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공부를 멈추고, 일을 시작하다

07. 학생 체류증으로 프랑스에서 일하기까지

by Jeonghoon KIM

개인적인 사정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나는 그르노블 건축학교에서 진행하던 박사 과정을 2년 만에 멈췄다.

연구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있었지만, 현실은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의 생활비와 체류 비용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보내며, 메일함을 열 때마다 작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생활비와 체류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이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오페라 근처 한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파리 여행 때 자주 지나던 거리였기에, 그곳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던 날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이 정규직 풀타임 근무를 전제로 한 자리였다는 점이었다.
당시 내 신분은 학생 체류증(Titre de séjour étudiant)이었다.
학생 체류증으로는 학기 중 주당 15~16시간, 연간 964시간까지만 근로가 가능하며, 방학 중에만 제한적으로 풀타임 근무가 허용된다.
즉, 학업을 유지하면서 학생 체류증으로 풀타임 근무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학업 우선’이라는 체류증 목적에도 어긋난다.
실제로 이런 경우, 체류 연장이나 갱신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이미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3년짜리 체류 기간 중 앞의 2년은 학업을 이어갔지만, 마지막 1년은 개인 사정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박사 과정을 멈췄다.

여러 경로로 정보를 모으고, 행정 상담을 거듭한 끝에 나는 auto-entrepreneur (현 micro-entrepreneur) 제도로 등록했다.
프리랜서나 독립 계약자로 일하는 형태였고, 세금과 사회보장 신고를 스스로 관리해야 했지만, 근로 시간에는 제한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학생 체류증을 유지한 채, 체류 마지막 1년 동안 풀타임 근로를 시작했다.
학업을 마친 상태였기에 체류증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았고, 세금 신고와 사회보장 납부도 철저히 관리했다.

파리에서 약 1년간 프리랜서로 일한 뒤, 툴루즈에 있는 지금 직장에서 CDD(기간제) 계약 제안을 받았다.
그 계약을 근거로 changement de statut(체류 신분 변경)을 신청했고, 다행히 APS(임시 체류 허가) 절차 없이 학생 체류증에서 titre de séjour salarié(근로자 체류증)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모든 절차가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이후 계약은 CDI(정규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 사회의 정식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학생 체류증으로 일하며 깨달은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학업을 계속할지 여부와 체류 목적의 일관성이라는 점이었다.
학업을 유지하며 규정 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하지만 학업을 마쳤거나 중단한 경우라면, micro-entrepreneur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근로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핵심은 세금과 사회보장 신고를 투명하게 하고, 체류 목적을 명확히 유지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프랑스는 흔히 “ça dépend(그때그때 다르다)”의 나라라고들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담당자, 지역, 시기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의 조건을 꼼꼼히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미리 행정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체류증으로 프랑스에서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선택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나름 합법적인 대안을 찾았고, 프랑스 행정 시스템을 몸소 배우게 되었다.
돌아보면 불안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이 글이,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처럼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서는 누군가가 이 글 속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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