 사람이 되었다는 불쾌한 느낌을 경험한다. 그는 이제 정의의 편, 빛의 편, 부모와 학교의 칭찬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어두움의 자식이 된 것이다.
죄책감은 개인을 위축시킨다. '더러운' 본능을 거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더러운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죄책감은 왜 필요한가. 조직, 특히 종교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그 종교와 국가는 더욱 강고해지고 창성할 것이다. 죄책감이 심할수록 이 불쾌한 감정을 깨끗이 사해줄 수 있는 권위에 더욱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종교와 국가는 죄를 매우 강조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착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당신은 착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죄 사함 받기 위해서는 종교와 국가가 정해 놓은 규정을 열심히 지키면 된다."
사족: 가족은 어떠한가.
당신은 부모가 심어준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아이에게 죄책감을 심어줌으로써 자녀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가.
죄책감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선한 인간은 사라지고 도덕이 무너진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질까?
그렇다면 죄책감이 없는 -없다고 여겨지는- 동물의 세계는 그러한가?
인간의 영혼은 죄책감이란 감정으로 겨우 인간됨을 지탱하고 있다는 말인가.
20. 마음
세상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음을 먹어봤나'라고 물어보고 싶다.
극도의 슬픔, 혹은 분노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진지하게 단 30초만이라도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생각은, 감정은, 욕망은 내 마음대로 컨트롤되지 않는다.
생각은, 감정은, 욕망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일어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각·감정·욕망이 나와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생각·감정·욕망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21. 지혜와 지식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상투적인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지식과 지혜가 반비례한다고 여긴다.
까막눈 청소부 노인이나 서양문명을 경멸하는 인디언 추장 같은 사람 이미지가 지혜로운 인간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열쇠임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지식의 양이 지혜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거나 낡은 혹은 주워들은 지식을 벼리거나 업데이트하지 않는 태도는 현명하지 못하다.
무지와 편견, 오해, 인습으로 만들어진 옛날 지도를 들고 여행을 하는 격이다.
22. 목적의 함정
야구나 탁구, 골프처럼 공을 맞히는 운동을 처음 배우게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공을 끝까지 봐라"
공이 클럽이나 배트에 맞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말고 머리를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다.
공이 맞기 전에 머리를 움직이면 스윙의 축이 미세하게 틀어지면서 정확하게 공을 맞힐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초보자는 이것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
"공을 끝까지 보자"라고 무수히 되뇌면서 타석에 서지만 막상 스윙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공을 타격하기 직전에 고개를 번쩍 들게 된다.
이유가 뭘까?
지나치게 '목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즉, 공을 정확하게 타격해서 멋지게 날려 보내겠다는 '목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공을 미처 맞히기도 전에 공이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본다.
공을 정확하게 치려면-역설적으로-공을 정확하게 잘 치겠다는 목적을 잊어야 한다. 그리고 공을 끝까지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을 멋지게 날려 보내겠다는 욕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원래의 목적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사족: 어쩌면 인생도 그럴지 모른다. 우리는 '잘 살겠다.' '멋지게 살겠다.'라는 목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잘 살기' 위한, '멋지게 살기'위한 하나하나의 실제 행동에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잘 살겠다, 멋지게 살겠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작고 실제적인 목적을 찾아서 수행하자.
예를 들면,
'정확하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자'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자'
'땀을 흘리는 운동을 꾸준히 하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아 배우자'
'고상한 유머를 구사하자'
23. 선택
'선택'을 해야 한다는 부담은 현대적인 현상이다. 현대인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부여된 신분과 그에 따른 윤리, 삶의 방식도 없다. 중세시대에 귀족 혹은 노비로 태어났다면, 살아가면서 선택해야 할 문제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직업과 배우자, 거주지는 이미 주어지거나 부모가 정해주는 것이며 당연히 재테크 방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선택에는 그에 따른 대가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선택이라면 그 부담은 한층 더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부담감을, 즉 '선택의 짐'을 회피하려는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나쁜 방식으로 회피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모든 것은 빛난다'의 저자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는 말한다.
