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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기 Sep 01. 2021

05 아이를 키우려면 권리가 필요하다

친권 변경 소송

 5월 5일 어린이날, 선물처럼 아이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지아는 여느 휴일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 비빅, 엄마." 

 지아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달려갔다. 거기에는 아이가 서 있었다. 

 "엄마. 아빠가 엄마랑 살래." 

 지아는 기쁘면서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오늘은 아이를 만나는 날이 아니다. 지아가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은 다음 주였다. 지아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이의 설명은 이러했다. 

 아빠와 아줌마 그리고 아줌마의 딸인 누나와 넷이서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회를 먹었는데 아이는 잘 못 먹었단다. 이제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는 날 것을 잘 먹지 못했다. 그런데 아빠는 회를 안 먹는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했다며 야단을 쳤단다. 아줌마와 누나가 안 보이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아이에게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고 아이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단다. 아줌마와 누나는 본 영화이니 둘이서 보라고 해서 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냐며 또다시 야단을 쳤단다. 아이는 왜 자꾸 자신한테 화를 내냐며 소리를 쳤고, 아빠는 이럴 거면 엄마랑 살라며 지아 집 앞에 내려놓고 갔다는 것이다. 지아는 일단 주변에 살고 있는 남동생과 언니 가족을 불러 아이와 함께 있게 했다. 그리고 동건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동건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가 엄마랑 살고 싶어 하니 이제부터 같이 살라고 했다. 지아는 진심인지 의심스러워, 친권을 변경해 줄 건지 물었다. 동건은 친권 없이 그냥 아이와 살라고 했다. 지아는 동건이 기분이 안 좋아 즉흥적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지아 집으로 들어올 때는 빈손이었다. 책가방이나 당장 갈아입을 옷 등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지아는 일단 일요일까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학교를 보내야 해서 아이와 함께 동건의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광주로 내려갔다. 아이는 아빠가 엄마랑 살라고 했는데 왜 다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아는 아이를 꼭 안으며 엄마도 정말 정말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너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없고 아빠가 해 주지 않으면 엄마 혼자서 전학을 시킬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빠의 본심은 그게 아닐 거라고, 지금 화가 나서 그냥 하는 말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올려 보냈다. 하지만 지아는 1층에서 차마 발이 떼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왔고 문이 열리며 동건의 어머니가 나왔다. 지아는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잔뜩 움츠리며 인사했다. 

 "책가방도 안 가져오면 어떡하냐? 애 학교를 어떻게 보내라고?"

 "저희 집에 올 때 책가방을 안 가지고 왔는데요. 아이 아빠가 가져오지 않았나요?"

 지아의 말에 동건의 어머니는 당황해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지아도 발을 돌려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때 지아의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얘기 들었다." 

 동건의 아버지였다. 동건과 통화를 한 모양이었다. 

 "애 아빠가 화가 나서 그랬나 보다. 그래도 걱정마라. 아이를 키우는 건 나니까. 사실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다. 아이가 너를 만나고 오면 맘을 못 잡는 것 같다. 사실 너를 안 만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너도 못 할 일이고... 내가 잘 키울 테니 이제부터는 한 달에 한 번만 오면 좋겠다. 아이가 적응 잘하게 네가 도와야 할 것 아니냐." 

 지아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2주에 한 번 보는 것도 너무 힘든데 이제 한 달에 한 번만 보라니.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를 위해서라는데. 그리고 지금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는데. 지아가 기분을 거스르면 아이에게 뭔가 불이익이 갈까봐 지아는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아는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네를 반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울었다. 


 다음날, 동건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랑 살고 싶다고 하니 지아에게 키우라고 했다. 동건이 진짜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지아는 그제야 알았다. 지아는 친권 변경을 요구했고, 빨리 변경하고 여름방학 때 아이를 전학시키자고 했다. 그때까지 지아는 친권이 동건에게 계속 있으면 동건이 언제든, 마음대로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입 신고가 그렇게 쉽게,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동건은 무조건, 당장 아이를 데려가고 친권은 지아가 알아서 소송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지난한 싸움이 일주일 간 계속되었다. 지아는 도대체 이 싸움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도대체 이게 싸울 일인가. 이혼을 했고 아이를 키우다가 중간에 마음이 바뀔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쪽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된다. 전학을 또 해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방학에 전학을 시켜 아이가 다음 학기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지아의 생각이 상식적이지 않은 걸까? 


