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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Sep 19. 2020

시를 노래하는 사람

정호승 시인 강의를 들으면서 떠다녔던 생각들


1972년 시인이 된 후 48년째 시를 쓰고 있다. 칠십이 넘은 시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삶이 되어있었다. 목소리는 절제와 따뜻함이 묻어나고 고요함마저 전해졌다. 북받친 설움을 토해내지 않을 만큼 먹먹하게 했다. 정호승 시인이다. 자작시를 읽어주며 시인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힘내라고 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몸속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시가 말을 걸어왔다. “너도 시 좋아하잖아! 쓰고 싶어 죽겠지?”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그곳은 산 이어라’ 고등학교 때 시화전에 작품을 내기 위해 썼다.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시인처럼 설명하지 못한다. 함축적인 의미도 은유도 없는 사실적인 한 편의 시를 내걸었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배우 수애는 많은 시를 노래했다. 영화 「편지」를 보고 「즐거운 편지」 한 편을 외우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서 오래전 그날의 편지를 읽듯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어봤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시인의 말이 마음을 두드렸다.      


시인은 말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1988년 남편과 사별하고, 3개월 뒤 교통사고로 25세였던 아들을 먼저 보냈다고. 그녀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힘든 시간을 극복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저 견딘 것이라고 했단다. 견딘다는 것은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애끊는 모정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고통의 무게만큼 입으로 뱉어내지도 못한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다시 글을 쓰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6개월 뒤 그녀는 쓰기 시작했고, 묵묵히 삶을 견디는 시간으로 채워갔다.  

    

사슴을 닮은 시인 백석이 떠올랐다. 소설가 백영옥이 읽어주던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 구절이 귓전에 맴돈다. 일제 강점기에는 러시아어 번역을 하며 견뎠고, 그 이후에는 시인의 삶을 내려놓고 농부로 살아갔다. 『백석 평전』에서 자유롭게 시를 노래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았다. 다른 삶으로 살기를 강요받았고,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개구리네 한솥밥 』은 그가 쓴 동화 시다. 옹기종기 앉아 모락모락 피어나는 쌀밥을 먹는다. 그 옛날 문인들과 어울렸던 시간 속, 어느 다방에 그렇게 앉아있게 해주고 싶다.      


시인은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시어에 멜로디를 얹으면 노랫말이 된다. 사람들은 유행가로 시를 흥얼거리고 가사를 외운다. 그렇게 우리는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기분이 어땠나요?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언제가 사 두었던 시집 한 권쯤은 있을 겁니다. 눈 감고, 책을 펼쳐보세요. 낮은 소리로 입술을 움직이다 보면 내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감정을 시로 만드는 재주가 있지요. 우리도 조금씩 연습하면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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