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프랑스의 겨울, 난방과의 전쟁
유학 초기의 모든 계절은 낯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곳 툴루즈의 첫겨울은 유독 강렬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도,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람이 강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드는 냉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했던 따뜻한 바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온돌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생활의 지혜다.
불을 때어 구들장을 데우고, 그 열이 방 안을 고루 덮는 방식은 고대 로마의 ‘히포카우스툼(Hypocaust)’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역사이며, 그 대중성 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더 널리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온돌은 단순한 난방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사는 문화였다. 바닥 위에서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온기를 나누는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내가 살게 된 프랑스의 아파트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은 대부분 라디에이터(radiateur)를 통해 난방한다. 보일러에서 데운 온수나 전기가 벽면의 라디에이터를 순환하며 실내를 덥히는 대류열 난방 구조다.
프랑스에서는 난방이 주로 에너지 효율과 기술의 문제로 다뤄지지만, 나에게 난방은 여전히 삶의 리듬과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온돌처럼 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발끝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그리워진다.
툴루즈에서 라디에이터를 처음 켰을 때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실내가 금세 따뜻해지는 것은 좋았지만, 공기가 매우 건조해졌다. 피부가 땅기고, 코 안이 마르는 느낌은 한국에서 겪던 온돌의 포근함과는 달랐다. 자연스럽게 두꺼운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에도 실내에서는 보통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지내는 것이 익숙했다.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온기가 몸을 충분히 데워 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프랑스 사람들은 라디에이터를 켜도 공기가 빠르게 건조해지고 또 난방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집에서 스웨터를 입고 겨울을 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가끔 거리에서 반팔이나 얇은 티셔츠만 입고 활보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볼 때면, 추위를 다르게 느끼는 문화와 체질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익숙한 온도의 차이만큼, 생활의 리듬도 조금 달라진다. 따뜻한 바닥의 정서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대신 공기 속의 열이 일상을 감싼다. 지금 우리 집은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개인 난방 방식이다. 라디에이터를 돌릴 때마다 가스 요금이 머릿속을 스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값이 급등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에너지 사용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단열규정인 RT2012에서는 가스가 전기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난방 방식으로 권장되었다.
하지만 2022년 1월부터 건축허가서가 제출되는 모든 프로젝트는 새로 시행된 RE2020 환경규정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전기 기반 난방, 특히 pompe à chaleur(히트펌프) 시스템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준이 바뀌는 과정이다.
이제 프랑스에서 집을 구할 때는 위치나 면적만큼 난방 방식과 효율성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가스보일러는 설치비가 저렴하지만 유지비 부담이 크고, 전기 히트펌프는 초기 비용이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주택의 에너지 등급(DPE)이 임대료나 매매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뜻한 집’을 고르는 일은 이제 경제적 선택이자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이곳의 겨울을 지나며 나는 자주 생각한다. ‘따뜻함’이란 단순히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한국의 온돌방에서 느꼈던 그 포근함은 열의 세기보다, 사람이 모여 만든 온기였다.
프랑스의 라디에이터가 그 감각을 대신해 주진 못하지만, 이제는 낯선 시스템 속에서도 나만의 온도를 찾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프랑스의 겨울은 내게 이렇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추위 속에서 절약을 배우고, 다른 구조 속에서 적응을 배운다.
그리고 때로는, 따뜻함이란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