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다친 발바닥이 욱신거렸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보다는 마음을 콕콕 찌르는 불편한 감정이 영원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갑옷 없이, 아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앞에 선 기분이었다. 영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견디거나, 도망치거나. 그리고 영원은 후자를 택했다.
비상식량과 옷가지 몇 개를 챙긴 배낭을 메고 영원은 한참 동안 설원 위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시렸지만 집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평정을 찾아가는 듯싶었다. 울렁거리던 기분이 점차 가라앉는다. 속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영원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둘 만의 보금자리였던 작은 집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어 본다. 눈앞에서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뿌옇게 실체를 만들어 내다 곧 사그라지는 공기덩어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은 순식간에 잔잔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머리가 맑아졌다.
도망쳤다.
자신이 한 일의 무게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둘만 남은 세계에서, 설희를 혼자 남겨두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설희도 영원의 부재를 눈치챘을 터이다.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두려움이 더 컸다. 이 이상 소중한 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소중한 이가 없는 쪽이 맞았다. 자신에게는 상대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그 힘이나 소망은 자연이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한없이 미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결론 내리며 영원은 다시 자신이 떠나온 방향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