첫 번째는 자기 확신에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모든 행동에 확실하게 뛰어든다. 그는 이 세계를 명약관화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자기 확신형 인간은 종종 강요적 인간형이 되기도 한다. 그는 충동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나머지 세상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자기 이상에 맞춰 세상을 정렬하는데 골몰한다. 이런 사람은 확신이 자신의 장점이라 믿는다. 그런 헛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은 대개 자신감의 어두운 기원을 감추고 있다. 계획들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경우에도 이들은 종종 실패한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자기 이상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진 나머지 현실에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강박이나 심취, 중독의 노예가 되어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엇인가에 이끌린 나머지 자신이 하려는 일을 아예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중독의 사례로는 마약, 게임 그밖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마저 잃게 만드는 다양한 유혹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현대적인 외피를 입고 더 부각되는 것들이 있다.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따위가 그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관심 있는 사안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친구들과도 늘 가깝게 만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일종의 망상이다. 이런 종류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정신적 침몰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최근, 최신의 포스팅에 목말라하고 가장 근래의 위기설이나 목격담, 가십거리를 끝없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 업데이트된 웹사이트들과 친구 리스트 사이를 늘 순회하는데, 마침내는 그것들이 업데이트되는 것을 보려는 이유만으로 끝없이 순회를 되풀이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또렷한 자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 일을 마친다 해도 자신을 계속 부추기는 욕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가 없다.
24. 죽음
여기 컵에 담긴 물이 한 잔 있다. 물의 모양은 컵 안의 공간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물은 다른 용기에 담긴 물과 구별된다. 어떤 강물이나 지하수, 바닷물과도 구별된다.
이 물은 온도도 변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양이 줄어들거나 늘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컵에 담긴 물은 다른 물과 구별된, 이 물만의 정체성을 갖는다.
이제 이 물을 쏟아보자.
이 물은 바닥에 잠시 고여있다가 증발하여 대기 중에 분자 형태로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증기를 만나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바다에 떨어질 것이다. 그 물은 대양의 일부분이 되어 수백 년에 이르는 거대한 순환을 하게 된다.
컵에 담긴 물을 다시 생각해보자.
이 컵에 담긴 물을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그 무엇이라고 가정하자.
자의식, 정신, 영혼. 무엇이라 이름 붙여도 좋다.
'죽음'이란 '컵에 담겨있던 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우주의 일부가 되어 거대한 순환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25. 문명
인류는 불과 몇 천년만에 지구의 겉모습과 기후를 바꿔놓을 정도의 창대한 문명을 건설했다.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문명, 특히 거대한 도시에 도취한 나머지 시간의 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천문학적 규모로 봤을 때 인류 문명이 얼마나 취약하고 의미 없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 나오는 내용이다.
앞으로 1억 년 후 미래에 바다의 상당 부분이 지구 맨틀 속으로 가라앉고,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충분치 않아 식물이 살 수 없어지고 지표면은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바위 사막이 된다면, 지구에 온 외계의 지질학자는 우리 문명의 증거를 무엇으로 알아낼 것인가?
