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rip Jun 20. 2019

[Italia] Toscana. chap 1

3-1.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Secondo Piatto[Toscana] chap.1

1. Firenze - 메인디쉬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토스카나주에 입성했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와인 끼안띠(Chiantti),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의 고장이며 주도인 피렌체는 중세시대 메디치 가문의 통치로 인해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와 배낭을 메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Santa Maria Novella)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문득 드는 생각.. 어째 이탈리아의 도로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어 개발이나 유지 보수를 많이 하지 않는 나라, 거칠게 굴러다니는 마차로 인해 도보 여기저기 깨진 곳도 많고 블록들이 일정하지 않아 캐리어들이 주인의 뜻과는 달리 이리저리 춤춘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한 뒤 이번엔 먼저 전경을 보자! 하며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 가기로 한다. 이 광장은 시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보통은 버스나 택시, 자가용을 타고 들르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우리는 역시나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이곳저곳 살펴보며 언덕을 올랐다. 정상이라 말할 것도 없이 금방 도착한 언덕의 봉우리에 서면 피렌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후 우리는 이 언덕을 세 번 정도 더 들려 제대로 피렌체를 알아가는지 서로 테스트하곤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 본 피렌체

 볼로냐-밀라노에서 한 고생들을 떠올리며 광장에 서 피렌체를 바라보니 그간에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사실 육체적으로는 더욱이 피곤했지만.. 뭐 젊을 때는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하더라.

 미켈란젤로 광장 중심에는 커다란 동상이 하나 있다. 그것이 미켈란젤로의 동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의 모조품이다. 이 동상에서 도시가 보이는 쪽으로 내려가면 사진과 같은 계단이 있는데 현지인, 여행객들이 앉아 자연과 인류가 선물한 그림을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맥주나 와인과 함께 만끽한다. 우리 또한 계단에 앉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 순간들을 공유한다.


 지난번 볼로냐에서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 연락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당시 요리학교를 다니고 있던 터라 음식은 준비해 둘 테니 마실 음료 정도만 챙겨 오라는 이야기에, 한국이었으면 후덜거려 집을 수 없을 브루넬로 디 몬딸치노(Brunello di Montalcino)와 바롤로(Barolo)를 한 병씩 손에 들고 그녀가 살고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손으로 문을 여닫고 버튼을 누르면 움직이는 반수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집주인 할머니가 반겨주셨다. 포근한 냄새가 나는 방들을 지나니 '스텔라'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친구에게 애교를 떨 준비를 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 녀석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탓에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나쁜 놈... 쌀쌀한 겨울 날씨에 걸맞는 따듯한 집 주방에선 네 개의 팬이 각자 맡은 요리를 보글보글 열심히 요리하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족히 2kg은 되어 보이는 티본스테이크, 이태리어로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가 위엄을 뽐내며 어서 요리해달라 소리치 듯 떡하니 얹어져 있었다.

피렌체에 사는 친구네 집에 초대받았다.


 의자에 앉아계시던 주인 할머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쪽을 먼저 몇 분 굽고, 뒤집어서 몇 분 구우면 돼' 정도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주고 있었다.(옆에서 장난으로 si, si(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내가 알아들은 줄 착각하셨다고 한다.) 이미 준비해둔 토끼고기 화이트라구(ragu bianco di coniglio)에 넣을 딸리아뗄레(Tagliatelle)면을 냄비에 넣고 피렌체식 콩요리와 샐러드를 옮겨 담은 뒤 닭의 간과 심장으로 만든 *빠떼(Pate)를 잘라 둔 치아바타에 올려 케이퍼로 마무리해 식탁 위에 하나둘씩 올렸다.  사실 말이 화이트라구이지 실제로는 갈색에 가까운데 친구에 말에 의하면 토마토를 넣지 않고 레드와인으로만 조리하게 되면 하얀 라구라고 칭하게 된다고 한다. 참 간단한 방식이다. 붉지 않으면 하얗다.... 여하튼 할머니(통역해준 친구)의 조언에 따라 노릇하게 구워내고 할머니가 드실 만큼 접시에 담아 전해 드린 뒤 드디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간에 이야기와 이탈리아를 이야기하며 와인이 금세 비우고 냉장고에 있던 맥주까지 마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한 가득 풀어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인 음식을 즐길 차례가 되었다. 이 동네에 있는 와인과 소고기는 전부 씨를 말려주겠어.


