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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un 20. 2019

[Italia] Toscana. chap 2

3-2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Secondo Piatto[Toscana] chap.2


4. Greve in Chianti - 시골길 술 취한 두 마리 멧돼지

 두유 원 썸 프리파스타를 끝내고 방에 들어와 '내일 어디 갈까?'를 고민하던 중 식사 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 몬테풀치아노의 와이너리에 가보고 싶어 아마 이번 주쯤에 갈 것 같은데 어때?"

호스트가 말한다

"차 있어? 없으면 못가"

"그럼... 몬딸치노는?..."

"놉!"


 이태리에서 생산되는 와인들 중 고급품종이라 할 수 있는 산지오베제(Sangiovese)의 최대 생산지인 토스카나주, 그중에서도 최고급 와인들이 생산되는 몬딸치노와 몬테풀치아노. 우린 그 고장에서 와인이 되기 전 포도들의 모양새와 생산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엔 교통편이 녹록지 않은 것... 아쉬운 대로 구글 지도를 펴 다른 지역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끼안띠가 눈에 들어온다. 끼안띠역시 이태리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가 아니던가. 버스로 약 한 시간. 내일 당장 가보자!!


끼안띠의 상징 검은 수탉

한국에서 친구들이 가끔 전화해 "지금 와인 마시려는데 뭐 살까? 추천해줘!"라고 물어보면 간단히 "가격표 밑에 있는 맛 지표 보고 사" 또는 "병목에 DOCG라고 적혀있거나 검은 수탉 그려진 거 사"라고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DOCG는 이탈리에서 자체적으로 메기는 와인의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이고 수탉이 그려진 녀석은 끼안띠지역에서 나온 끼안띠 끌라시꼬 와인들이다. 이 등급은 '맛'에 대한 규제라기보단 생산이나 화학적 분석 등 다방면으로 짜여있는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므로 '품질'에 대한 보증이라 할 수 있다. 여느 예술작품처럼 맛이란 워낙에 주관적인 것이므로 이에 관해 어떠한 와인이 최고라 말하기는 어렵다. 뭐 어느 방향이던지 이 라벨이 붙어있는 와인은 '돈이 아깝지는 않은 와인'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끼안띠의 상징인 이 붉은 수탉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있다. 과거 피렌체와 시에나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울 때 그들은 병사들의 피를 흘리지 않고 영토를 결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피렌체는 검은 수탉 시에나는 하얀 수탉을 이용하여 아침, 닭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각 진영의 병사가 달려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시에나는 하얀 수탉에게 먹이를 배불리 먹이고 잠을 충분히 재워 최고의 건강상태를 유지시킨 것에 반해 피렌체 진영은 검은 수탉을 쫄쫄 굶기고 잠을 충분히 재우지 않았다. 결과는 피렌체 진영의 승리. 쫄쫄 굶은 검은 수탉은 배고픔에 이른 아침 일어나 우렁차게 울어댄 것이다.


 인구가 15,000명이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은 피렌체로부터 31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에 내려 가장 중심가인 광장으로 가보면 몇몇의 와인 상점과 식당들이 보인다. 그에 반해 많은 관광객들이 상점가에 들러 와인과 음식들을 주문하고 있다. 분명 이들은 우리처럼 포도향기에 이끌려 이 작은 마을까지 오게 되었을 것이다.


길마다 보이는 세월의 산물들

광장으로부터 뻗어진 골목길들을 둘러보니 멧돼지의 박제품들이 거리 곳곳마다 서있다. 예로부터 산간지방에서는 먹을거리가 부족해 주로 사냥한 멧돼지들을 가공하거나 요리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게에 들어서면 천장에 약간은 그로데스크 한, 털이 수북이 난 멧돼지의 앞다리들이 염장-건조된 상태로 보관되고 있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다리를 잘라낸 면만 염장을 하고 털과 가죽은 그대로 건조하는 것이 그레베의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람이 가장 많은 가게에서 멧돼지를 이용해 만든 *풀드포크와 빵 몇 조각, 와인상점으로가 한국에서도 유명한 반피 끼안띠 클라시꼬(Banfi Chianti Classico)를 산 뒤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반피와이너리는 '이탈리아 와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와이너리인데 사실 와인 역사상 그리 오래된 와이너리는 아니다. 1910년 존 마리아니 회장이 미국에서 상당한 규모의 와인 수입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고 1978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현재의 까스텔로 반피(Castello Banfi)라는 와이너리를 세운 것이다.

