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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Sep 19. 2020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이었다. 눈을 뜨니 9시가 훌쩍 넘어있었고, 전날 숙직한 남편이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이상하다. 아들 녀석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면 수상한 법. 방문도 닫혀있다. 살짝이 문을 열어 틈새로 눈을 굴렸다. 살금살금 나와서 두리번거리는데 부엌에서 소리가 났다. 두 살 짜리는 기저귀만 차고앉아 바닥에 가루를 휘젓고 있었다. 세상 행복한 모습으로 신났다. 그런데 작은아들 머리 위에서 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큰아들이 ‘눈이다’ 하며 분유 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이었다. 가루를 뿌리기 위해 옆에 놓여 있던 분유통에 손이 들어가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네 살이었던 큰아들은 “엄마” 하고는 이내 말했다.

“눈, 눈이야”      

가까이 가서 보니 얼마나 눈을 뿌렸는지 싱크대 앞이 첫눈 온 것처럼 하얗게 덥혀 있었다. 둘째를 안으니 웃옷이 살짝 젖어있었다. 

“물도 뿌렸어?”

“응, 비”     


화가 나지 않았냐고요? 아뇨. 전혀요. 예뻤어요. 일하는 엄마여서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서 서일 까요? 둘째는 생후 7개월부터 일 년을 외갓집에서 자랐어요. 어린 형제가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두어 달 때거든요. 같이 있으니 소소한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데 헛웃음만 났어요. 마루에는 초록색 매트를 깔았어요. 층간 소음이 민감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조심시켜도 뒤뚱뒤뚱 다리로 힘이 가잖아요. 뛰어가면 ‘나비 걸음’ 하면 ‘사뿐사뿐’을 말하며 발뒤꿈치를 들었죠.      


벽에 낙서하면 전지를 붙여주고, 이젤과 화이트보드를 사서 이곳에 그림을 그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물론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알려 주었지요. 도넛 가루를 반죽해서 도넛도 만들고, 쿠키도 곰돌이, 토끼, 사자 모양 틀을 찍어서 구웠습니다. 회사에서 미칠 것 같아도 어린 아들의 눈을 보면 힘이 났어요. 쉬는 날에는 놀이터에서 함께 미끄럼도 타고, 정글짐도 올라가고, 총싸움도 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과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이제는 훌쩍 자란 아들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지나온 시간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아프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시간을 견디는 중입니다. 누군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라고 묻는다면 이 노래를 들여 주겠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류 근 시인의 시에 김광석이 곡을 붙이고,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쓸쓸한 사람 되어/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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