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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11. 2023

오늘도 나는 도넛이 아닌 도나스를 먹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을까요? 저는 복직도 하고 잠깐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한다는 게 브런치 복귀가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셨을 구독자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다행스럽게 글쓰기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이 글은 앞서 올렸던 [도넛을 추억하다]를 수정ㆍ보완해본 글입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식용유는 1L짜리, 돈가스 소스는 이거면 되겠지?, 빵가루는 어디 있지?”


  돈가스를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마트 진열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밀가루 코너 진열대 가장 아래쪽 구석으로 시선을 내려보니 내가 찾던 빵가루가 종류별로 모여 있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가격과 무게를 가늠한 후 포장지 하나를 들고 일어섰다. 일어선 눈높이에는 도넛 가루 포장지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생생한 노란색 바탕 포장지 가운데에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생긴 도넛 사진이 박힌 포장지였다. 도나스 가루라 적혀 있는 포장지는 어렸을 적 집에서 어머니가 가끔 해주시던 도넛 맛을 불러왔다. 포장지에 붙은 사진만 보고도 맛있겠다는 생각에 만지작거리다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건 다 어머니 탓이다. 


“돈가스하고 남은 기름으로 도나스나 해볼까.”


  뒷면을 보니 재료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 수 있을 듯했다. 아내와 아이가 좋아할까. 고민하다 500g짜리 하나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예쁘고 맛있는 도넛 가게가 없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처음 맛 보여준 도넛은 슈퍼에서 도나스 가루를 사다 만들어준 엄마표 도넛이었다. 손으로 빚어 울퉁불퉁한 노란빛이 도는 반죽 동그라미는 시작부터 나와 동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엄마! 무할라고오ː?”

“도나스 해주께잉ː. 쩨깜만ː 비키바라인ː. 여그다 심문지 쫌 깔자이ː.”


  나와 동생의 질문에 부스럭거리며 신문지를 꺼낸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비킨 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주방 구석에 숨어 있던 휴대용 가스버너를 꺼냈다. 가스버너 위에는 집에서 제일 작은 냄비가 올라갔고 냄비 안에는 유채꽃 색깔의 투명한 콩기름이 가득 채워졌다. 딸깍! 타다다닥-화륵! 새파란 불꽃이 냄비를 재촉했다. 내 마음은 그보다 조금 더 급했지만 그렇다고 도넛이 빨리 완성되진 않았다. 

  어머니는 냄비 속 기름이 달궈진 듯 하자 반죽 귀퉁이를 살짝 꼬집어 떼어내셨다. 떼어낸 반죽을 냄비 속 기름에 떨어뜨린다. 퐁! 작은 기름방울을 튕기며 들어간 반죽은 춤추듯이 내려가 냄비 바닥에 닿았고 이내 하얗고 작은 기포에 보글보글 둘러싸여 금세 위로 떠 올랐다. 떠오르는 반죽을 본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스버너의 불을 조절했다. 모양이 흐트러질까 봐 조심스럽게 동그란 반죽을 하나씩 냄비 속 기름에 빠뜨린다. 달궈진 냄비 속 기름에 반죽이 들어가자 한여름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가 양철 지붕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쏟아진다. 쏴-아-아. 맛있는 소리에 맞춰 도나스가 익어가는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얼굴엔 웃음이 떠오르고 행복함도 냄새에 같이 떠밀려 왔다. 기름에 퐁당 빠진 노란빛 반죽이 점점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바뀌며 기름 위로 떠 오른다. 잘 익은 도나스를 천천히 젓가락으로 건져내 채반에 올려놓으니 하얀 김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나와 동생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채반 위의 도나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옴메! 뜨가라!”

“읏! 뜨가!

“조심해라잉ː. 아직 뜨가야.”


  뜨거운 손가락을 호호 불고 있는 나와 동생을 본 어머니가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손은 신문지 끝에 매달려 있고 눈은 도나스를 향한 채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기다린다. 가끔 도나스에 손가락 끝을 대보며 식었는지 확인했다. 식은 느낌이 나자 바로 집어 들었다. 아직 뜨끈뜨끈하다. 뜨거울까 봐 후후 불면서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문다. 노릇노릇하고 따뜻한 겉 부분이 입에 닿자 입술에 기름이 묻어 반지르르해진다. 한입 깨물자 바사삭하고 부서진다. 곧이어 부드러우면서도 뻑뻑한 질감의 기분 좋은 단맛이 고소함과 함께 입안을 가득 메운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먹다 꿀꺽 삼키자 입안에는 약간의 떫은맛이 남았다. 맛있다. 조금 더 크게 베어 문다. 동생과 나는 서로 경쟁하듯 도나스를 먹어 댔다. 


