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rip Jun 20. 2019

[Italia] Veneto

1. 이탈리아 베네토 주

 90년대 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제빵 만화 '따끈따끈 베이커리'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제빵사라는 꿈을 각인시켰다. 다시 말하자면 기억은 안 나지만 더 어릴 때부터 '요리사'라는 일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이사하며 짐 정리 중 발견한 장래희망 설문조사지에 적혀있더라). 그 이후로도 '식객' '파스타' 등의 드라마들의 영향으로 확고하게 요리사라는 직업에 초첨을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의 작품이었던 '파스타'는 나에게 이탈리아 요리사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선물해줬다.


여행 일 다시 여행

 전역 후 막무가내로 떠났던 중국 여행 후 상경하여 7개월간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본격적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셰프, 홀직원과 함께 매일 음악, 사랑, 여행 이야기를 하며 다음 단계로 향하는 도약판을 굳혔다. 여행이기도 하지만 나름 공부라 생각하며 지난번과는 달리 정보수집을 깨나 했지만 역시나 일정 없이 발 가는 대로 가기로 했다. 6개월간 일하면서 조금씩 모아뒀던 돈을 한방에 탕진 할 시간이 됐다!!!

2017년 1월 이탈리아로 떠난다



Antipasto [Veneto]

1. Venezia - 추위와 배고픔, 여행의 원동력!

 2017년 1월 16일 한국은 겨울 한 가운데에 있다. 친구와 함께 살던 아파트 분리수거 일에 맞춰서 정리 후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러 채비를 마친 뒤 소파, 냉장고, 세탁기들을 하나둘씩 모두 보내줬다.

오전에 조금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게이트를 통과한 뒤 보딩 타임이... 약 5분가량 남았다. 작은 캐리어와 배낭을 고 전속력으로 돌진, 1분 남짓 남겨두고 아슬아슬하게 비행기 탑승! 그때 그들은 몰랐다. 이탈리아 여행이 달리기의 연속이 될 것이란 것을..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해 다음날인 17일 새벽에 베네치아에 도착, 시차 때문인지 그다지 피곤하진 않았다.. 다만 엄청나게 배고플 뿐..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국처럼 늦게까지 운영하는 가게가 많은 나라는 흔치 않다. 예약해뒀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고자 밤거리로 나왔으나 전부 깜깜.... 그 흔한 편의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파는 뱅쇼(과일 등을 넣어 따듯하게 데워 마시는 프랑스 와인)와 숙소 앞에 있는 펍이 눈에 들어온다.  

베네치아 골목에 있는 이름모를 펍

"전에 책에서 읽은 적 있지 '동유럽 수도원에선 단식 기간 동안에 맥주를 식사대용으로 이용했다' 그래!! 맥주는 액체로 된 빵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라 핑계 대며 앤쵸비가 올라간 크로스니와 루꼴라, 마스카르포네 치즈로 토핑 된 녀석들을 IPA와 함께 즐겼다.  풍부한 헤드거품을 입술에 묻히며 목을 말끔히 씻어 내려가는 시원함, 코끝 안 쪽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아로마.. 홉의 향기는 20 시간 넘게 비행으로 긴장된 우리들의 근육을 풀어주기에 지나치게 충분했다.




약간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집에 가려는 찰나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잘 도착했냐. 난 이제 출근한다"

짜릿하다. 백수 최고다. 여행 최고다!!!


2. Venezia - 시차

 눈이 떠진다. 태극기가 그려진 케이스를 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6시 30분..... 3시간 정도 잔 것 같아.... 일단 잠은 더 오질 않으니 동네 산책이나 하며 먹을거리 좀 구해봐야겠다! 옆에선 구자경 이 녀석 잘도 자고 있네.

 역시나 모두들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그 와중에 이 검은 머리 외국인은 한 겨울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음식을 찾으려 동네를 배회하니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쳐다본 모양이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최소한 30분은 더 기다려야 첫 번째 피자를 맛볼 수 있다니 일단 친구를 깨워 다시 고민해 보자

집에 도착하니 이 녀석도 적응 안된 시차에 벌써 일어나 있었다. 그냥 자판기에서 과자나 뽑아먹지 뭐... 따듯한 롱블랙과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으니까

산 마르코 광장

 한국보다는 아니지만 확실한 겨울, 때문에 이 여행에서는 양손 가득 캐리어들 들고 다녔다. 여자 친구가 만들어준 목도리와 코트를 걸치고 제대로 된 첫 끼니를 해결하러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이니 명소에 있는 *리스토란테(Ristorante)에서의 식사는 잠시 미뤄두고 조금 더 작은 골목에 있는 오스테리아(Osteria)의 문을 열었다. 첫 번째 손님이란다. 뭐든 일등이 좋다고 배워왔지만 이젠 등수에 관심이 없다. 뭐 어쨌든 자리에 앉아 시원한 쇼비뇽 블랑 한 병과 핏자 두 판을 시켰다. 하나는 아티쵸크가 올라간 풍기(Funghi-버섯) 핏자였고 다른 하나는 간단하지만 풍미가 가득한 마르게리. 오전부터 마신 와인에 한층 기분이 들떠 이탈리아에 인사를 하러 떠난다


*이탈리아는 목적이나 규모에 따라 Ristorante(레스토랑) - Trattoria(식당) - Osteria(선술집) 세 가지로 나눠 부른다.