*빠떼(Pate) - 동물의 간이나 자투리 고기를 넣고 갈아 밀가루 반죽을 해 조리한 뒤 포장한 것


2. Firenze - 관광객모드

 보통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특히 피렌체에 오는 여행객들이라면 역시나 5일 전후로 머물다 가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우리는 시간 흘러가는 대로 옆집 아저씨, 동네 맛집, 골목길 낙서처럼 이들의 삶의 터전을 들여다보는 것을 원했기에 12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피렌체에 머물기로 했다.

 전날 마신 와인의 숙취가 남아있는 채로 아침식사를 하러 떠났다. 어제 친구가 식사자리에서 소개해준 몇몇의 젤라 집과 빵집을 구글맵에 추가시켜두고 하나씩 돌아보기로 했다. 맨 먼저 빵집에 들려 친구가 가장 좋아한다는 이탈리아 빵인 스아차타(schiacciata) 두 개와 우유를 사 피렌체를 관통하는 강 '아르노 강(Fiume Arno)'  둑에 앉아 조촐하게 아침을 때우고 젤라또가게로 걸었다.

 아뿔싸.... 휴가를 떠났.... 다음 가게로.....

이런... 이 집은 공사 중, 저 가게는 이전, 저 가게도 휴가... 그것도 한 달이나 떠났다. 겨울이라 따듯한 나라도 다들 도망이라도 간 모양이다. 이렇게 일곱 개나 되는 젤라 가게들 중 하나도 맛보지 못하고 아쉬움에 한숨을 가득 쉬며 로컬 맛집을 찾으러 다시 또 걸었다.


곱창버거 람프레도또 Lampredotto

 20살 대학 새내기 시절, 알바로 모아둔 돈을 전부 쏟아 바쳤던 고깃집이 있었다. '무한리필' 그 성스러운 장소에 들어가면 일단 소주 두병과 갈매기살로 허기를 달랜 뒤 막창으로 무회전 직진을 하곤 했다. 6개월 만에 내 몸을 거의 100kg이 다 되는 엄청난 퉁퉁이로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최애 음식인 곱창버거- 람프레도토(Lampredotto)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조금은 딱딱한 버거번 안쪽을 곱창, 천엽 같은 양(트리파:Tripa)을 삶은 물로 촉촉하게 적시고 약간 매콤한 소스를 뿌린 뒤 곱창들을 썰어 올려주면 완성이다. 사실 사진이나 설명으로는 상상이 안 가는 맛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적어도 내겐 너무나 사랑스러운  음식이다. (피렌체에 머무르는 동안 네 번 먹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끝내고 피렌체의 명소 중 하나인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뇨리아 광장은 우피치 미술관과 베키오 궁전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들의 기록을 담은 조각품들의 모조품이 자리한 곳이다. 사실 음식이나 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적었던 우리에게 이 장소는 "프리잔떼!!(Frizzante)"로 기억된다. 프리잔떼라 함은 스푸만떼(Spumante)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칭하는 말인데, 가끔 탄산수도 프리잔떼라고 부른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 궁전 쪽으로 돌아 벽을 보면 두 마리의 사자 머리 석상이 있는데 그 녀석들을 누르면 한쪽에선 일반 물, 다른 한쪽에선 탄산수가 나온다. 그곳 주민들은 자전거에 커다란 수통을 챙겨 와 식수를 담아가곤 한다. '이제 물 살 걱정은 안 해도 돼!!'라며 사자들로부터 영혼을 바치며 식수를 얻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이 물들은 지하수라 바로 마신다면 석회수를 그대로 몸에 주입시키는 꼴이니 말이다.

 가득 담긴 석회 탄산수병을 들고 두오모성당(피렌체 대 성당)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아프지마 도토 조토 잠보

 사실 두오모 성당이란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태리어로 두오모(Duomo)는 '성당'이란 의미이므로 한국말로 번역하면 성당성당이 된다. 마치 고목나무와 같은 경우이다.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너무 기니 '피렌체 대성당'정도로 부르면 될 것 같다.

 이 대성당은 말 그대로 정말 거대하다. 바로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종탑인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에 올라서 바라보면 그 위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성당은 이전에 있던 산타 레파라타 성당(Duomo di Santa Reparata)이 있던 자리에 지어져 있는데, 당시 산타 레파라타 성당은 피렌체 인구를 수용하기엔 크기도 작았고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고 더 큰 규모의 성당이 필요해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 피오'에 의해 1296년에 설계되어 약 1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어졌다. 성당의 뚜껑처럼 보이는 것은 쿠폴라(Cupola)라고 불리며 이탈리아의 성당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팔각형의 돔이다. 약 400만 개의 벽돌이 사용되어 37,000톤의 엄청난 무게이지만 정교한 설계로 인해 기둥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뚜껑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당시의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작업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끝내 이 경이로운 작품은 오늘날 사람들로 하여금 피렌체의 건축기술과 부의 증거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조토의 종탑, 성당 내부, 쿠폴라, 또 '천국의 문'이 있는 산 죠반니 세례당과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이 있으니 구매해 꼭 모두 둘러보기를 추천한다.(당시 15유로)

