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건축가 · 한국의 건축가

10. 두 나라에서 경험한 건축가라는 직업의 온도

by Jeonghoon KIM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일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들은, 특별한 프로젝트나 화려한 발표보다는 일상과 업무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감한 존중의 순간들이었다.


설계 미팅에서 내 설명을 끝까지 집중해 듣고 공간에 대한 의견을 묻는 건축주나 시청 담당자들의 모습,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건축가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들은, 그 존중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미팅 중 클라이언트가 잠시 설계도를 바라보며 “이 공간이 이렇게 바뀌면 사람들의 동선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요?”라고 묻던 순간, 나는 내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순간은, 학부모 모임이나 동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자리였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건축가”라고 답하면, 상대의 눈빛이 잠깐 달라졌다. 더 알고 싶어 하는 눈빛,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존중이 담긴 태도는, 전문적인 자리에서 느낀 존중 못지않게 깊게 남았다.
이처럼 업무 현장에서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존중은, 내가 이 사회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을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를 체감하게 해 주었다.


반면, 한국에서 “건축가”라는 말을 꺼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공과 계열을 떠올리고, ‘공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이야기해도 사회 전반에서 공감보다 “우리끼리만 아는 세계”라는 느낌이 강했다. 동료나 선후배, 같은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했지만, 사회 전체가 바라보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좁았다.


그 속에서 내가 쌓아온 노력과 성취가 외부로부터 충분히 평가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어려웠다. 발표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설 때, 몇몇 동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외부 참석자의 눈빛에는 별다른 관심이나 공감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외부에서는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하나하나는 내게 소중하고 의미 있었지만, 그 성과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충분히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늘 확신할 수 없었다.


때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도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공감받고 있는가. 답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이런 고민이 쌓일수록 프랑스에서 경험했던 작은 존중의 순간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은, 그런 과거의 감정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단순히 직업에 대한 외적 존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전문가를 바라보는 방식이 개인의 동기와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 전체가 건축가의 역할과 책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프로젝트를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그 결과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건축가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 경험 덕분에 나는 매일의 업무 속에서도 스스로의 전문성을 돌아보고, 이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인식하며 살아간다. 작은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더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성취감을 발견하는 방법도 다시 배우게 되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건축가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더 넓은 사회적 공감과 존중 속에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외부의 인정 속에서 더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때까지 나는, 타국에서 경험한 이 ‘존중의 온도’를 마음속에 품고 건축가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려 한다. 언젠가는 이 경험을 후배나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작은 기준이자 방향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한 번쯤 느꼈던 ‘내 일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을 잠시 떠올리게 되었다면, 그 기억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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