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라디오

- 어느 출근길 운전자의 짧은 숙연과 깨달음

by platypus

매일 똑같은 길을 운전해서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을 한번 떠올려보자. 매일 아침, 이 운전자는 까치집을 얹고 거의 같은 시간인 7시 10분에 아파트에서 나온다. 일하는 평일에 엘리베이터는 다섯 번에 세 번꼴로 14층에 멈췄다가 운전자가 사는 8층으로 내려오는데, 문이 열리면 14층 남자가 어김없이 회사 유니폼 차림에 가방을 메고 서 있다. 운전자는 남자의 뒤쪽 구석자리에 서서 내려가는 동안 그의 정수리 왼쪽 베개 눌린 자국을 확인하며, 이 남자가 이렇게 자주 자기보다 딱 한두 발짝 일찍 집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차에 올라 길을 나선다.


아무리 어려운 길도, 열 번 혹은 스무 번 정도만 왕복하면 내비게이션이나 표지판 없이도 자연스레 찾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운전자는 낯선 풍경도 없이 그가 매일 오가는 길을, 발의 근육을 거의 불수의근처럼 사용하며 약간 멍한 상태로 주파한다. 길에 익숙해지면서 빠져야 할 출구나 끼어들어야 할 차선에 집중하고 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는 곧 차 안에서의 시간을 지루해한다. 결국 그는 자기 감각의 일부분─결코 전체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발을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최소한의 신경 정도를 내버려 둔 나머지 멍하고 뻐근한 일부분을 뭔가를 듣는 데 사용하기로 한다. 지루함이라는 일종의 감각마비 상태, 그러한 상태의 장기간 지속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그는 피곤과 반복으로 무뎌진 감각을 조금이나마 일깨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그는 맨 처음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며칠의 행로를 재밌게 보낸다. 가요부터 재즈, 팝송, 좋아하는 영화 ost …. 운전자는 곧 자기가 알거나 탐구할 수 있는 범주 내의 곡들을 어려움 없이 섭렵한다. 그러나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하루, 이틀, 사흘 길을 반복하는 일에도 드디어 지루한 감이 찾아든다. 자주 들어 익힌 곡은 반복할수록 흥이 조금씩 반감될뿐더러, 무작위로 잘 모르는 곡들을 재생시킬 경우 흘러나오는 멜로디들의 향연 또한 낯설고,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쯤 되면 이제 뭐라도 상관없으니 좀 덜 지루한 게 없을까 생각하며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자동차 조작판을 훑어본다. 그는 라디오 버튼을 발견하고는, 요즘 나오는 차나 20년 전에 나온 차나 상관없이 라디오를 틀 수 있다는 진부하고, 약간은 심오해 보이기까지 한 사실을 한 가닥 희망처럼 떠올린다. 차가 연식이 꽤 되었기 때문에 라디오가 붙박이 귀신의 심술처럼 약간 지지직거리긴 하지만, 운전자는 이만하면 감지덕지라 생각하며 한 손으로 틀만 한 게 나올 때까지 주파수 버튼을 딸깍거린다.


아침 7시 시간대에 하는 라디오는 ‘출발 FM’, ‘FM 대행진’, ‘시선 집중’, ‘파워 FM’, ‘최강 시사’... 등등. 종류도 가짓수도 다양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차에서 비교적 덜 지직거려서 그나마 수신이 좀 된다 싶은 방송은 클래식 채널인 ‘출발 FM’과 ‘최강시사’ 채널밖에 없다. 둘을 동시에 들을 수는 없기에 하루걸러 번갈아 들으면서, 그는 곧 두 방송이 완전히 다른 아침에,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알아차린다.


