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안에서.
아, 덥다.
마음의 소리를 읊조리는 청우의 시야는 온통 파랑이었다. 옥상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햇빛을 막아 줄 얄팍한 수증기 입자조차도 없었다는 소리다. 공룡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지만, 청우가 확신한 것은 적어도 인류는 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장 먼저 겨울이 사라졌다. 그다음은 가을과 봄이 앞다투어 사라졌고. 결국 남은 것은 여름뿐이었다. 전 지구가 열대화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적어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일어난 현상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급변의 시기에 청우는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한, 봄과 가을의 선선함이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고, 그 이후로 그의 인생은 쭉 여름이었다. 어린 시절 얇은 머리칼을 스치던 바람은 환상이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그리운 감정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시원함과 냉기를 추억했지만, 청우에게 그 기억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지나치게 짧았다. 그러나 궁금하기는 했다. 여름이 아닌 계절은 어떨지.
“뭐 해?”
파란 하늘 가운데로 불쑥 익숙한 얼굴이 끼어든다. 청우는 갑작스레 끼어든 불청객에 인상을 찌푸렸다.
“보면 몰라?”
“밥 안 먹어?”
“입맛 없어.”
그렇게 얘기하자 누워있는 그의 입에 불쑥 샌드위치가 들이밀어진다. 입을 꾹 다물었으나 상대는 물러설 줄을 몰랐고, 물러설 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청우는 한숨을 쉬고는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옥상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는 그의 옆으로 불청객, 소녀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밥 안 먹고 그럼 더위 먹어.”
“새삼스럽게.”
퉁명스러운 말에도 소녀는 특별히 상처받은 기색은 없었다. 손에 작은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얼굴을 식히는 소녀는 청우의 오랜 소꿉친구, 청아였다.
“맞다, 나 지원했어.”
“뭘?”
“해저기지.”
“......뭐?”
청아는 여상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것이 청우에게 어떤 폭탄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고.
“미쳤어?!”
“아 깜짝이야.”
결국 빽-하고 소리를 지르는 소꿉친구에 청아가 가슴께에 손을 얹으며 몸을 뒤로 물린다. 청우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 감정의 동요에 청아는 어쩐지 즐거운 기분이 되어 키득거리며 웃었다. 청우의 두 눈이 둥그렇게 커진다.
“웃겨 이게?”
“하하하.”
“아줌마 아저씨한테 허락은 받았고?”
“당첨되면 얘기하면 되지.”
“...미쳤구만.”
응, 미쳤어. 단단히. 그렇게 결론 내리며 청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아는 사뭇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있지, 심해의 온도는 0도까지도 내려간대.”
“얼어 죽겠네.”
“옛날엔 지구도 영하까지 내려갔대. 지상의 온도가.”
“언제 적 얘기야 그게?”
“그 온도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뭔가 다를까?”
한 마디 하려던 청우는 청아의 표정을 마주하고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호기심과 설렘이 뒤섞인 반짝이는 눈동자에 대고 적어도 너는 그 생물 중 하나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해저기지는 멸망과 싸우기 위해 인류가 내놓은 해답이었다. 가안(假案)에 불과하긴 했지만.
심해의 높은 압력과 낮은 기온, 그리고 희박한 산소. 해저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 단연코 아니었다. 다만 그건 지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날이 오르는 온도는 곧 인간이 숨 쉴 수 없을 수준으로 공기가 데워지리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들숨에 폐가 익어버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했고, 인류는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건 범세계적 실험이었다. 인간이 해저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곳에서 인체의 반응은 어떠한지, 수명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등등. 우주에서의 뼈아픈 실패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되고 있는 신세계(新世界) 프로젝트였다. 유인은 충분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훌륭한 보수와, ‘외부’’에서 통제하는 안정적인 물가, 최신식의 시설들 그리고 최고의 복지. 그런 것들에 홀려 지원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실험이 끝날 때까지 지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 모든 걸 가졌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지상의 빛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청우는 청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크다고 해도 결국엔 ‘갇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청우의 생각을 알겠다는 듯, 청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상도 같아. 우리는 지구라는 곳에 갇혀 있잖아,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우주에서 한 점 먼지로 바스러질 텐데.”
“.......”
“그러니까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아가는’ 것이라고, 청아는 얘기하고 있었다. 청우는 끝내 그 말에 어폐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그런 후회를 하는 일은 조금 훗날의 일이었다.
***
제2 해저기지 붕괴 사고
"어제 오후 3시경 제2 해저기지의 붕괴가 확인되었습니다. 연구동 누수 신고가 들어온 지 8시간 만의 일입니다. 해당 기지에 한국인은 총 96명으로 확인되며, 소방당국은 생존자가 없는 것으로 보고----------”
***
현실감이 없었기에 슬프지도 않았다. 분향소에서 청아의 사진을 마주하고도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순직으로 처리되는 방향이 결정된 이유는 그들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실험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죽어서 예우를 갖춘다. 결국에는 실험 쥐처럼 취급해 놓고.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해 놓고. 이런 건 위선일 뿐이라고 청우는 생각했다.
청우는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청아가 그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간 이유를. 이제는 답을 해줄 이도 곁에 없었다.
***
청아는 누구보다 푸르름을 사랑했다.
높은 하늘을, 우거진 녹음을, 쨍하고 피부를 뚫는 열기까지도. 여름을 사랑했다.
“으아, 덥다!”
“즐겁게 들리는 건 착각인가.”
“좋지 않아? 살아있는 기분이잖아.”
“죽을 거 같은데.”
청우의 지쳐버린 듯한 대꾸에 청아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게 살아있다는 반증이잖아.”
“...말장난이네.”
“뭐,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네가 지나치게 낙천적이야. 청우는 하고픈 말을 삼켰다. 실랑이를 해봤자 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나 지구를 사랑했던 청아이기에 청우는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왜 자유롭기를 포기했을까. 네가 사랑해 마지않던 것들을 뒤로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청우를 이끌었다.
그 안에 나는 없었을까.
***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너로 하여금 이 푸른 하늘 아래를 벗어나는 선택을 하게 만들지는 않을 텐데.
***
태평양에서 탈출정 발견
“제2 해저기지 붕괴사고의 생존자들이 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탈출정이 태평양 한가운데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국제해양기구에서는 현재 탈출정과의 교신에 힘쓰고 있으며----------”
***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떠오른 얼굴에 청아는 웃어버렸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고서야 감정을 자각하는, 신파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자신의 것이 되다니.
나는 푸른 바다를 보고 이곳에 들어왔는데, 정작 이곳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푸른 하늘의 소중함을 이곳에서 알았다. 그러니 너는 부디 언제까지고,
그 파랑 속에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