 공원에 앉아 이 대중적이고 균형 잡힌 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니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어 진다. 그레베에서 30분 정도 걸어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몬테피오랄레(Montefioralle)라는 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사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왜 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술기운에 좀 걷고 싶었나 보다. 따듯한 토스카나의 햇살과 와인의 알코올들이 우리의 겉옷들을 하나씩 벗겨 허릿춤에 감싸게 만들었다. 약간은 세게 조인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고 언덕 위로 올라간다.


*풀드포크 (Pulled Pork)-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장시간 조리한 고기. 우리나라의 장조림과 같은 질감을 갖고 있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올라가니 구글 지도를 더는 믿지 않게 되었다. 30분 거리라더니...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족히 45분은 걸린 듯하다. 한가한 동네에서 햇살을 맞으며 노래를 틀어놓고 경치를 감상한다. 여기도 포도, 저기도 포도, 가끔 올리브 나무, 이탈리아에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새삼스레 느껴진다. 수확철이 아니라 포도들이 열리진 않았지만 밭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와 함께 조심스레 포도나무들을 손질하고 계셨다. 아마 곳 열릴 포도들을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다.

"Ciao!!"

인사를 하니 너무나도 정답게 인사해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 시골에서 백인들을 보면 신기해하는 것처럼 이 곳 시골에서도 동양인을 보면 조금 신기해한다고 한다. 때문에 동네 꼬마 아이들은 다들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줬다. 이 기억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레베 인 끼안띠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만들어줬다.

 언덕을 다 올라 마을을 바라보니 옛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작은 돌들로 만들어진 집들이 좁디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흡사 '성'과도 같은 이 모습에 감탄하며 골목 이곳저곳을 손으로 만져 촉감을 느껴본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쉬고 있는데 동네 청년이 걸어 나와 산책을 시작한다.

"여기 근처에 와이너리가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가는지 알아?"

청년은 손을 들어 놀이터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성을 가리킨다.

"저기, 근데 지금 시즌이 아니라 단체손님만 받고 있어,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곳이야"

오호라, 우연히 공장장 아들을 만났다.

"그럼 혹시 지금 온 손님들이랑 같이

 들어가서 잠깐만 둘러볼 수 있을까?"

"지금? 아무도 없어. 가게는 운영 중이니까 들려봐"

 와인이야 충분히 마셨으니 괜찮아.. 거절하고 다시 그네를 탄다.


 해가 떨어져 날이 추워지니 집 근처로 돌아가 추천받은 식당에 가보기로 한다.

Trattoria bordino  

 한 가지의 고기이면서도 지역, 나라마다 이름이 다른 이 녀석은 티본스테이크(T-bone)또는 포터하우스(porterhouse steak), 이탈리아어로는 Bistecca alla Fiorentina(피렌체 사람들의 스테이크)로 불린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이 스테이크는 말 그대로 피렌체 사람들의 소울푸드인 샘이니 이 곳에 왔다 하면 꼭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숙소에서 베끼오 다리를 건너 두 번째 블록 직진, 왼쪽으로 돌아 조금 걷다 보면 보르디노 식당(Trattoria bordino)이 나온다.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했는데 당시 그녀는 "고기만 놓고 보면 유명한 뜨라또리아 자자(Trattoria zaza)나 부카마리오(Buca Mario)보다 낫다" 라며 장언 했다. 내 기억으로는 한 10유로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끼니마다 거의 2인분씩 해치우는 우리도 만족스러운 양이니 실로 엄청난 가성비라 말할 수 있겠다. 고기는 주방에서 나오는데 냄새는 분명 직화로 구워낸 녀석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초벌구이 막창집에서나 볼 수 있는 실내용 그릴이 떡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피렌체 스테이크의 특징은 소스 없이 소금과 후추만 뿌려 구워낸 뒤 레몬이나 라임 같은 시트러스와 간단한 가니쉬 정도만 같이 내는 점이다. 물론 장작직화로 구워내 한층 더 풍부해진 향기는 덤이다.


