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한국, 두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 이야기

09. 다섯 살 아이가 두 언어와 문화를 오가며 성장하는 하루

by Jeonghoon KIM

다섯 살 아들은 집에서 한국어를,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쓴다.
어떤 말은 한국어로, 또 어떤 말은 프랑스어 먼저 나오고, 두 언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연스레 섞인다.


나는 종종 묻는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


하지만 아들은 대답을 피한다.
이게 아들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프랑스어가 아직 부담스러워서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 역시 그 마음을 알기에 쉽게 다그치지 못한다.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몇 주 동안은 프랑스어를 다시 낯설어하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안타까웠다.
우리 둘 중 한 명이 프랑스인이었다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집에서도 프랑스어를 써야 하는지 고민도 많았다. 다행히 아들의 주치의 선생님은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으니 집에서는 한국어를 유지하라고 조언했고, 학교 선생님들도 괜찮다고 하며 조금 느릴 뿐 아이는 충분히 따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말처럼, 이곳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의 외국인 통합 정책은 완전히 현지 문화에 동화되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유·평등·박애의 가치처럼, 각자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듬으며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부모들이 집에서도 프랑스어를 쓰며 아이의 빠른 동화를 재촉하기보다는, 집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다.


그 말들에 위안을 삼으며 또,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 늦더라도 아이는 두 언어를 모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고, 또, 매주 프랑스 중학생 한 명이 집을 찾아와 아이와 이야기하고 게임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짧은 산책이나 공원 놀이 속에서도 프랑스어로 소통하도록 이끌며, 즐거운 경험 속에서 언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다.

때로는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두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아이에게 언어의 부담보다 놀이와 경험이 먼저 기억으로 남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프랑스 국기를 그려 와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국기”라고 말하는 걸 보고 조금 놀랐지만, 태극기를 보고도 역시 “우리나라 국기”라고 한다.
아직 다섯 살인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라와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이가 보는 세상과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마음 한편이 안쓰럽기도 했다.
한국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랄 나이인데, 먼 타지에서 친척과 왕래가 거의 없는 채, 오직 엄마와 아빠와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영상 통화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동화를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하며 조금이라도 그 연결감을 느끼게 하려 한다.


아이의 언어와 생활만이 고민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가고 있고, 다행히 프랑스에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점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종종 인종차별을 겪는 아이들이 있어, 부모로서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지켜보고 문제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립 가톨릭 학교를 선택했다.
안전하고 배려 깊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평등하게 친구 관계를 배우며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학교를 선택할 때도, 단순히 성적이나 명문보다 아이가 안심하고 마음껏 놀며 배우는 환경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작은 규칙을 만들어 지키거나,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 되도록 한다.


하지만 가끔은 마음이 무겁다.
부모의 욕심과 선택으로 인해 이 모든 상황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언젠가는 아이가 가진 두 언어, 두 문화가 그의 강점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부모로서의 걱정은 여전히 남는다.
언어가 늦지는 않을까, 정체성에 혼란은 없을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더 넓은 세계를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프랑스의 겨울, 한국의 명절, 학교에서 배운 프랑스 노래와 집에서 듣는 한국 동요, 공원에서 친구와 나눈 이야기까지, 그 모든 기억이 한 사람 안에 차곡차곡 쌓여 어느 하나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느낀다.


나는 아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 연결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선택 대신 두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조금 더 많은 기회를 누리고, 그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를, 나는 마음 깊이 바라본다.
매 순간 놀이와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을 존중하고, 아이가 스스로 즐겁게 성장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밝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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