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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an 24. 2023

도넛을 추억하다

지금처럼 예쁘고 맛있는 도넛 가게가 없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처음 맛 보여준 도넛은 슈퍼에서 도넛가루를 사다 만들어준 엄마표 도넛이였다. 손으로 빚어 울퉁불퉁한 노란빛이 도는 반죽 동그라미는 시작부터 나와 동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엄마! 무할라고오ː?”

“도나스 해주께잉ː.”


어머니는 집에서 제일 작은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그 안에 유채꽃 색깔의 투명한 콩기름을 가득 넣었다. 불을 올리고 기다리다 반죽 한 귀퉁이를 살짝 꼬집어 떼어낸 다음 냄비에 넣어본다. 냄비 바닥에 닿았던 반죽은 하얗고 작은 기포에 보글보글 쌓여 금세 기름 위로 떠 오른다. 떠오르는 반죽을 본 어머니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조절한 다음 반죽이 흐트러질까 봐 조심스레 동그란 반죽을 하나씩 냄비에 넣는다. 반죽이 달궈진 냄비 속 기름에 들어가자 한여름에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가 양철 지붕을 때리듯 한 소리가 쏟아진다. 쏴-아-아. 맛있는 소리에 맞춰 도넛이 익어가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져나간다. 얼굴엔 웃음이 떠오르고 행복함도 냄새에 같이 떠밀려 왔다. 노란빛의 반죽이 점점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바뀌며 기름에서 떠오른다. 잘 익은 도넛을 젓가락으로 건져내 쟁반에 올려놓으니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새 궁금함을 참지 못해 손을 뻗어 만졌다.


“옴메! 뜨그라!”

“조심해라잉ː. 아직 뜨가야.”


막 나온 도넛을 잘못 만져 뜨거운 손가락을 후후 불고 있는 나를 본 어머니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간신히 좀 식은 도넛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문다. 바삭한 겉 부분을 씹자 부드러우면서도 뻑뻑한 질감의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채운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먹고 꿀꺽 삼키자 입안에는 약간의 떫은맛이 남는다. 맛있다. 조금 더 크게 베어 문다.


“우유도 가즈다가 먹제ː”


열심히 먹고 있는 나를 본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말이다.


학생 때는 본능적으로 어렸을 적 기억의 맛과 가장 비슷한 맛을 찾았던 듯하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장표 도넛이 그랬다. 그러다 내가 대학생이 되자 도넛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던킨도너츠,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한동안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입 베어 물면 가득 들어 있는 달콤한 필링에 빠졌고, 도넛을 코팅한 달달한 설탕맛에 매혹되었다. 뻑뻑한 질감의 적당한 단맛이 아닌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며 입안을 가득 메운 달달한 도넛의 맛은 점점 발전해 나갔고 내 입맛도 점점 더 새로운 맛을 찾았다.


육아 휴직의 어느 날. 돈가스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트에서 빵가루를 찾다 어렸을 적 봤던 도넛가루를 만났다. 도넛가루를 보는데 희한하게도 입안에서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도넛 맛이 났다. 고민이 됐다. 해볼까. 아내와 아이가 좋아할까. 결국 500g의 도넛가루 포장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빠표 수제 돈가스로 저녁을 해치운 다음 날.

남은 기름이 아까워 아침잠에 정신없는 아내를 두고 조용히 도넛 가루를 꺼내 봤다. 한참을 노려보다 반죽을 시작했다. 다이소에서 산 작은 계량기까지 동원했지만, 주방이 하얀 가루로 뒤덮이는 것을 막진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궁금함에 손을 걷어붙였다.


“준형이도 할 거야?”

“응!! 나도 할래!!”

“그럼 화장실 가서 비누로 손 씻고~ 장갑 끼고 와봐”


식탁 위에 갑자기 도넛 공장이 차려졌다. 도넛 반죽은 식탁 중앙. 아이 자리와 내 자리에 도마 하나와 쟁반을 하나씩 두었다. 도마와 쟁반에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말했다.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봐”


가운데가 뚫린 원 모양, 꽈배기 모양, 하트모양이 만들어지면서 반죽이 금세 떨어져 갔다. 반죽이 어느 정도 되자 돈가스를 해 먹고 남은 기름을 다시 냄비에 채우고 온도를 맞췄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반죽을 살짝 꼬집어 나온 반죽 쪼가리를 기름에 넣어 확인했다. 보글보글한 기포가 반죽을 감싸고 올라왔다. 온도가 된 듯하다. 조심스레 아이와 만든 도넛 반죽을 넣어본다. 쏴-아-아. 어렸을 적 들었던 도넛 익는 소리가 난다. 뜨거운 냄새와 맛있는 소리가 스멀스멀 퍼진다. 집 안 가득 소리와 냄새가 퍼질 때쯤 모든 반죽이 다 튀겨졌다.


진한 갈색으로 완성된 도넛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맛을 본다. 익숙한 맛이 났다. 어렸을 적 기억의 반가운 맛이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집에서 만든 도넛을 더 많이 먹겠다고 경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와 아이 모두 집에서 만든 도넛에 신기함과 궁금함을 나타냈지만 하나 이상 찾진 않았다. 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새로운 장소에서 더 맛있는 도넛을 찾아 사 오겠지만 나는 마트에서 또 도넛가루를 사야겠다.


Photo by Arjw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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