피렌체 중앙시장

 과거 우리나라에선 백정(도살자 또는 정육사)들의 수가 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많아 고기가 필요할 때 도살을 하고 유통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신선육을 즐겨 소비하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럽 같은 경우에는 고기를 많이 작업해둔 뒤 보관하여 그때그때 잘라먹는 식이라 자연스레 숙성육이 발달되었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드라이에이징, 웻에이징한 이베리코 흑돼지'라는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에이징'이란 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요리 전문가들이나 쓰는 전문용어였다. 식문화의 발달이나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진 요즘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업가들이 많이 있지만 아직까진 뼈와 같이 숙성되어 꼬릿 한 내가 나는 숙성육까지는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티본스테이크 같은 경우에는 안심과 채끝등심을 가로지르는 뼈의 윗부분(T의 가로 부분) 중간에는 적지 않은 양의 골수가 포함되어있다. 숙성이 진행되며 단백질의 자가분해로 인해 고기는 부드러워지고 근섬유에 수분은 날아가 풍미가 축적되는 데에 반해 골수에 포함된 지방은 숙성과정에서 특유의 치즈 냄새를 부여한다. 지방이 많은 고기를 에이징 할 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티본스테이크 같은 경우에는 특히 더 심하다. 이 향기를 즐길 수 있다면 유럽 문화를 더욱 본격적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이니 입냄새에 자신감을 갖고 와인 한 잔 즐기기를 추천한다.


5. Pisa - 모두 삐뚤어졌어

 이탈리아의 상징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나 있는가? 나와 내 친구 같은 경우는 당연하게도 음식과 와인이지만 일반적으론 로마의 콜로 세오, 나폴리 항구, 피렌체의 두오모 등이 있지만 역시 피사의 사탑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미라콜리 광장

피렌체에서 기차로 50분 정도 달리면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모교, 피사 대학교가 있는 피사가 나온다. 피사 역에서 내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미라콜리 광장(Piazza dei Miracoli)에 도착할 수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피사에 볼 것이 없어 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금방 둘러본 뒤 돌아가기 위해 광장 입구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리곤 한다. 우리 또한 문명의 혜택이 만들어낸 산물인 맥도날드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조금 더 이탈리아를 느끼기로 한다.


 우선 무료로 둘러볼 수 있는 피사 대성당에 들어가 본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2주 정도 지나면 아름다운 성당에 대한 감격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성당에서 간단히 기도를 올리고 광장 이곳저곳을 구경한 뒤 드디어 피사의 사탑에 들어간다. 입장료는 18유로(2017년),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기울어진 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줄 테니 꼭 직접 들어가 탑 내부를 걸어 올라가기를 추천한다.

탑 내부로 들어가면 탑의 기울기를 피부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5.5도로 기울어진 탑의 첫 몇 미터는 기울기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각의 중심과 멀어져 기울어진 정도가 심해 휘어짐이 격하게 느껴진다. 재미난 점은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사람들이 기울어진 면을 따라 걸어 올라 계단의 한쪽면만 마모되어 있다는 것이다. 걸어 올라가다 보면 어릴 적(사실 요즘에도) 놀이동산에 가면 꼭 탔던, '마법사의 성'같은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1173년 착공 당시에는 수직인 탑이었지만 약한 지반으로 인한 기울어짐이 13세기에 발견된 후 세 번의 재공사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자경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노그리지오

 이제 관광객들 대부분은 각자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고 우리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마을을 구경하기로 한다. 9만 명의 인구가 사는 마을로 사탑을 지나 광장을 나가면 작고 아담한 시내가 있다. 배가 너무 고파 그냥 눈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까르보나라와 토마토 펜네를 시켜 비우고 작은 구멍가게에 들려 350ml짜리 작은 피노 그리지오를 사 거리를 걸으며 한 모금씩 홀짝거렸다. 글을 쓰다 보니 주정뱅이가 따로 없구나.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와인도 조금씩 마시니 살짝 잠이 쏟아져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했다. 유럽 사람들은 다 이렇게 공원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친구들이랑 놀고 하더라, 제대로 유럽의 여유로움을 느끼기에는 역시 가만히 누워 노래나 듣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이틀동안 힘차게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늦기 전에 돌아가 맥주 한 잔 마시고 침대에 누워 짱구 극장판을 보면서 푹 쉬어야겠다. 내일은 시내에 가고싶던 젤라또가게에 앉아서 다음 일정을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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