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만든 '좋은 삶'의 기준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좋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고 생각한다. '좋은'이라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그에 객관적인 잣대가 있는 듯 여기는 것은 문제지만 말이다. 나는 사회의 많은 불행이, 인생을 '평가'하는 '획일화된 기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타인의 삶에 점수를 매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명하게 간과하는 것들이 있다. 타인을 평가하면서 그 잣대로부터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타인을 향한 시선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는 '평가'하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불행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아마 그 기준이 객관적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령 객관적이라 해도, 그것이 타인의 삶을 멋대로 '평가'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이 '행복'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 모든 방식은 결코 틀리지도 맞지도 않다. 누구나, '자신'에게만은 '최선'인 삶을 살아간다. 적어도 그러기를 희망하고, 그러고자 노력한다. 획일화된 기준을 갖는 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그 기준이 일정 부분 사회가, 또 시대가 강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나는 시대의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이고 싶어. (僕は時代のものじゃなくてあなたのものになりたいんだ˳)'
'좋은 삶'의 정의에 대해서도, 또 행복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삶은 시대의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