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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n 20. 2019

[Italia] Emilia Romagna

2.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주

Primo Piatto [Emilia-Romagna] + Milano

1.  Bologna - 교육과 회랑의 도시

  당시 나와 이 친구는 이탈리아라면 사족을 못 쓰는 코리탈리안 이었다(코리안+이탈리안) 이태리 하면 파스타, 핏자겠지만, 그때 우리에겐 짭조름하게 혀를 자극하며 고기의 풍미가 가득한 프로슈또(Prociutto), 판쳬따(Pancetta), 코빠(Coppa)와 같은 살루미와 파르지미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한조각, 지역별로 나오는 상큼한 와인들이 이 나라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파르마에서 치즈와 살루미들을 즐기려했지만, 북부부터 남부로 내려가는 일정에 동선이 조금 꼬이기도 하고 고기가 가득 들어간 본토 볼로네제(Ragu di Bolognese)를 맛 보고자 볼로냐에 들르기로 결정했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2시간 정도 이동하면 회랑과 교육의 도시 볼로냐에 도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볼로냐대학은 1088년에 지어진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아무리 교육 수준이 높은 학교라도 학생들은 여전히 놀고 싶은것이 인간의 본능, 때문에 약간은 익살궃은 친구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인들과 우리의 호스트가 했던 주의였다.  



 첫 끼니는 볼로냐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라자냐집에 가기로 한다.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탈리에서 갔던 모든 식당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 하지만 맛과 이야기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 곳은 몇 안 되는 이름을 기억하는 식당들 중 하나다.

볼로냐의 최고 라자냐맛집 Trattoria dal Biassanot

 "Trattoria dal Biassanot" 원래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테이블에 앉기도 힘들다지만 일단 향해본다. 예약을 안 했으니 구석에서 기다리라는 불친절한 점원의 말을 따라 작은 의자에 앉아 20분남짓 기다려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도 필요 없이 라자냐를 주문하고 피노그리지오를 한잔씩 주문했다. 이전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라자냐는 수없이 만들어봤지만 이 녀석은 다른 세계의 음식이다. 포크로 눌러보니 라자냐 시트가 커피에 젖은 사보이 아르디(레이디 핑거 : 티라미수의 시트로 사용되는 비스킷)처럼 부드럽게 뭉개진다. 한입, 입에 넣자 아까 그 불친절한 점원의 등에서 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은 지나치게 크리미 한 베샤멜소스와 적절히 짠 라구 소스가 와인을 부른다. 단+짠의 조합처럼 무제한으로 섭취가 가능 해 분명 크기가 상당했으나 우리는 같이 딸려나온 빵까지 이용해 테이블 위에 모든 음식들을 없애버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모두 각자만의 라구소스 즉 볼로네제 레시피를 갖고 있다. 레시피는 정확한 수치를 요구한다. '가령 500g의 돼지고기와 500g의 소고기에는 200g의 토마토 페이스트가 들가야한다'...라던지,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라구소스의 기원은 '발명'이 아닌 '남은 고기의 처리방법'이었다. 살지차, 살라미를 보기 좋게 자르면 그들을 포장했던 끝 고기들이 남는다. 스테이크를 손질하면 또 어느정도의 고기가 남는다. 그 고기들과 채소를 볶아 내륙지방에 넘쳐나는 토마토와 신선한 우유, 또는 크림을 넣어 만든 것이 이 라구소스이다. 볼로네제는 여느 나라가 그리하였듯이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시대에 만들어진 예상치 못한 역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2. Bologna - 꼬릿한 고기와 상큼한 포도

 '점심은 조리된 것을 먹었으니 저녁은 날 것의 무언가를 먹자!'며 광장 근처의 시장으로 움직인다.

볼로냐 마쬬레 광장(Piazza Magiore) 주변 골목으로 가면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2m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살루미 가게들, 치즈, 각종 향신료와 갖가지 형태의 파스타 가게,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염장시킨 것 같은 크기의 햄들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향기를 더 담아가고자 입을 닫고 코로 숨쉬기에 집중했다.

 조금 골목에서 나와 큰 광장 길목에 있는 *이노테까(Inoteca)에 앉았다. 메뉴를 보고 살루미플래터(Piatti di Salumi)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와인 끼안띠 끌라시꼬(Chianti Classico)를 주문했다.

 짠맛보다는 고기의 맛이 강조된 모르타델라(Mortadella)와 종이장처럼 표면이 매끄럽게 썰린 살라미(Salami)와 프로슈 또(Prociutto)의 휘어져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군침이 돌아 참을 수가 없었다. 점원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재빠르게 두 손을 들어 한 손에는 와인잔을 다른 한 손에는 햄들을 집어 입에 집어넣었다.

