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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기 Aug 06. 2021

03 아이를 버렸다고?

친권 포기에 따른 대가

 이혼이 성립되었다. 이혼 합의서를 쓰고. 만 9년 5개월. 결혼 생활이 끝났다.  

 동건은 내년 1월에 준호를 데려가기로 했다. 아이의 정서를 생각한다나. 지아가 준호를 돌보는 동안, 양육비를 지급하고 2주에 한 번 씩 준호를 보겠다고 했다. 

 악몽 같던 이혼 조정이 끝이 났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끝일 줄 알았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혼 합의 후, 지아는 짐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혼 소송 8개월. 그 동안 지아는 짐을 못 가져왔다. 동건이 집에 못 들어오게 했기에. 이혼 합의를 할 때 이사 날짜를 정했고, 그날에 맞춰 이삿짐센터를 불렀다. 그 집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 지아는 어머니와 언니에게 대신 가달라 부탁했다. 끔찍한 일은 그때 시작되었다. 

 동건은 문을 열지 않았다. 지아의 어머니와 언니에게 욕을 퍼부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남이 내 집에 들어오려 해!" 소리를 치고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동건의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법원은 다른 날짜를 정해 주었다. 어길 시 벌금을 물리겠다며. 

 지아는 그 집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동건의 변호사가 부탁해 어쩔 수 없이 직접 가야했다. 

 빼꼼. 문이 열렸다. 동건은 준호의 돌반지와 팔찌를 달라고 했다. 하. 황당했다. 그래. 동건이 아이를 키울 것이니. 주자. 주고 말자. 지아는 문틈으로 건넸다. 끼익. 동건은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탁! 지아는 빠르게 발을 밀어 넣었다. 억지로 문을 열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들여보냈다. 쌀 짐을 확인하기 위해 지아가 들어가려 했다. 동건은 씩씩대며 못 들어오게 막았다. 피곤했다.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지아는 이삿짐 직원들이 싸온 대로 짐을 받았다. 그게 뭐라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그 오래된 짐을 받아야 하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호가 원했다. 이전 집을 그리워했다. 자신이 자던 침대와 장난감에 집착했다. 지아는 준호에게 이전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했다. 짐을 가져와야만 했다.    


동건의 폭행과 폭언, 욕설. 힘들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준호를 그 힘듦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동건이 준호 옆에서 잠든 지아의 목을 조를 때. 잠에서 깬 준호와 눈이 마주쳤을 떄. 지아는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준호를 보호하기 위해. 이혼의 진흙탕에서 지아는 필사적이었다. 준호가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물을 때. 아빠가 왜 자신을 보러 오지 않는지 물을 때. 그저 미안하다고. 아빠가 엄마에게 화가 나서 그렇다고. 이제 곧 너를 보러 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가 따로 있어도 너에게는 변함없다고. 하지만 이는 지아만의 착각이었다.  


 동건은 단독 친권을 얻자, 준호를 보러 오지 않았다. 아이의 정서 안정을 위해. 

 8개월 후, 준호의 생일에 보러 왔다. 아빠와 재미있는 시간 보내라며 준호를 웃으며 보냈다. 준호는 어색한지 주뼛거렸다.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가 그리웠는지 만나러 나갔다. 5분 후. 준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엄마랑 살면 안 돼?"

 헉. 지아는 와락 나오는 눈물을 애써 눌렀다. 

 "아가, 지금은 아빠랑 재미있게 놀고 집에 와서 다시 얘기하자."

 갑자기 동건이 주아에게 소리쳤다. 

 "애가 이렇게 엄마랑 살고 싶어 하는데 나한테 보내겠다고?"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지아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오늘은 오랜만에 준호랑 만났으니 재미있게 놀다 와 줘."

 전화가 끊기고 5분 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아빠가 나 보고 고아원에 가서 살래."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동건은 엄마가 버렸으니 이제 아빠와 살아야 한다고 했단다. 준호는 울면서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고 동건은 아빠랑 사는 게 싫으면 고아원에 가서 살라고 했단다. 

 지아는 동건에게 이러는 이유를 물었다. 

 "혹시 준호 키우는 게 부담스러워?"
 "아니. 네가 버렸잖아. 근데 나랑 살기 싫다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동건은 지아에게 아이를 버린 나쁜 년이라며 욕을 시작했다.
 "내가 키우면 당신이 준호를 버린 거야?"

 동건은 막무가내였다. 지아의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돈 때문에 그래? 양육비 주는 게 아까워?"

 동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키우는 동안은 양육비 안 받을게. 그 대신 준호를 만나는 동안에는 나쁜 말 하지 마. 잘 다독여 줘." 

 "알겠어. 대신 준호 정서를 생각해서 내가 데려갈 때까지 만나지 않을게."

 동건은 기다렸다는 듯, 양육비를 안 보냈다. 

 동건의 결론이 너무나 황당했지만, 지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준호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없기에. 


 지아는 준호를 보내기 전, 이혼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 아빠가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따로 살게 되었다고. 엄마나 아빠, 한쪽 하고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빠랑 살아도 엄마가 너를 보러 갈 거니, 엄마, 아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준호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지아는 준호와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준호는 놀이 치료와 심리 상담을, 지아는 약물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준호와 헤어질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동건은 정말 한 번도 연락을 안했다. 지아는 의문스러웠다. 동건이 아이를 정말 키울 생각이 있는지. 

 1월이 되기 하루 전. 12월 31일. 동건에게 연락했다. 

 아이를 키울 것인지. 아이를 안 키울 거라면 친권과 양육비 문제를 다시 의논하자고. 

 그러자 동건은 바로 달려왔다. 오랜만에 아빠를 보러 간 준호는 그 이후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학도 갔다. 아무것도 없이. 그때는 몰랐다. 전입과 전학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친권이 있으면 전입과 전학을 쉽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지아가 다시 친권을 가지고 오고서야. 비로소 동건이 서류를 조작했음을 알 았다.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아이를 보내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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