(운영시간이 전부 다르니 꼭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우리는 튼튼한 두 다리와 통합권으로 무장한 채 성당 내부와 쿠폴라를 먼저 들렸다. 그 거대한 쿠폴라 내벽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과 성경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쿠폴라가 얼마나 거대하냐면 위 사진에서 보면 쿠폴라 꼭대기에 있는 작은 점 하나하나가 전부 사람들이다.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해 좁디좁은 복도와 계단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내려간 뒤 조토의 종탑으로 올라섰다. 우리는 시간이 많아 두 곳 다 올라갔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바쁜 여행자라면 조토의 종탑만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 거대한 아름다움을 직접 한눈에 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피치 미술관 3층에서 보이는 베끼오 다리

 12일을 머무르는 여행자치곤 조금 바쁘게 돌아다닌 것 같아 베끼오 다리(Ponte vecchio)를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로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근무할 때 쉐프님과 홀직원 누나가 베끼오 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잘못 알아들어 '백교 다리'로 기억하고 있던 곳이다. 이태리어로 베끼오( Vecchio)는 '오래된'이라는 의미인데, 해석하면 단순하게 '오래된 다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노강 주변에 존재하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녀석이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다리이기도 하다. 현재는 빛나는 보석들을 판매하는 보석상들이 즐비해 있지만, 최초에는 푸줏간, 가죽 가공소, 대장간들이 위치해있었으나 냄새가 지독하게 날뿐더러 관광지로 발전시키고자 현재는 전부 철수한 상태이다.


 피렌체 시내에 있는 명소는 대부분 둘러봤으니 우리의 여행을 제대로 할 시간이다. 방문한 곳을 두 번 세 번 다시 방문해보며 그간에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고, 골목의 찻집에 앉아 푸근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3. Firenze - 무료 파스타 좀 먹을래??

당돌한 녀석


 길을 따라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분명 작은 유치원 또는 학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특별하게 기억하기 위해선 아름다운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환상적인 저녁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으나 나는 혼자 여행을 할 때나 여유로운 여행을 할 때에는 꼭 그 지역의 학교에 들러보곤 한다. 꾸미지 않은 실제의 그들을 들여다보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고 자라나는, 그러니까 학습을 하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의 공간에 있으면 왜인지 단시간에 지역 현지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우리들 사이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타난다. 위에 보이는 저 녀석은 당돌하게도 자기가 직접 주도해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


 12일간 머무를 곳은 역시나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8인실짜리 남녀혼숙 도미토리룸이다.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쯤만 되면 호스트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You want some free pasta?(무료 파스타 좀 먹을래?)"라며 말을 걸어온다. 매일 저녁 무료 파스타와 와인을 한 가득 준비해두고 게스트들을 모아 파티를 했다.

6시 30부터 친구 사이 이기도한 호스트 두 명은 주방에서 분주히 음식을 시작한다. 1kg짜리 파스타면 서너 개를 끓는 물에 삶고 바질 페스토를 섞어 그릇에 담는다. 파스타가 무식하게 담긴 5kg짜리 그릇과 마트에 파는 가장 저렴한 팩에 담긴 와인 5개를 가져와 믹싱볼에 부어 국자를 꽂은 뒤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파스타 먹자!!!!" 우리처럼 가난한 여행자들은 그 소리에 이끌려 어릴 쩍 놀이터에서 놀다 어머니의 부름에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처럼 하나 둘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저 거대한 양푼에 담긴 와인을 보니 예전에 펜션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의형제처럼 지내는 형의 집이자 펜션이었는데 가족들이 둘러앉아 숯불에 장어를 구워 먹으며 소주와 맥주를 대야에 부어 국자로 떠 마시던 기억.. 당시 충격을 받았지만 금세 익숙해져 그들의 거침없는 면모에 반해버렸었다. 함께 지내는 숙소의 친구들과 여행, 문화 이야기들로 서두를 떼고 무식하게 담긴 와인들을 전부 비워냈다. 우리는 이탈리아에 오기 전 하루에 최소 두병의 와인을 마시자 다짐했는데, 아마 이날은 그 이상을 마셨을 것이다.

(사실 이후에 편히 쉬고 싶을 때에도 밤새 떠드는 친구들 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다.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파스타 먹을래?"에 우리는 피렌체를 "Do you want some free pasta?"라고 기억할 정도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Italia] Emilia Romagn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