3. Venezia - 길을 잃다 = 새로운 길을 찾다

 동양의 베니스를 뽑아보자면 아마 양손으로 세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는 베니스가 단 한 개,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 수상도시, 물과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좋아하는 내게 베네치아로 여행을 시작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수 백개의 미로 같은 다리를 마치 GPS를 켜놓은 것 마냥 거침없이 다니는 주민들과 그 다리들 사이로 지나가는 곤돌라들, 너무 아름답다.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이다.

 누군가는 물 비린내로 인해 3일 이상 여행하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내 경험으로 적어도 5일 이상 머물러 이 미로 같은 도시에 매력을 제대로 느끼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아버지는 길치다. 나는 20년 넘게 산 동네에서도 길을 잘못 들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 집까지 간 적이 있을 정도로 더 심각한 길치이다. 덕분에 지도를 보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 것 같다. 이 미로 같은 도시에서만 빼고 말이다.

 우린 길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걸어 걸어 골목 구경이나 하자 하고 걸었다. 목적지는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그 유명한 다리이다. 사실 다리 자체보단 그 다리에 올라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전경이 유명하지만 말이다. 골목골목을 걸어 원래대로라면 20분이 걸릴 거리였지만...... 신기하게도 20분 만에 도착했다. 길이 미로처럼 복잡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이정표(사실 스프레이로 그려 놓은 것이 훨씬 많았다)들이 골목골목 붙어있어 오히려 길 찾기가 수월했다. 또한 그것들을 따라감에 눈도 즐거울뿐더러 뭔지 모를 성취감을 안겨준다.

리알토 다리에서 본 베네치아의 전경

 리알토 다리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Riva del Ferro거리, 오른쪽으로는 Riva del Vin 거리를 따라 수 십 개의 식당들과 카페가 즐비해있다. 그 식당들과 식당들 사이에는 또 다른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은 시장으로 연결되어있다. 밤이 되면 식당들에 빛이 들어 바라보고 있자면 누군가와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동성친구와 함께 유럽에 가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리는 뭔지 모를 씁쓸함을 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마트인 쿱(coop)에 들려 첫날 맛봤던 크로스티니들에 영감을 받아 생각 난 몇 가지를 만들 재료를 사기로 했다. *리몬첼로(limoncelle)와 와인, 치아바타와 토핑 거리들을 이용해 또다시 술 냄새나는 밤을 보냈다.


*리몬첼로(Limoncello) -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레몬맛 리큐르, 보통 남부지역에서 생산된다.


4. Burano - 기억하는 방법

 Monday, better day

처음처럼 설레이는 그런 날

Sunday, better day

종일 너만 생각하는 그런 날 ~~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인 부라노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부라노섬은 베네치아 여행 중 잠깐 들리는 곳이 아닌, 목적지가 되어 본섬보다 유명해지고 있다. 본섬에서 북동쪽으로 모터보트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4개의 작은 섬으로 된 군도인 '부라노 섬(Burano)'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게 반겨준다.

뮤비 하루끝의 배경인 부라노섬

 예로부터 수상 업에 종사하던 부라노의 주민들은 집집들이 늘어선 운하에 배를 정착시켜놓고 살았다. 물이 많은 곳이라면 안개 낀 날이 적지 않았을 터, 서로의 집을 알아보고 보트 간에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비비드 컬러로 벽과 보트를 색칠했다. 이 것이 오늘날 부라노를 아름답게, 또 특색 있게 만들어 준 이유이다.

 어느 여행지라도 그들만의 살아온 방식과 흔적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첫걸음엔 아름다울 뿐이지만 골목을 쏘다니며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더욱 진귀한 것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라노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길에 있는 강아지들과 인사하고, 같이 놀아주며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섬 반대편으로 돌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리가 조금씩 지쳐올 때 부둣가에 앉아 뷰티핸섬의 'Before it's too late'을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베이스가 시작될 때는 펼쳐지는 부둣가가, 첫음절에서는 운하와 색색의 집들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엔 극적으로 비춰주던 태양광들이 아직도 눈앞에서 그림처럼 펼쳐진다.

