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4일. 영국 성공회는 찰스 다윈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찰스 다윈을 오해하여 진화론에 대한 첫 대응을 잘못했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마저 찰스 다윈을 오해하도록 부추겼던 데에 대한 사과였다. 그해 3월 나는 교직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고 학생들의 질문에 매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선생님, 근데 (다윈의) 진화론은 틀린 것 아닌가요?”
학생의 질문은 늘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카로운 가시처럼 나를 찔렀다. 순서 없는 답변과 질문이 몇 차례 오갔지만 나는 학생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학생과 나는 각자의 생각만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과 감정은 지금도 진화를 가르칠 때 내 머릿속에 남아 한 번씩 재생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던 10년쯤 지난 어느 날. 그날의 기억에 큰마음을 먹고 인터넷을 뒤져 가장 두꺼워 보이는 『종의 기원』을 구입하였다. 택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택배가 도착하였고 상자를 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찰스 다윈이 30년 동안 고민해서 쓴 책 『종의 기원』이었다. 컬러 표지인 그 책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15초 정도 멍하니 쳐다보며 감탄을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 책은 그 길로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였고 몇 년이 지나도록 책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듯 책장에 꽂혀 있는 『종의 기원』은 책장에서 조용히 나의 허영심은 채워주었다.
3~4년 뒤 다시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최재천 교수님이 감수하신 『종의 기원』이 새로 나왔단 소식 때문이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을 고민하였다. 결국 나의 허영심을 채워줬던 『종의 기원』이 있음에도 또 다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새로 번역된 『종의 기원』 초판 번역본을 구입하였다. 택배 도착 예정일이 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옮긴이가 다르긴 했지만 동일한 이름의 책을 두 개나 사다니. 그렇지 않아도 집에 책 둘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아내의 눈치가 보였다. 혹시나 아내에게 구박받을까 싶어 눈치채지 못하게 새로 산 책만 몰래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었다. 허영심을 채워줬던 첫 번째 『종의 기원』은 작은 방 책장 구석에 숨겨두었다. 아! 사실 아내는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 모르겠다.
호기롭게 책을 펼쳤지만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과천과학관의 이정모 관장님은 친한 후배에게 『종의 기원』은 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읽기 어려우니 『비글호 항해기』나 『찰스 다윈 서간집』이나 읽으라 조언했겠는가. 친한 후배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질문한 사람은 아니지만, 주변에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이 흔하지 않은 이유를 첫 장을 펼치며 깨닫게 되었다.
일단 책의 전체 흐름보다 제시되는 근거들이 흔히 볼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비둘기였다. 당시 영국은 비둘기를 전서구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비둘기 육종으로 다양한 형태의 비둘기 길러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현재의 비둘기는 마술쇼에서 사용되는 하얀 비둘기 말고는 대부분 사람들이 유심히 관찰할 일이 없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초라하게 돌아다니는 비둘기가 많아졌고 사람들은 평화의 상징이 아닌 초라한 길거리의 상징으로 여기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비둘기를 자세히 관찰하거나 다양한 품종의 비둘기를 만나지 못해 초반 비둘기의 설명이 머릿속에서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다. 그려지지 않는 모습에 대한 고민은 책장을 넘기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 누군가가 나에게『종의 기원』의 비둘기에 대해 묻는 다면 비둘기 부분에 너무 공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와 비글호는 다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종의 기원』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와 비글호가 등장하는 비중은 굉장히 낮다. 그것은 비글호와 핀치새보다 다윈의 정원에서 일어나는 실험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비글호와 핀치새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비글호 항해기』를 추천한다. 그러니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와 비글호 이야기를 이 책에서 찾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길 권한다. 그렇게 기대치를 낮추고 나면 이제 허영심을 채워줄 다윈의『종의 기원』이 아닌 진정한 다윈의 『종의 기원』을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카톡!! 띠링!! 띵동!!
핸드폰이 울린다. 급한 연락도 있고, 급하지 않은 연락도 있다. 어쩌다 놓치는 연락도 있었다. 가끔은 울리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귀찮아서 최소한의 연락만 주고받는 중이지만 그마저도 천성적인 게으름으로 쉽지 않다.
이런 나와 달리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현대로 따지자면 이메일,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는 소통 왕이었다. 초판이 발행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과학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종의 기원』이 발행된 이후에는 계속되는 반박과 비난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2,000명의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다윈의 편지만 1만 4,500통에 해당한다. 그의 적극적인 소통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윈은 활발한 연락을 통해『종의 기원』의 근거와 논리를 찾았다.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들의 의견을 검토하고 수용하여 『종의 기원』을 조금씩 개정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
<찰스 다윈(2021),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p194.>
유리한 변이의 보존과 유해한 변이의 배제를 나는 자연선택이라 부른다.