 이탈리아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프로슈또를 염장하고 후크에 거는 건 사람의 몫이지만, 건조되고 숙성되는 과정은 오롯이 신의 몫이다'

 요즘이야 좋은 숙성시설과 장비들이 적절한 기후를 만들어 거의 똑같은 상태의 프로슈또들이 생산되지만 과거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기후에 대한 지식'과 '운'이 전부였다. 배 나온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사냥해온 멧돼지를 손질하여 다리는 소금에 담가 며칠 또는 몇 주를 염장하고 후크에 걸면 건조하고 쌀쌀한 볼로냐의 날씨가 프로슈또들을 유해 곰팡이와 부패로부터 지켜내 얼마간이고 저장이 가능한 햄이 완성된다. 나와 내 혀는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놀라운 기록들을 맛본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과 음식, 역사와 문화에 대한 경이로움에 추운 날씨도 잊어버리곤 와인을 비웠다. 계산하려는 찰나 구자경이 말문을 연다

"야 장난치지 마"

무슨 말이지?

"내 가방 어쨌어"


*이노테까(Inoteca) - 한국으로 치면 술 파는 가게, 즉 주류점과 약간의 다과 정도를 구비 해 놓은 가게이다. 수 백가지의 와인을 직접 고르고 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개봉 가능하다.


3. Bologna - 머피의 법칙 =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이다.

 이상하다?.. 우리는 테라스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지나간다면 분명 알아차렸을 텐데?... 이 녀석 가방을 도둑맞았다. 그것도 현금, 여권, 지갑, 여권 사본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던 가방을 말이다. 숙소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짐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나온 모양이다. 일단은 내가 계산하고 직원에게 CCTV에 대해 물어봤지만.... 이탈리아는 그런 거 없단다. 경찰서 위치를 알아내 경찰서로 갔다.

 경찰관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고 우리는 이태리어를 구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 통역사가 급하게 필요해 피렌체에 있는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이 상황에도 그 소매치기 놈들은 도망치거나 이 녀석의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고 있으니.... 이런... 경찰서에는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경찰관은 밖으로 나올 수 없단다. 쓰레기통을 찾아보라는 이야기에 무작정 뛰어다녔다.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달리기의 시작이 이제야 서막을 울린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다 뒤져봤지만 가방 실오라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적어도 성인 남자 5명은 아니 10명은 들어갈만한 쓰레기통을 발견! 뚜껑을 젖혔는데... 바닥이 뚜껑으로부터 약 3m 정도 주저앉아 있고 그 아래에선 불도저의 앞 대가리 같은 것이 쓰레기들을 몇 초 간격으로 밀어내고 있던 것이다. 희망은 없다며 숙소로 돌아가 방법을 물색해 보기로 한다.


 우린 베네치아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는 모습을 보며

"야 아무리 그래도 저런 일은 안 일어나겠지?" 라며 이야기했다.

'일어났다'

우린 베네치아에서 소매치기 행세를 하며 장난치며 아이처럼 웃고 떠들었다.

'일어났다'

머피의 법칙이다... 맙소사 이 모든 건 이탈리아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4. Milano - 안녕하세요!

 피렌체에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듣고 로마보다는 가까운 밀라노 영사관으로 갈 채비를 한다. 우리는 패션이나 명품에 관심이 없던 터라 일정에 밀라노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잠깐 들리게 되었다.

핏제리아 스폰티니 Pizzeria spontini

밀라노에 출발하기 전 에어비앤비를 통해 가장 저렴한 방을 하나 예약하고 끼니를 해결한 후 기차에 올라탔다. 낙심해하는 녀석과 함께 졸며 약 2시간을 달려 밀라노에 도착. 이미 깜깜하기도 하고 주말이라 영사관도 운영을 안 해 맛집이나 찾아보자 하며 현재는 한국에서도 많이 유명한 'Pizzeria spontini'에 들려 핏자 한 조각씩과 아란치니 두 개, 비라 모레띠(Birra Moretti)맥주를 사서 공원에 앉아 허기를 달랜다. 아직도 내가 자경이와 어울리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 파워', 하루 전에 모든 걸 잃은 녀석치고는 너무 긍정적이다. 아마 이것이 계속 여행을 하고 현재까지도 호주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인 듯하다.

 눈을 뜨자마자 양치만 한 뒤 짐을 챙겨 영사관에 왔지만 아직 운영시간이 30분 남아 옆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건물에 들어서니 약 2주 만에 보는 한국어에 평소에는 있지도 않던 애국심이 들끓어올랐다.

'드디어 우리 편이다..'

 영사관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한국인 직원이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권을 새로 발급받고 원래의 목적지인 피렌체로 가기 위해 급하게 떠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간 김에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을 둘러보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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