시사 채널은 어떤가. 여기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알지도 못할 어느 정당의 어느 직책의 어느 사람이 어떤 말을 해서 어떤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매일 지칠 줄도 모르고 쏟아져 나온다. 한쪽 정당의 수사와 슬로건, 그들이 추진하는 전략, 지지하는 후보는 온갖 말꼬리 잡기와 불만과 분노로 다른 정당 관계자에 의해 협잡꾼과 계략과 헛소리로 밝혀진다. 이 고발은 곧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는 반론과 함께 다른 의혹들로 되받아쳐진다. 운전자는 이러한 일련의 고발과 역습 행위들이, 그러니까 그들 전부가 일종의 모의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진다. 아니면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은 아닐까. 그래, 이건 수건돌리기 게임이다. 그들이 든 것은 수건 대신 간사하고 혐오스럽게 웃는 피에로에게 빼앗은 우스꽝스러운 폭탄이고.


게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날이 채 어두워지기도 전에 전복되고 다시 뒤집히고 또다시 전복되었다는 소식이 다음 날 아침 라디오를 통해 밝혀진다. 광적으로 과열되어 가는 이 게임에서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의미 있는 진실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우습지도 않은 폭로전에서 밝혀지는 것들이 최소한의 무게라도, 미약하게나마 의미라도 있어야 하는 것일진대, 여기서는 밝혀진 사실들이 원심분리기의 속도처럼 돌아 본질도 형체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는 느낌뿐이다. 그는 그만 질려버린다.


클래식 FM 청자들은 완전히 다른 아침에 살아간다. 우선 여기에는 헨델과 바흐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경쾌한 음악이 있다. 하이든과 멘델스존이 흘러나오고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리스트, 슈만의 곡들이 신청된다. 진행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한 중간 정도의 음정이고 발성은 그지없이 자연스러워 불안을 주는 법이 없다. 시청자 중에는 은퇴한 교사이거나 은퇴를 앞둔 교사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전원에서 황혼을 보내는 부부, 그 밖에 좀 더 차분한 출근길을 원하는 교향 있는 사람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런 사실들은 하루만 들어도 시청자 사연이나 문자 참여에 남기는 정보를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다.


시청자들, 그러니까 사연과 신청곡을 남기는 사람들은 그들이 클래식을 사랑한다는 사실, 더불어 좋은 클래식 음악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사연과 신청곡을 남기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의도들 또한 대부분은 불쾌감보다는, 미소가 지어지는 부류의 것들이다. 그들의 자랑이라는 것도 어쨌거나, 그들 모두가 얼마간 순진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그것이 별로 해롭지 않다는 사실에 연유한 것이니까.


그런데 사실 이 클래식 FM의 진짜 묘미는 따로 있다. 가령 어느 날, 한 시청자가 사연을 남긴다. 얼마 전 어린 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49재가 끝났고, 남편의 장례를 다 마쳤을 때도 그랬지만, 49재가 지난 지금에도 잠든 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 어린아이와 함께 살아가야 할 세월이 아득하고 막막하게 느껴진다는, 절망과 답답함이 묻어나는 짧은 사연이 그것이다. 출근길이나 아침 식사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시청자들에게 ‘어이쿠, 그러셨어요?’식의 너스레를 떨던 진행자가 이번에는 더없이 차분하고 가라앉은 음성으로 짧막한 위로의 말을 전한 다음 레퀴엠(Requiem)을 틀어주며, 레퀴엠은 ‘안식’, ‘평안’의 뜻이라고 덧붙인다.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운전자는 길도 잊고, 자기 발이 움직이는 것도 잊고, 피곤과 흐리멍덩한 눈도 잊고, 출근 중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는다. 곧이어 터널을 빠져나온 듯, 그는 자기 얼굴 옆으로 아침 해가 쨍하게 비치는 것을 깨닫는다. 더없이 강렬한 빛이다. 또다시 짧은 순간이지만 그는, 그가 매일 통과하는 이 길이, 그가 보는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짧은 숙연, 그리고 삶이 계속된다는 그 단순한 진실이 한순간 이토록 서글프고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고, 운전자는 생각한다. 레퀴엠은 계속 흘러나오고, 그는 고속도로 출구를 향해 차선을 물리고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다시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이 똑같은 길을 무표정하게 달리겠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나쁜 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재에 묻힌 목소리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