“우유도 가즈다가 먹제이ː”


  열심히 먹고 있는 나와 동생을 본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때 먹었던 도나스 맛은 내 머릿속에 남아 가끔 다시 꺼내보고 싶은 사진이 되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학생 때는 본능적으로 어렸을 적 먹었던 도나스 맛과 가장 비슷한 맛을 찾았던 듯 하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시장표 도넛이 내겐 그랬다. 그러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부모님이 계신 목포에서 벗어나자 내 앞에 도넛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던킨도너츠,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한동안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한입 베어 물면 가득 들어 있는 달콤한 필링에 빠졌고, 도넛을 코팅한 달달한 설탕 맛에 사로잡혀 버렸다.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며 입안을 가득 채운 달달한 도넛의 맛은 점점 다양해 졌고 나도 더 새로운 맛을 홀리듯이 찾아 다녔다. 


  그러나 대학때부터 집에서 나와서 살아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에 대한 아쉬움은 짙어져만 갔다. 살가운 아들이 아니었던 나는 힘이 들거나 어머니 음식이 그리울 때면 아무말 없이 목포에 내려갔다. 그럴 때면 어머니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그때마다 내가 좋아하던 음식을 챙겨주시느라 바빴다. 살갑지 못한 아들과 말 수가 적은 어머니는 그렇게 서로를 배웅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자 부모님 댁에 예전만큼 가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다시 옛날의 그 도나스 맛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잠에 정신없는 아내를 두고 장바구니에서 전날 사온 도넛 가루 포장지를 꺼냈다. 한참을 노려보고 있자 거실에서 책을 보던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손을 걷어붙이고 아침밥 대신 반죽을 시작했다. 다이소에서 산 작은 계량기까지 동원했지만 어쩐지 반죽이 질었다. 실패했나.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해본다.


“준형아 거기 도넛 가루 여기 반죽에 조금만 뿌려줄래?”

“이거?”


  아이가 반죽 위에 뿌려주는 도넛 가루를 보며 조금 더 조금만 더 외치다 보니 처음 생각보다 반죽 양이 많아졌다. 어? 이게 맞나? 쉽지 않았다. 그래도 즐거웠다. 주방은 이미 하얀 가루로 뒤덮였지만 모른 척했다. 대충 반죽을 완성하고 도넛 모양으로 반죽을 떼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던 아이가 손을 걷어붙였다. 


“준형이도 할꺼야?”

“응!! 나도 해볼래!!”

“그럼, 화장실 가서 비누로 손 씻고~ 장갑 끼고 와봐”


  식탁 위에 갑자기 도넛 공장이 차려졌다. 도넛 반죽은 식탁 중앙. 아이 자리와 내 자리에 도마와 쟁반을 하나씩 두었다. 도마와 쟁반에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말했다.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봐”


  가운데가 뚫린 원 모양, 꽈배기 모양, 하트모양이 만들어지면서 많다고 생각했던 반죽은 금세 동이 났다. 서로 누가 더 잘 만들었는지 주고받기 시작하자 거실엔 아이와 내가 키득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반죽이 어느 정도 되자 돈가스를 해 먹고 남은 기름을 다시 한번 체에 걸러냈다. 걸러낸 기름을 냄비에 다시 채우고 온도를 맞췄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반죽을 살짝 꼬집어 나온 쪼가리를 기름에 넣어 확인했다. 보글보글한 기포가 반죽을 감싸고 올라왔다. 온도가 된 듯했다. 조심스레 아이와 만든 도넛 반죽을 하나씩 냄비에 넣었다. 쏴-아-아. 어렸을 적 들었던 도넛 익는 소리가 난다. 뜨거운 냄새와 맛있는 소리가 가만가만 퍼진다. 집 안 가득 소리와 냄새가 퍼질 때쯤 모든 도넛 반죽이 다 튀겨졌다. 


“뭐해? 맛있는 냄새가 나네~”


  안방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내가 슬금슬금 나오며 한 이야기였다. 진한 갈색으로 완성된 도넛이 자랑스레 식탁 위에 올려졌다. 맛을 본다. 맛있다. 익숙한 맛이 났다. 어렸을 적 반가운 맛이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집에서 만든 도넛을 더 많이 먹겠다고 경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와 아이 모두 집에서 만든 도넛에 신기함과 궁금함을 나타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하나 이상 찾진 않았다. 이 맛을 찾는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그 많던 도넛도 다 내차지였다. 아내와 아이는 새로운 장소에서 더 맛있는 도넛을 찾아 사 오겠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던 도넛 맛이 그리울 때면 나는 마트에서 도넛 가루를 또 사 와야겠다. 




Photo by Ariw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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