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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기 Aug 19. 2021

04 내 아이지만 마음대로 볼 수 없다

2주에 한 번, 면접교섭

 12월 31일. 동건이 준호를 데려갔다. 준호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지아는 준호 손에 핸드폰을 꼭 쥐어 주었다.

 "아빠 잘 만나고 엄마한테 전화해."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아이의 휴대폰은 꺼졌다.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  

 첫째 날. 지아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답 없는 휴대폰에 계속 문자만 남겼다.   

 둘째 날. 준호 담임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준호가 친구들과 인사도 못하고 전학을 가서 서운하다고. 지아는 그렇게 준호의 전학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준호가 떠난 것이 실감 났다.

 셋째 날, 침대에서 나와 회사에 갔다. 일을 하는데 갑자기 과호흡이 났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숨을 쉬었다. 그렇게 일주일. 결국 사표를 냈다. 다시 또 일주일. 집에만 머물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진정제와 수면제, 비닐봉지를 달고 버텼다. 


 새벽 1시. 띠리링. 문자가 왔다. 

 '이번 주 주말에 준호 보러 광주로 내려와.'

 준호가 서울에 없다. 준호는 할아버지 댁에 있었다. 부모님이 서울에 와 준호를 돌봐 줄 거라던 약속은 거짓이었다.  

 지아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준호를 볼 수 있다. 어기적어기적. 욕실로 기어갔다. 쏴아아. 샤워도 했다. 그런데 일어날 수 없었다.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빙빙. 머리가 돌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아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좀 도와줘."

 지아의 엄마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무 말 없이 지아를 부축했다. 응급실로 향했다. 지아는 영양제를 맞았다. 의사에게 비타민도 놔 달라고 했다. 하악. 갑자기 경련이 일었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차가운 비타민을 맞아 잠깐 쇼크가 온 것이었다. 링거를 맞고 지아는 겨우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아이와 헤어진 지, 2주. 지아는 드디어 준호를 볼 수 있었다. 2주의 시간. 광주라는 낯선 환경. 준호는 지아를 보고 주뼛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아는 준호와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가, 잘 지냈어?"

 준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가, 오늘 엄마랑 같이 잘 수 있어. 맛있는 거 먹고 엄마랑 같이 놀까?"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주스를 다 마시면 다시 들어가겠다고 했다. 지아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래, 아가가 하고 싶은데로 하자."

 준호는 주스를 다 마시고는 집에 가겠다고 일어났다. 그러다 옆에 있는 영화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 같이 영화를 봐도 돼?" 

 지아는 준호와 '다이노소어'를 봤다. 아름다운 영화. 하지만 지아와 준호에게는 너무나 슬픈 영화. 영화가 끝나자 준호는 조그맣게 말했다.

 "엄마랑 오늘 같이 자도 돼?"

 "그럼, 그럼."

 지아는 준호를 꼭 안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2주 동안 떨어져 있던 준호를 품에 안고 지아는 오랜만에 편안히 잠들었다. 

 다음 날, 준호는 일어나자마자 엄마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지아도 너무나 준호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둘은 KTX 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무작정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다. 지아는 친권이 없다. 다시 전학 시킬 수 없다. 언제든 동건이 데려갈 수 있다. 불안한 상황 속에 준호를 둘 수 없다. 지아는 태어나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지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지아는 용기를 내, 동건에게 전화를 했다.

 "준호가 나랑 너무 같이 살고 싶어 해. 양육비와 친권 문제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동건은 말도 안 된다며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준호는 KTX를 바라보며 계속 지아의 옷을 잡아당겼다.

 "엄마, 그냥 아빠 몰래 가자. 빨리 기차 타고 가자."

 지아는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었다.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준호가 원하는데 준호랑 떨어져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하고. 기차를 보내고 또 보내고. 그 사이 동건이 도착했다.

 동건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데리고 가려했다. 지아는 아이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물었다.

 "양육비 때문에 그래? 그런 거면 다시 한번 얘기해 보자."

 하지만 동건은 막무가내였다. 아이를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다시 데려간다고 하느냐. 아이를 버리다니 말도 안 된다. 이혼을 하면 부모 중 한 사람과 사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기차역에서 계속 고성이 오갔다. 그러다 결국 동건은 아이를 어깨에 들쳐 메고 떠나버렸다. 아이는 아빠에게 매달려 아빠 미워, 아빠 미워 소리치며 울었다. 기차역에 아이 울음소리가 퍼졌다. 지아는 기차역에 아이 없이,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남겨졌다. 지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2주에 한 번씩 1박 2일로 아이를 보러 광주로 갔다. 낯선 도시, 그리고 아빠 없이 아이와 둘만 보내는 낯선 주말. 처음에는 아빠, 엄마가 있는 가족만 보였다. 주변에서 모두 지아와 아이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왜 저들은 주말에 아빠 없이 다니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고 자꾸 위축되었다. 그리고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는 아이가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아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고, 먹는 약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는 상황 때문에 생긴 증세라 아무리 약을 먹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아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탄탄한 직장이 생기면 혹시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3개월 정도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공부가 잘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독서실에서 발작이 왔다. 독서실의 작은 공간과 불빛 때문이었을까. 지아는 독서실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아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취직할 생각 있어? 경력은 다 쳐 주지는 못하고, 연봉은 작은데 안정적이기는 해."

 지아는 더 생각할 것 없이 공부를 접고 취업을 했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직장이 생긴 뒤, 처음으로 한 일은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지아는 아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는지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아이의 환경 변화를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아이의 아빠가 양육권을 포기하면 데려올 수 있지만 동건은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담당자에게 입장을 전달했다고 했다.


 주아는 1년 동안, 아이만 바라보았다. 주변의 시선에도 무뎌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단단해지고 당당해졌다. 비록 아이와 헤어질 때는 죽는 것처럼 괴롭고 이틀은 정신없이 울기만 했지만 말이다.


 아이는 아빠가 자꾸 엄마 욕을 해서 싫다고 했다. 동건은 엄마가 너를 버렸고, 엄마가 바람이 나서 이혼한 거라고 말했단다. 지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웃으며 그런 거 아니라고, 엄마 아빠가 이제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게 된 거라고 말했다. 아이는 동건의 상간녀와 여행도 갔다고 했다. 지아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아이를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그 여자는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했다. 주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내 아이를 구박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셋이 여행을 가면,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엄마 아빠와 여행 온 보통의 가족으로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빠와 그렇게 보통의 가족처럼 지내도 괜찮겠구나,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기를 잘했구나.


 그렇게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아이도, 지아도 변화된 환경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는 지아에게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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