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번째 그림과 생각
'위기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대처하는 일본'이라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지진과 태풍 등 수시로 닥치는 자연재해에 대해 평소 상황별 대응 방안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이를 수행하는 일본 관료, 그리고 한 명의 일탈자도 없이 정부 지시대로 질서 정연하게 행동하는 일본 국민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일본의 다른 모습이 있다는 분석을 최근에 접했다. '일본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는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패배주의자로 몰린다'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모두가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치다 다쓰루, 올해 일흔 살의 사상가, 교육가, 문화평론가로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 분의 말을 들어보자.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본인은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다양한 계획을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기이한 일본인의 민족적 습관입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은 파국적 사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가 일본의 전통입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여 그 대처법을 고안하는' 태도 자체를 '비관적 행동'으로 분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엄명이 내려집니다. 저는 절망적 사태에 대비하는 인간을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저처럼 생각하는 인간은 소수의 예외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대로 일본인이 '최악의 사태'를 상정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냉철하게 검토하기 전에 절망한 나머지 사고 정지 상태에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비관주의에 빠지면 일본인은 어리석어집니다. 그리고 정반대의 '근거 없는 낙관론'에 매달려 이상행복감에 가까운 망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무기 수출, 자기 부상 신칸센, 올림픽, 엑스포, 카지노. 이것들은 모두 실패하면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무모한 작전입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런 작전에서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1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다'는 태도는 패배주의이며, 패배주의야말로 패배를 불러온다는 순환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논법에 매달리는 동안은 미래의 어떤 위험을 예측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고 입에 담는 순간, 그때까지의 실패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그런 일을 떠맡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비관적인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사회 전체에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한 인간에게 오히려 책임을 추궁합니다. 집중적으로 비난 공격을 쏟아붓고, 사죄와 해명을 요구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지라며 위협합니다. 이것이 일본 사회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최상의 상태입니다"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책임을 뒤로 미루는 편이 '오히려 낫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의 군부 지도자, 거품경제 시절의 은행 경영자, 인구 감소에 대한 대처하는 관료들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매달려 실패를 애써 외면했다고 우치다 교수는 말한다. 우치다 교수의 지적은 일본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코로나 19 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닥친 일본과 한국. 양 정부와 국민의 대응, 그리고 그 결과를 우치다 교수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관전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