지하 1미터 아래, 바위에 새겨진 두껍고 진한 선 하나가 우리 앞에 왔던 모두와 우리를 구분해줄 것이다. 15센티미터 두께의 거무스름한 층에 우리 도시와 자동차와 도로와 다리와 무기들이 집약되어 있을 것이다. 이전의 지질학 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온갖 종류의 화합물들 또한 함께. 콘크리트와 벽돌은 석회암만큼 쉽게 풍화되고, 가장 단단한 강철조차 쇳녹으로 바스러질 것이다. 좀 더 면밀하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가 엄청난 가축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단조로운 목초지를 일궜고, 거기에서 나온 꽃가루가 다른 종류를 압도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 지질학자는 화석화된 뼈를, 잘하면 우리 뼈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류를 포함한 야생동물의 뼈를 다 모아도 양과 소를 합친 중량의 십 분의 일에도 못 미칠 것이다. 외계 지질학자는 결국 생물 다양성이 이미 줄어들고 있는 지금이 대멸종의 시발점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6. 설득
명백히 합리적이고 옳은 의견인데 상대방이 납득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경우, 더구나 그 상대가 가족이거나 가까운 동료라면 실망하거나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상대방이 설득되지 않는 이유는 내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나에게 믿음이 가지 않거나 내가 싫기 때문에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뢰하거나 좋아하는 미디어에 나오는 내용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만, 그 반대라면 일단 부정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결국, Message보다 Messenger가 중요하다.
진심을 다해도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상대가 설득되지 않는다면, 메시지의 내용이나 형식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바꾸는 것이 답일 수 있다.
27. The Art of Loving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반드시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가운데 이보다 더 필요한 지식이 있을까?
사랑은 기술인가? 감정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 이야기,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이 목적을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해서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이 애용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자신이 사랑할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과 상호 간 유리한 거래라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스릴과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현금 또는 할부로 사는 맛, 이것이 현대인의 행복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매력 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 매력 있는 남자는 탐나는 상품이다. '매력'은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잘 팔리는 품질 좋고 멋진 포장을 뜻한다. 사람을 특별하게 매력 있게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시대의 유행에 달려 있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이르게 하는 세 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고 밀접하게 느끼며 일체라고 느낄 때. 이런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하고 격앙된 경험 가운데 하나다. 이 기적은 성적 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 대체로 더욱 촉진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 흥분의 잔재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 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28. 질문
현자는 말한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기독교는 대답한다.
우리는 야훼의 의지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야훼가 창조한 우주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경험하고 찬양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야훼에게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불교는 대답한다.
내가 곧 우주만물이다. 깨달음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삶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여정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은 말한다.
인식할 수 있는 우주가 생겨나면서 물질과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등장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의식, 영혼의 존재 등-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 존재의 의미나 목적은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논쟁 중이지만 결론에 이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29. 후회
어느 마을에 후회만 하는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은 성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나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습니다. 동생은 지나치게 소심했습니다. 그는 항시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고는 '그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습니다.
형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싸움판에 끼어들었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큰돈을 벌었다가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 같은 사랑과 금지된 사랑도 해봤습니다. 그는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보수는 적지만 안정된 직장을 얻었고 부모가 정해준 짝과 결혼해 평온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동생이 착한 사람이라며, 자녀에게 동생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친 후에 후회 형제의 영혼은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형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면서 "평생 후회만 하며 살았지만, 아무 여한이 없노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면서 "아쉽도다. 아쉽도다." 하며 마지막까지 인생을 후회했습니다.
사족: 후회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흔히 후회라 함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생기는 후회를 의미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아 영혼에 상처를 주는 후회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후회이다. '어떤 행위를 행하지 않았다는 선택'에 대한 후회는, 가능성이라는 잊히기 힘든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30. 그릇
그릇의 쓸모를 평가할 때 모양과 원료, 견고함에 앞서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그릇의 크기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양(외모)과 원료(능력), 견고함(인성) 보다 중요한 것이 그릇의 크기이다.
특히 리더에게는 실력이나 품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바로 인간 그릇의 크기이다. 그릇이 커야 많은 사람, 큰 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릇의 크기는 타고나는 것 같다. 배우고 노력한다고 잘 바뀌지 않는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것은 그릇을 깨 버리고 새로 빚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대단히 고통스러운 충격이나 실패를 겪어야 한다. 그리고 각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마 속에서 수천 도의 열기를 밤새 견뎌내며 단단해지 듯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위대한 리더 중에는 리더십을 타고난 사람이 많지만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을 거쳐 재탄생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