 토요일 아침 9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삐비 비빅, 엄마." 

 아이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자신의 토사물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지아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이를 키우라고 하면서 짐 하나 없이 아이를 데려다 놓은 것도 모자라, 아이가 토한 것까지 들려 보내다니. 지금까지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해 버렸다. 무엇 때문에 잘못한 것 하나 없는 지아가 죄인처럼 살았는데. 단 하나, 아이가 상처 입지 않는 것. 그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살았던 것인데. 내 아이에게 이렇게 한다고? 지아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이제 아이는 지아에게 와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지아는 당장 동건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동건의 어머니에게도 전화했다. 두 분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아는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도 엄마 집에 온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 가라면서 주머니에 돈도 넣어 줬다며 오만 원짜리 열 장을 꺼냈다. 지아는 어이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본인들이 잘 키울 거라며 한 달에 한 번만 오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아이를 보낸다고? 

 이제 전쟁이었다. 지아는 먼저 아이가 놀라지 않게 상황을 설명했다. 진짜 엄마랑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아빠에게서 '친권'이라는 것을 가져와야 한다. 전학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아빠가 마음이 변해서 너를 다시 데려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잘되면 당장 엄마랑 살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면 여름방학 때부터 엄마랑 살 수도 있다. 엄마가 이제부터 아빠랑 잘 얘기해 보겠다. 

 아이에게 그렇게 얘기했지만 동건과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았다. 지아의 요구는 단 두 가지였다. 친권을 변경해 줄 것과 친권이 변경되기 전에는 아이의 전학을 직접 해 줘야 한다는 것. 이건 요구도 아니었다.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었다. 동건은 다 지아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며. 

 이때부터 인고의 시간이었다. 지아는 먼저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아이에게 사정이 생겨서 며칠 학교를 못 갈 것 같다, 죄송하다고. 그리고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이와 여기저기 놀러를 다녔다. 그동안 시간을 못 보낸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동물원, 놀이동산, 박물관 등 매일매일 여행 가듯이 놀러를 다녔다. 하지만 그때까지 동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지아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이는 처음으로 지아에게 비수가 되는 말을 쏟아냈다. 

 "난 왜 태어난 거야?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 

 지아는 그냥 아이와 돌아가고 싶었다. 지아는 울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봐.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네가 자꾸 그렇게 맘을 약하게 먹으니까 쟤가 저러는 거야. 네가 세게 나가야지 다시는 이런 짓을 안 하지. 계속 이렇게 질질 끌려다닐 거야?"

 언니 말이 맞다. 앞으로를 위해 당장은 참아야 한다. 이 싸움은 이제 진짜 끝내야 한다. 한 번은 꼭 넘어야 되는 일이다.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지아는 아이와 함께 계속 울었다. 광주역에 도착했을 때는 지아도 아이도 어느 정도 눈물이 말라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동건의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렸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동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들어갈 필요 없어." 

 지아와 아이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동건이 서 있었다. 

 "어떻게 하면 네가 애를 키울래?"

 "먼저 친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라도 써."

 "그래. 따라와."

 동건은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지아는 스마트폰의 음성 녹음 기능을 켜고 따라갔다. 동건은 편의점에서 편지지와 펜을 사서 친권 포기 각서를 썼다. 

 "됐지? 이제 돌아가."

 "아이 물건이라도 가지고 가야지."

 "나중에 보내 줄 테니까 그냥 가."

 "학교 보내려면 책가방이라도 있어야지." 

 "올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동건은 혼자 집으로 올라가 가방을 가지고 내려왔다. 지아는 아이의 책가방을 낚아채듯 뺏어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로로 향했다. 그때 시간은 새벽 1시였다. 

 "엄마, 너무 쉬웠다. 그치?"

 아이는 밝게 웃으며 지아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미소 띤 입가에는 아직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아는 아이를 힘껏 껴안았다. 이제 진짜로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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