<찰스 다윈(2021),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p142.>
처음 『종의 기원』이 등장하였을 때 사람들은 다윈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때까지 사람 대부분은 종은 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의 놀라운 식견과 독창적인 의견에 감탄했다. 그의 논리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그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논리를 받아들이고 저마다 자신의 꿈과 이데올로기를 다윈의 시선과 생각에 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그에게 (최)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진화(evolution)를 추천하여 사용하게 했다. 다윈은 이를 수용하여 (최)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5판부터, 진화(evolution)는 6판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용어들의 사용은 다음에 다윈 이론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오해는 그의 독창적인 의견을 가려 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그때까지 많은 사람은 자연 속 동물들의 세계는 미개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연을 단순히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강자존(强者尊)의 법칙 속에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선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다윈이 나중에 제시한 적자생존과 진화라는 개념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적자생존과 진화에 덧붙여 약육강식과 강자존으로 연결했다. 인간도 자연 속 한 존재이며 적자생존과 진화를 통해 나타난 여러 종 중의 하나이기에 인간 사회도 약육강식과 강자존이 당연하다는 설명만 세상에 나돌았다. 처음 다윈이 주장했던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과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오염된 개념의 적자생존과 진화에 의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종의 기원』초판 번역본은 이런 면에서 다윈이 처음 생각했던 의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적자생존과 진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종의 변화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설명해 낸다. 조금은 지루하지만 끝까지 읽어낸다면 다윈이 의도한 개념과 주변에 흔히 퍼져 있는 개념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생물학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진화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이 진화의 소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따위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 과학은 자연에 관한 것이지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인격에 관한 것, 인간의 인격과 신의 인격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찰스 길리스피(2005), 객관성의 칼날: 과학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 새물결 출판사, p395>
한편 기독교 측에서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지성을 가진 존재였던 인간이 한순간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동일한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찰스 길리스피는 정확하게 꿰뚫었다. 과학은 사실을 발견한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읽는다면 끝까지 완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찰스 다윈은『종의 기원』을 완성하기 위해 30년 넘게 고민했었다. 저자가 30년이 넘게 고민하여 집필한 책을 단 며칠 만에 읽어내고 이해해 버린다면 다윈으로선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나는 최선을 다해 매우 신중하게 연구하고 냉정하게 판단한 끝에,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품고 있는, 그리고 내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견해 - 종은 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 가 틀렸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종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의 종에서 나온 것으로 인정받는 변종들이 그 종의 자손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소위 동일한 속(屬, genus)이라고 부르는 집단에 속해 있는 종들은 어떤 다른(대게는 멸절한) 종의 직계 자손들이라는 점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나는 자연선택이 이 변화(modification)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주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찰스 다윈(2021),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p.42>
다윈이 살았던 시대엔 모든 종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너무나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다윈은 1837년 7월 너무나 당연시하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노트에 기록했다. 그때 그렸던 아이디어가 ‘생물이 공통된 선조에서 여럿으로 갈라져 나온 양상’을 표현한 생명의 나무였다. 생명의 나무는 다윈이 주장한 변화를 동반한 계승과 자연선택의 출발점이었다. 그 추상적인 출발점을 다윈은 놓치지 않았다.
다윈은 대부분 사람이 당연시하는 생각에 의문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30년 가까이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였다. 그렇게 출발한 그의 생각은 자연 과학을 뛰어넘어 인간 또는 생명체가 관여하는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기. 그리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기. 우리는『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이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윈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우리 주변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과학, 전문가 또는 높은 사람의 의견이라는 꼬리표 아래 다른 사람의 주장을 비판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렇게 당연시되는 생각 또는 의견에 의문을 가지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시선과 사유도 놀랍게 변할 것이다. 모든 것은 늘 그렇듯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진화, 적자생존, 자연의 법칙에 대해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뜨고 살펴보자.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다윈이 이야기하던 진화가 맞는지 아니면 그들이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를 덧씌운 진화인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종의 기원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자연을 바라보는 다윈의 시선을 인용해본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고, 덤불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곤충들 그리고 축축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로 가득 차 있는 뒤얽힌 둑(entangled bank)을 지긋이 관찰해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또한 서로 너무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법칙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번식을 동반한 성장, 번식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물림, 외부적 생활 조건의 직간접적인 작용과 사용 및 불용에 의한 가변성, 생존 투쟁을 초래하는 높은 개체 증가율,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형질 분기와 덜 개량된 형태들의 멸절을 포함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대상인 고등 동물은 이 법칙들의 직접적 결과물로서 자연의 전쟁 및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이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찰스 다윈(2021),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pp649-650>
지은이: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옮긴이: 장대익
제목: 종의 기원: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또는 생존 투쟁에서 선호된 품종의 보존에 관하여
판사항: 1판 12쇄
발행처: (주)사이언스북스
출간 연도: 2022년 4월 15일
페이지: 6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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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길리스피(2005), 객관성의 칼날: 과학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 새물결 출판사
찰스 다윈(2021),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 축약본: 인류 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여행, 리잼, pp384~386
폴 너스(2022), 생명이란 무엇인가: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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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북스 「과학+책+수다」,『종의 기원』장대익편 ①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06
사이언스북스 「과학+책+수다」,『종의 기원』장대익편 ②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10
사이언스북스 「과학+책+수다」,『종의 기원』장대익편 ③ https://sciencebooks.tistory.com/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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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2017),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과학책 ‘종의 기원’, 주간경향[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709181827261&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