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문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읽고.

by platypus

폭력과 살인 등의 잔혹한 일이 연이어 벌어진다.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그런 사건들, 거기에는 충격을 넘어 내면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잔인한 행위, 충동, 드러난 사실과 말해지지 않은 동기, 행위자의 실루엣이나 장소의 강렬한 에너지. 모호함으로 둘러싸여 상상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남는다. 두렵고 동시에 흥미로운, 내면의 서늘한 공포가 고개를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사그라들, 그러나 분명 강렬한 상상이다. 나에게 이 주제는 언제나 전율을 일으킨다. 인간 본성, 깊은 곳에 내재한 어두운 동력, 무엇이 우리를 충동적으로 만드는지, 인간과, 인간의 끝은 어디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향한 진지한 탐구의 욕망.


짐작컨대, 1959년 11월, <뉴욕 타임스>에 실린 짤막한 기사를 읽은 뒤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의내면에서는, 욕망이 좀 더 강하게 무언가를 호소했을 것이다. 캔자스 주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히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된다. 기사가 나온 이후, 카포티는 그를 이끄는 어떤 힘에 매료되어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6년이라는 긴 시간, 그는 ‘일가족 살인 사건’의 경위와 피해자 가족, 주변 인물과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특히 두 범인, 리처드 유진 히콕과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에 대해, 사소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는 이렇게 세상에 나온다.



작가 자신이 ‘논픽션 소설’이라 부른 『인 콜드 블러드』는 소설의 서사적 특징을 잘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쓰인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p.522)”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논픽션’과 내러티브 서사 장르인 ‘소설’, 카포티는 둘을 혼합해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한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이 융합은 흥미롭다. 작품은 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 기록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카포티가 포부로 내건 ‘진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작품 또한 논픽션에 가해질 수밖에 없는 논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실’인 묘사가 가능한가, 즉 ‘진실’을 기록할 때 작가 개인의 관점이나 의도를 내포한 상상이 개입되지 않은 쓰기가 가능한가. 카포티 작품의 ‘진실성’에 관한 논란은 최근까지, 사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발견되었다는 근거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 『인 콜드 블러드』가 비범한 작품임은 틀림없다. 조용한 마을의 선량하고 촉망받는 일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한다. 어떤 원한도, 동기도 찾을 수 없다. 시골 마을은 깊은 불신에 빠지고,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수사관이 배치된다. 거칠고 불안하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두 범인의 행적과 체포, 재판까지. 모든 과정은 긴장과 이완으로 생생히 그려진다. 재현은 사실적이고 어떤 대목은 전율이 감도는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단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적인 아우라가 작품을 시시각각 심오하게 만든다.


‘냉혈’, ‘냉혈한’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은 사건의 범인, 그중에서도 ‘페리’라 불리는 키가 작고 인디언 혼혈에 여리고 남다른 감수성과 정신세계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작가는 결국 총을 들게 되는 ‘페리’라는 인물에 관심을 쏟으며, 그의 내면에 접근하고자 많은 공을 들인다.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는 어느 모로 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는 등의 경험. 커포티는 페리를 형성한 이야기에 매료된다. 옮긴이는 카포티가 페리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p.524)”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한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p.524)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왼쪽)와 리처드 유진 히콕(오른쪽). 체포사진.


작가가 작품 속 ‘페리’라는 인물에 대해 남다르게 동화되었다고 해서, 그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거나 선처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과 행적의 궤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그 내면 깊숙한 곳에 어떤 상처받고 뒤틀린 영역이 그를 “추방당한 동물(p.515)”의 삶을 선택하게 했는지 헤아려보는 작업의 중요성을, 카포티는 잘 알았던 것 같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인간 이해의 좀 더 높은 곳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인 콜드 블러드』의 표지에는 카포티가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머리를 받치고 있는 사진으로 등장한다. 인간 본성의 심연에 대해 남다른 슬픔을 감지한 듯도 보이는 사진은 작품 기저에 깔린 정서와 묘하게 어우러진다. 지성을 잃지 않으며 서정적 언어로 인간을 파헤치고자 했던 작업의 결과물 『인 콜드 블러드』. 그 속에 담긴, 예리한 직관과 인간 내면의 나약함에 관한 정교하고 세밀한 서술은 읽는 사람의 정서에 깊이 내재한 슬픔까지 건드린다. 어쩌면 예술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그런 지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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