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직업 앞에서 '나'가 흔들렸던 순간들
직업이란 참 신기하다. 열렬히 좇는 꿈이 되기도 하고, 내 발을 붙드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것. 선망의 대상이다가도 한없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누구에게나 직업이란 일정 부분 '애증이 대상'이지 않을까. 내게도 나의 직업이 마찬가지의 존재인데, 물론 '변호사'라는 직업 앞에서 '나'라는 사람이 흔들리는 순간들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 꿈을 좇는 과정에서의 위태롭던 나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간절함이 보상받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다. 인생사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순진하다기보다는 안일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생각한다. 혹은 미련함이든가. 노력이 배신하기도 하고, 진심이 외면당하기도 한다는 걸 몰랐던 때였다. 타인과 세상을 살피지 않고 지독히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여겼다. 내 방식이 통한다고 생각했고, 통하지 않으면 부당하다 분노했다. 그러니 당시의 위태로움은 엄밀히는 꿈이나 직업 때문이 아니라, 준비가 되지 않은 나 자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변호사가 되고 싶었을까를 돌이켜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 '그 일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변호사의 일이라는 건 결국 자격증이 선행되어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인데, 해보지도 않은 일을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일정 부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변호사의 일이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뿐이지, 그게 시혜를 베푸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싶다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법학이 논리적으로 정치하여 좋았다. 변호사의 일은 그 학문을 단순 이론을 넘어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어떠한 가시적인 변화를 내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성정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사회적인 시선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진심으로 믿으나, '타인의 시선'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망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변호사라는 꿈을 키울 시절까지만 해도, 소위 '대우받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나에게는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피아노이다. 나를 한없이 자유롭게 하고,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해주었던 대상. 이제는 취미 수준으로밖에 치지 못하지만, 내 손끝에서 탄생하는 음을 사랑했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걸어 들어간 길에서, 나는 당연히 방황했다.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에 집착했다. 그게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과열된 경쟁도, 맞지 않는 사람도, 전부 이겨낼 힘이 없었다. 그야, 어떤 타이틀을 원한다는 건 너무나도 하찮은 기제가 아닌가. 세상에 느끼는 환멸은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가 되고,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지금의 내가, '나'를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은 '사람'의 힘이다. 그들이 주는 '사랑'의 힘 또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주는 마음들. 결국에는 그를 자양분 삼아 나는 점점 '본연의 나'를 되찾았다. 또 다른 중요한,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힘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스스로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