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쌓는 자, 벽에 갇힌 자:프랑스·한국 건축사 제도

11. 제도와 현실 속 젊은 건축가의 고민

by Jeonghoon KIM

프랑스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면, 건축 교육과 사회 진입의 과정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단계적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학부 3년(Licence)과 석사 2년(Master), 총 5년의 정규 교육을 마치면 프랑스 공인 건축사 학위(Diplôme d’État d’Architecte)가 주어진다. 이 학위는 건축가로서의 자격을 의미하지만, 곧바로 독립적인 설계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후 1년간의 독립 설계·감리 자격(HMONP, Habilitation à la Maîtrise d’Œuvre en Nom Propre) 과정을 실무와 병행하며 이수해야 비로소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합격 후에는 자신의 명의로 건축사무소를 열 수 있다.


이 시험은 도면 작성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로서 법적·행정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경영 역량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실무 능력은 이미 학교와 현장에서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현장 경험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 건축사무소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서류와 계약, 건축 허가 절차까지 경험한다. 건축가가 ‘디자이너’에 머무르지 않고 ‘책임 있는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단계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HMONP 과정을 준비하던 시절, 한 중소 규모 사무소에서 도시 내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단순히 도면 검토나 회의록 정리 같은 보조 업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정 절차와 계약 구조, 현장에서의 회의진행 및 조율 등을 이해하게 됐다.


설계의 완성도만큼 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법적·행정적 조건들이었다. 예산, 안전 기준, 에너지 규제, 협력 구조… 건축은 단순한 공간 창조가 아니라 현실 위에 성실히 책임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몸소 체감했다.


이 체계는 젊은 건축가가 사회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돕는다. 학교 교육이 끝나는 동시에 실무와 연결되고, 실무의 끝에서 다시 독립의 문턱으로 이어진다. 어느 단계에서도 ‘단절’이 없다. 교육, 경험, 그리고 책임의 확장이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는 구조다.


그때 나는 문득 한국의 현실을 떠올렸다. 학부 4~5년, 석사 2년의 긴 과정을 거쳐도 사회 진입은 쉽지 않다. 일정 기간 실무를 쌓아야 비로소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그 시험은 주로 실기 도면 작성 능력을 평가한다. 이미 대학에서 전문 교육을 마친 이들이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조다. 내가 프랑스에서 일하며 배운 것은, 결국 누구나 어느 전공이든 실무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교 교육이 충분히 신뢰받지 못하고, 제도는 여전히 시험이라는 벽을 앞세우는 듯하다.


한국의 친구들은 졸업 후에도 몇 달, 때로는 몇 년씩 시험 준비를 이어갔다. 새벽까지 도면을 그리며, 그 결과가 몇 장의 채점용 도면으로 평가받는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열정을 갉아먹었다. 그중엔 재능 있고 성실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 번의 낙방 끝에 결국 건축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실력보다 운이 중요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갈 정도로 시험은 불투명했고, 그 사이 젊은 건축가들은 시간과 의욕을 잃어갔다.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는 단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제한된 비교와 경험이지만, 한국과 프랑스 모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며, 두 나라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 역시 똑같이 뛰어나다. 문제는 학생이나 교육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젊은 건축가에게 신뢰와 책임을 부여하는 구조적 체계의 차이에 있다. 프랑스에서의 과정은 건축가를 신뢰하는 사회적 합의 위에 세워져 있다. 학교는 책임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사회는 그 과정을 믿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학교와 사회, 제도 사이의 신뢰가 느슨하다. 학교는 졸업자의 취업률로 평가받고, 사회는 경험 없는 젊은 건축가를 아직 미숙한 존재로 본다. 그 결과 시험이라는 벽이 세워지고, 기득권은 그 벽을 유지하며 구조를 지킨다.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가 시간이 지나 권력의 위치에 오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또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겪었던 벽을 후배들에게 다시 세운다. 그렇게 세대가 바뀌어도 구조는 바뀌지 않고, 젊은 건축가들만 끝없는 경쟁 속에서 소모된다. 졸업생 과잉 배출과 시험 장벽이 유지되는 한, 그것은 단순한 자격 검증이 아니라 강한 자만 살아남는 구조적 경쟁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경험한 단계적 교육과 실무, 그리고 합리적인 독립 과정은 단지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젊은 건축가가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여정이었다. 건축가는 교육을 통해 사고를 배우고, 실무를 통해 책임을 배우며, 독립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직업윤리를 세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이런 체계가 자리 잡아, 젊은 건축가들이 시험이 아닌 실무와 신뢰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고,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건축은 벽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벽을 허무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벽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젊은 건축가들이 신뢰와 실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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