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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기 Aug 02. 2021

02 이혼 조정...이라 쓰고 조종이라 읽는다

친권 포기

포기했다. 친권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철저했다. 지아의 전남편, 동건은. 이혼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아는 하나도 눈치채지 못했다. 모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자신이 의심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예측 가능했기에.

 이혼하기 일 년 전. 동건은 월세로 집을 계약했다. 대부분의 재산을 동산화 했다. 모든 경제권은 동건이 쥐고 있었다. 지아는 실제 재산 내역을 몰랐다. 전혀.

 생활비는 대부분 지아가 담당했다. 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8년은 오롯이 지아 혼자의 몫이었다. 지아는 프리랜서 일을 하며 생계를 담당했다. 처음에는 동건의 병원이 자리를 잡지 못해서. 나중에는 동건의 수입은 투자와 저축으로 이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어서. 그러다 지아의 프리랜서 일이 적어졌고 2년 정도 동건에게 생활비를 받았다. 자동이체가 아닌, 지아가 통장 잔액이 0이 될 때. 달라고 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건이 이혼을 요구하면서 바로, 그날부터 신용카드는 막혔고 생활비는 끊겼다.  


이혼 소송과 함께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세세한 얘기는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이혼 전문 변호사도, 녹취록을 써준 담당자도 모두 혀를 내둘렀을 뿐. 아무튼 지아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가정법원은 조정을 회부했다.


 조정 당일, 동건은 나오지 않았다. 변호사만 출석했다. 지아는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 조정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조정관들은 세련되고 우아했다. 명품 옷과 명품 가방. 괜시리 지아는 움츠러 들었다. 끄덕끄덕.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아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의 핵심은 재산 분할과 친권, 양육권. 지아의 변호사는 재산 확인을 요청했다. 동건의 동산을 추적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조정관들은 합의를 종용했다. 동건이 낸 통장 사본만 보고 이 이상의 동산을 찾기 어려울 거라며. 잔고의 반이면 적지 않은 액수이지 않냐면서.

하지만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은가.

 현재 동건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비용은 재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혼할 때 동건이 전세금을 부담했다는 이유로. 거짓 차용증 한 장을 제시하자 조정관들은 너무나 쉽게, 부동산 관련 비용은 결혼 전 형성된 재산이라고 했다. 반면 지아가 부담한 혼수, 병원 개업 투자 비용, 자동차 교체 비용 등은 모두 배제되었다. 

 조정관들은 계속 동건이 제시한 금액은 적은 돈이 아니다,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아는 돈밖에 모르는 사치스러운 여자라는 듯이. 지아의 변호사가 재산 내역을 더 알아봐야 한다고 주장해도 조정관들은 지아의 눈을 바라보며 괜찮지 않냐며 미소 지었다. 지아는 그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의 따뜻한 미소에 동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조정관들은 재산 분할이 바라는 데로 흘러가니 매우 만족했다. 한껏 밝은 목소리로 아이의 양육은 어떻게 할 지 물었다. 동건의 변호사는 동건이 준호를 키우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지아가 키운다면, 양육비는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아는 선뜻 자신이 키우겠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동건이 이혼을 요구하자, 지아는 바로 취직을 했다. 아는 기획사에 연락을 해서 연봉 협의도 없이 그냥 무작정 일을 시작했다. 당장 준호의 유치원비와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지아는 친정에 준호를 맡기고 첫 출근을 했다. 

 취직도 했고, 준호를 돌봐줄 친정도 있고, 주변에 남동생과 언니도 있고. 지아는 이혼을 해도 준호를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이혼 전, 지아의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아가 친정에 들어와 살게 되자 아버지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처음에는 지아의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그다음에는 지아에게 화를 내고, 나가라고 하고, 아이를 시기, 질투했다. 결국 지아는 도망치듯 친정을 나왔다. 어머니가 마련해 준 작은 원룸으로.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직장에서 월급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아는 결정적인 계기로 무너져 버렸다.   

 "이혼하면 애는 너 혼자 키워야 하는 거 알지? 너 혼자 애 키울 자신 있어?"

 어느 날, 어머니와 언니에게 너무나 현실적인 말을 들었다. 이 말이 지아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 헉!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휘청! 몸의 균형을 잃었다. 맞다. 이혼하면 혼자 애를 키워야 한다. 양육비는 동건이 안 주면 그만이다. 돈을 벌려면 직장에 나가야 한다. 그동안 준호를 혼자 둘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아는 엄마나 언니에게 부탁하려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아이는 지아 혼자 키워야 한단다. 절벽으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눈보라 치는 황량한 눈밭에 벌거벗은 채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동건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와 준호를 키워주실 거라고 했다. 동건은 전문직이다.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모두 가지고 있는. 지아는 생각했다. 

 가난한 엄마랑 사는 것보다 의사 아빠랑 사는 것이 낫겠다고.

 지아는 포기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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