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그림과 생각
올더스 헉슬리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경전'이라고 찬양했던 책, 인도인들의 정신적인 지침서인 <바가바드 기타>를 다시 읽었다. 대학 때 부전공으로 선택한 종교학 개론 시간에 접했던 이후 30년 만이다. 왜 이 책이 시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바가바드 기타>는 전쟁터에 나선 왕자 아르주나와 그의 마부 역할을 하고 있는 크리슈나(세상을 유지하는 비슈누 신의 화신)의 대화이다. 아르주나는 전장에서 적으로 맞선 친척들을 마주하자 전의를 상실한다. 그는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료와 친척들을 파괴함으로써 왕국과 권력을 얻는다면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크리슈나여, 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 항복해버리자. 그러면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크리슈나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르주나여. 인간이 신에 이르는 길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세 가지 방법으로, 선정과 요가의 길, 의무의 길, 그리고 박애의 길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본성에 알맞게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신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당신과 같은 크샤트리아, 즉 왕과 무사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신에 이르는 방법이 의무의 길을 걷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직업 안에서 의무를 다하는 과정을 거치며 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르주나여, 그대의 의무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의심을 위한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행동을 위한 시간이다. 거기에 머뭇거림을 있을 수 없다."
이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크리슈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르주나여, 그대는 두려움 없이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는 그 행위에 대한 보상과 영광과 성공에 대한 그 어떤 바람 없이 행동해야 한다. 올바른 행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기대, 어떠한 성공을 위한 바람조차도 없는 것이다."
겸허히 의무를 다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이 신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말한다. "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틀을 갖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다. 자아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이다. 자아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자아는 모든 곳과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자기 속에 모든 만물이 존재한다. 자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없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지만 그 본성에서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신'이라는 것이다. 아르주나가 자기 안의 신을 보기를 갈망하자 크리슈나는 자신의 본성인 비슈누의 신성을 드러낸다. 아르주나는 허공으로 떠올려지는 환상을 경험한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우주 그 자체처럼 무한했고, 하늘부터 땅 위의 모든 것을 가로질러 모든 존재 안에서 빛났다. 아르주나의 의식은 어지러웠고 폭풍 속의 나뭇잎처럼 휘몰아쳤다. 두려움 속에서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비슈누는 다시 크리슈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모든 환상과 환희는 사라졌다. 아르주나는 아트만이자 브라흐만인 자신의 본성을 체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크리슈나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고 새로운 정신의 울림과 함께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고 힘차게 마차를 몰아 전장으로 달려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힘들고 지치고 도망치고 싶어 질 때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세상이 너에게 쥐어준 의무를 행하라. 그리고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마라. 그럴 때 행위는 업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너를 신에게 향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