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by 낙서인간

전쟁, 화재, 전염병, 지진, 건물 붕괴, 선박 침몰, 항공기 추락, 태풍, 홍수, 가뭄, 산사태, 원유유출 등등, 직업상 국내외에 일어난 많은 재난을 직간접으로 겪었습니다. 사스(SARS)를 비롯한 몇몇 상황에서는 재난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전쟁 같은 현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자연을 초토화시킨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후,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파와 후유증을 지켜봤던 경험도 있습니다.


어떤 재난은 유례없는 규모로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남기고 지나갑니다. 반면 종종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사고가 예기치 못한 대형 재난과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재난 상황 초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책임자의 판단입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초유의 사태를 맞닥뜨린 현장 책임자의 판단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입니다. 시간은 촉박하고 대처방안을 상의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때 상황의 경중을 판단하고 초기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코로나 19 발생 초기 우한시 당국자의 판단과 대응, 세월호 침몰 직후 선장과 현장 출동한 해경의 판단과 대응, 그리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발전소장의 판단과 대응을 돌이켜보면 현장 책임자의 첫 판단과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재난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국가와 지역의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먼저 최고 전문가를 찾아 그들이 하는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감정이나 사사로운 이익에 휩쓸리지 말고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선에서 재난과 싸워야 할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사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와 불안을 다독이면서도 침착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시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수세에 몰린 영국이 기세가 오른 독일군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당시 수상이었던 처칠은 매일 저녁 라디오로 대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영국 국민은 처칠의 연설을 듣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고 독일과 맞서 싸울 힘을 얻었습니다.


재난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만든 문명은 의외로 허술합니다. 기술이나 과학도 허점이 많습니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사안에 대한 대처능력이란 측면에서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운이나 우연에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 대응 시스템을 철저히 마련해 놓고 자원도 충분히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시스템은 중요합니다. 개인의 역량은 천차만별이고 우연의 요소는 우리의 예측 범위를 벗어 나기 때문에 누가 와도 잘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덮어놓고 시스템 탓만 하면서 책임을 면하려는 경향이 종종 보입니다. 인류가 겪었던 재난 상황들을 찬찬히 복기해봅시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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