 누구나 처럼 내겐 '아 이 노래 들으니까, 거기가 생각나!'라고 할 만한, 한 지역에서 수 십 번도 더 들었던 곡들이 몇 가지 있다. 어떠한 기억으로도 덮혀지지 않는 강렬한 순간들이 음악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된다. 지금도 부라노의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기 위해 유튜브를 통해 듣고 있다.


5. Verona -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낙서들

 며칠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생각할 때쯤 오늘은 유난히 햇볕이 강하다는 걸 깨닫는다. 평소와는 다르게 가볍게 셔츠 한 장만 걸친 뒤 거리에서 산 뇨끼 디 볼로네제(Gnocchi di Bolonese)를 손에 쥐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베네치아에 산타루치아역에서 *레지오날레(Regionale)를 타고 2시간 정도 서쪽으로 이동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자 문화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예술의 도시 베로나가 나온다. 로나의 새로운 문이라는 의미의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역(Verona Porta Nuova)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구 시가지나타난다. 사실 도시가 많이 크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몇 가지 명소의 무료 또는 할인 입장권과 교통편이 포함된 베로나카드(한화로 약 3만원)를 산다면 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구 시가지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둘러볼 곳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자 참 사랑의 표본인 그들의 집이다. 비록 소설일지라도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 이야기에 매료되어 이 곳을 방문한다.

구자경 줄리엣 연기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혹시 베란다와 발코니의 차이를 아는가? 간단히 말해 건물 내부에 구분을 두고 유리문이나 벽을 둔 것은 발코니, 건물 외벽에 툭 튀어나오게 추가로 만든 것은 베란다이다. 한국의 어감은 조금 애절함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울부짖음을 한 곳은 다름 아닌 '베란다'이다.

 줄리엣의 집 문 밖에는 줄리엣의 동상이 있다. 그녀의 왼쪽 가슴을 문지르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필자처럼 아직 사랑을 못 찾은 사람들이라면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

 + 베로나 카드를 소지했다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줄리엣의 집 문을 지나면 기다란 복도가 나온다. 이 곳은 전 세계의 연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발자취와 사랑을 남기려 낙서를 하고 간다. 정부나 관리자들이 낙서를 허용한 벽이니만큼 이 곳에서는 죄책감 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과 하트를 적고 가보자. 나는 이 곳에 지난 연인의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저곳에 기록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이탈리아의 기차는 크게 국철과 사철로 나눠진다. 그중 레지오날레(Regionale)는 가장 느리고 저렴한 완행열차이다.


6. Verona - 동유럽의 핵심, 붉은 지붕!

 이탈리아 또는 동유럽의 아름다움은 붉은색으로 빛나는 지붕들이라 하였던가. 시뇨리 광장에 있는 람베르티 탑에 올라서면 작지만 빼곡히 채워진 붉은색의 지붕 파도를 감상할 수 있다. 이미 베로나의 명소들을 거의 둘러본 터라 옥상에 올라서면 분명 건물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늘 그랬듯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노을이 붉게 빛나는 지붕의 색을 한층 더 짙게 하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발아래에 있는 시뇨리 광장뿐이었다.

람베르티탑에서 바라본 베로나의 노을

 매 정시면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광장에서 점처럼 작은 악사들과 예술가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당장 내려가서 그들을 만나고 싶어 진다. 풍경을 간직하고 광장으로 내려가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고자 식당에 들어서니 어딜 가나 있는 테이블에 올려진 올리브 오일과 파우더로 만들어진 그라나빠다노치즈가 라자냐를 주문하라고 소리친다. 역시나 한 잔의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를 몸속 깊은 곳까지 위치시킨다.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베로나의 아레나 원형 경기장이다. 기원 후 30년에 지어졌으며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복구했다고 한다. 3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인 만큼 웅장함도 남다르다.

베로나 원형경기장

 초장에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은 달리기의 연속이었다. 베네치아에선 아무런 신호 없이 갑자기 달려 한 명은 소매치기 행세를, 한 명은 그를 쫓는 여행객 행세를 하며 뛰어다녔는데, 그 당시 동네 아저씨들이 물로 뛰어들라며 함께 장난치곤 했다.

 이 곳 원형경기장에서는 과거 아레나에 참가하던 검투사들이 대기하던 방들의 복도를 직접 둘러볼 수 있다. 늦은 시간인 탓에 우리말고는 여행객이 한 명도 없어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그곳을 뛰어다녔다.



7. Venezia -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마지막 밤이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아메리칸 펍에 들어가 아메리칸 세션 에일과 부드러운 헤페바이젠을 오븐에 갓 구워진 치킨과 함께 마셨다. 오랜만에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주고 받은 뒤, 우리는 다시 미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찾아오니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며 길 잃은 자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 방향을 찾을 방법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깨동무를 하고 술 취한 아저씨들처럼 부둣가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