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은 괴롭고 운동은 즐겁지?

마흔다섯 번째 그림과 생각

by 낙서인간
마나롤라 Manarola, Italy

누군가 우리에게 매일 2시간씩 무거운 짐을 옮기라고 한다면 즐거워할 사람이 있을까.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나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에 아무런 장비 없이 한나절 동안 잔디밭을 손질하라고 하면 기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노동이 운동이 되는 순간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마법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많은 돈을 지불하고 헬스클럽에 가서 무거운 쇳덩이를 끙끙거리며 들고 러닝머신에서 헉헉대며 땀을 흘린다. 땅이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에도, 열사병으로 사람들이 쓰러지는 혹서기에도 골프장에는 골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왜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을 괴롭히면서까지 운동에 열광하는 것일까. 미국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이며 시인이자 교수인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말을 들어보자.


요즘 대부분의 중요한 육체노동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 세탁기나 진공청소기나 보일러가 하고 있다. 유일하게 쓸모 있는 노동은 하찮은 것뿐이다. 건강한 남녀가 육체노동을 하고 싶을 때 하는 일이라고는 러닝머신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꼽는 일이 고작이다. 우리는 출근 후 퇴근 때까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청결하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트레이닝복이 땀에 흠뻑 젖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역사적으로 몸의 아름다움에 가장 집착한 문화로는 고대 그리스, 20세기 파시스트, 상업 문화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미국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행복을 목표로 삼아 운동했다. 고대 그리스 예술은 아테네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가장 선호한 주제는 젊은이의 아름답고 균형 잡힌 몸매였다. 스파르타인들은 힘든 농사일은 하지 않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노예를 힘으로 억누를 수 있어야 했다. 또한 노동을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고 자유인이 할 수 있는 활동은 전쟁을 제외하고는 스포츠나 전쟁놀이밖에 없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통통한 팔다리, 불그레한 뺨, 청결한 피부, 맑은 눈 이상으로 몸을 숭상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적어도 5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서구인들은 균형 잡히고 벌거벗은 몸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 전반적인 역사로 볼 때 운동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생각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미국은 개신교도들에 의해 건설됐으며 이들은 스포츠와 놀이를 거부했다. 가톨릭은 스포츠를 권장했지만 청교도들은 가톨릭과 스포츠 모두에 강하게 반대하며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면 미국이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오늘날과 같은 운동이 성장했는데, 그 원인은 스파르타와 마찬가지로 국력에 있었다. 19세기 중후반 각 국가가 전쟁을 위해 젊은이들을 모집했다. 정부는 징집병들이 너무 허약한 데 충격을 받았다. 영국 성공회가 기독교를 금욕주의와 나약함에서 구하기 위해 '근육질 기독교'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해 개신교의 반대가 워낙 거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스포츠가 승리했다. 일단 싸우기를 멈추자 청교도와 복음주의자들은 스포츠가 가족 오락으로 유용하며 정신적, 재정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동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듯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고 활기차고 아이를 잘 낳기 원한다면 체육관에 가서 러닝머신으로 운동하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운동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건강하면 그것은 그들이 건강해서 운동하는 것이지 운동해서 건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전혀 운동을 하지 않다가 적당히 운동을 해 도움을 얻는 경우는 있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은 운동을 해도 더 이상 그다지 건강해지지 않는다.


도시 중심을 체육관으로 가득 채우면서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첫째는 노예를 소유한 상류 계층의 자존심이다. 이들은 힘든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의 여유로움을 자축한다. 둘째는 절제를 통한 미덕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성이다. 이들은 삶이라는 것을 헌신을 통해 성공이 보장되는 일종의 수양으로 여긴다. 운동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문화적 주장은 솔직히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다. 대신 여기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누구나 상류층에 속하고 싶고 덕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로 그 숨겨진 의미 때문에 우리는 운동을 한다. 러닝머신 운동은 진정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가치에 홀려서 하는 '자신을 돌보는 연기' 같은 것이다.


운동하기를 원한다면 어디로든 걷고 대개 타인에게 시키던 일을 스스로 하고 계단을 오르고 아기를 안아주고 장작을 패야 한다. 내키지 않으면 체육관은 잊어라. 어떤 유형의 몸이 되라는 권유는 역사적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당신이 운동을 즐기지 못하거나 운동하지 않는 것이 꺼림칙하다면, 나는 당신의 심장 박동이 증가하든 증가하지 않든 즐기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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