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설계 과제 속, 툴루즈 건축학교 첫 해
6개월이라는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반신반의하며 치른 어학시험.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한두 명씩 시험 결과를 받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만 소식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기준을 넘지 못했고, 나는 점점 불안에 사로잡혀 밥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드디어 학교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1 지망이었던 툴루즈 국립 건축학교(ENSAT,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chitecture de Toulouse)에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내 어학시험 결과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어학 기준을 넘으면 결과가 학교로 바로 전송되고, 그렇지 않으면 수험생에게 직접 도착한다는 사실을.
턱걸이 수준으로 어학 기준을 통과하고,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 합격했다. 설렘과 걱정이 반반 섞인 마음으로 툴루즈 건축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첫 학기, 익숙하지 않은 제2외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지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 “프랑스어를 꽤 잘한다”라고 믿었던 건 큰 오만이었다. 어학원에서 배운 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을 위한 수업이었고, 실제 학교에서는 모두에게 똑같이 평등하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교수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입은 점점 다물어졌다. 시험을 채점하는 교수들에게 학생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외국인이니 잘 부탁한다”는 꼼수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한국 사례를 예로 들며, 내가 외국인임을 힌트로 던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뒤처지는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모든 수업을 녹음하고, 반복해서 들으며 복습했다. 두 시간 강의가 내겐 네다섯 시간 이상의 학습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국에서 영어로 익숙하게 배우던 전공 용어도 프랑스어로 다시 익혀야 했고, 서투른 문법과 단어로 하는 프레젠테이션은 늘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나마 실기 과목은 내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교수들이 쓰는 단어와 문법을 흉내 내며 어휘력을 키우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업 내용을 요약하며, 힘겹지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가끔 교수들을 흉내 낸다고 주변 친구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웃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툴루즈 건축학교를 포함한 국립 건축학교는 프랑스 문화부 산하 전문 교육 기관으로, 연간 약 500유로의 저렴한 학비로 고품질의 건축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학제는 프랑스 고등교육 표준 LMD 체계(Licence, 학사 3년 / Master, 석사 2년 / Doctorat, 박사 3년)를 따른다.
석사 과정을 마치면 국가 공인 건축사 학위(Diplôme d’État d’Architecte)가 주어지고, 독립 설계·감리 자격(HMONP) 취득 준비가 가능하며, EU 지침에 따라 다른 회원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학문적·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덕분에, 학생들은 졸업 후 실무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
학교의 커리큘럼은 도시계획과 단위 건축 설계를 병행하며, 학생들은 주거 단위에서 도시 계획까지 다양한 규모의 설계를 경험한다. 모든 전공 수업은 학기의 설계 주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구성된다. 각 학기마다 주어진 설계 과제를 중심으로 관련 이론과 기술 수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학습과 실습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학교는 역사적 도시 환경과 현대 도시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며, 지역 지자체와 협력한 실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도시재생, 지속가능한 개발, 건축 이론 등 다양한 주제를 실제 프로젝트와 결합해 배우는 과정은 내가 한국에서 배운 과정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었다.
그렇게 툴루즈에서의 첫 해는 어학과 건축 사이의 치열한 적응기였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힘든 순간에도 친구들과 교수들의 도움 덕분에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툴루즈 건축학교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쌓는 과정이 아니었다. 다른 문화 속에서 나를 시험하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협력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배움은 이후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살아가는 나의 토대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