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같은 선택 다른 무게

14. 서로 다른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

by Jeonghoon KIM

결혼 전, 아내는 파리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유학생이었다.
하지만 우리 만남은 그녀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내는 단순히 도시를 옮긴 것이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선택 하나를 내려야 했다.
그 이유는 현실적인 조건이나 커리어 판단이 아니라, 나와의 결혼이었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와 함께 툴루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 선택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약속과도 같았다.
하지만 툴루즈에서 아내가 원하던 음악학교는 나이 제한으로 입학이 불가능했다.
다른 학교와 대안을 찾아보던 중, 임신과 출산이 찾아왔고, 아내는 계획을 잠시 멈추고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였다.


낯선 언어, 복잡한 행정 절차, 끝없이 이어지는 서류와 상담.
이 모든 결정과 책임은 대부분 아내의 몫이었다.
내가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동안, 집을 구하고 관공서를 오가며 상황을 설명해야 했던 사람도 그녀였다.
여기에 나의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격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 커뮤니티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로 인해 아내가 새로운 친분을 만들 기회도 많지 않았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고, 가족이나 친구와 전화·화상 통화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스스로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안타까웠다.
너무 많은 책임의 무게가 한꺼번에 그녀에게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결혼에는 희생과 포기가 따른다고들 하지만, 나는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집에서 기타를 치는 것 외에,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꾸준히 무언가를 수집하는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내가 받아들인 선택들이 내게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함께 나누었어야 할 책임들이, 여러 핑계로 미뤄둔 결정들이 대부분 그녀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같은 무게를 지고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내는 한 번도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늘 명랑한 얼굴로 집 안의 공기를 밝히고,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지켜왔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시간과 감정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온다.


이 글은 아내의 희생을 미화하거나 나의 후회만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선택 안에서도 책임의 무게는 다르게 놓일 수 있으며,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었다.


지금의 삶은 계획의 결과라기보다는, 선택과 책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모습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그 무게를 제대로 나누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가능한 한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작은 선택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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