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성취의 정의가 바뀌는 시기
성공이든 성취든 기준을 '결과'에 두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결과란 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난 것일 뿐더러, 그 가치의 산정 기준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삶을 내어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환경을, 벌어지고 마는 일들을 바꿀 수 없을 수는 있지만, 그에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결과와 성공이라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그에 매혹되면 혹은 얽매이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중심을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해야 하는 것은, 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일이다.
나는 인간의 생을 어항 속의 금붕어의 것에 비교할 때가 많다. 어항 속 세계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서 보고 있기에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금붕어는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어항으로 옮길 수 있지만, 그마저 자신의 의지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이 처한 환경이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여러 유형 또 무형의 한계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사실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라 믿는 것들 역시 여러 운과 기회가 함께 작용한 결과일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밖의 세계만을 동경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전시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숨쉬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 자유를 찾아야 비로소 마음이 충만해진다고도 생각한다.
'분수에 맞게'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하는 말의 본질은 이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어항 속에서 보는 세계를 음미하며, 나를 둘러싼 물길을 감사히 여기는 것. 어쩌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이 많을지 모른다. 정작 다가가면 숨을 쉴 수 없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