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기 Jul 28. 2021

01 밖으로

 주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압박스타킹을 신었다. 오른 다리를 서랍장 위에 올려놓는데 어제 보다 조금 덜 버거웠다. 스타킹 안으로 오른발을 집어넣고 스타킹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당겨 올렸다. "후!" 허벅지까지 올리고 나니 저절로 한숨이 났다. 오른 다리를 두 손으로 받쳐 내리고 이번엔 왼발을 스타킹에 집어넣었다. "찌이익." 갈라진 손톱에 스타킹이 걸렸다. 다행히 두꺼운 압박스타킹은 찢어지지 않았다. 주아는 손톱 가위를 찾아 갈라진 손톱을 잘랐다. 주아의 손톱은 짧아질 데로 짧아져 있었다. 손톱 끝이 갈라져 껍질처럼 한 겹씩 벗겨지다 보니 손톱은 점점 손가락 살 속에 파묻혀 버렸다. 두 다리에 스타킹을 신고 나니 벌써 힘이 쭉 빠졌다. 주아는 침대에 잠시 멍하니 앉았다. '나가지 말까? 오늘 예약을 취소할까?'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주아는 다시 힘을 내 침대에서 일어났다.

 우연히 앞에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하!" 벌써 7개월이나 본모습이지만 아직 주아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덜 깎은 수염처럼 까칠까칠한 머리카락, 항암 부작용으로 풍선처럼 부푼 몸통과 성기 그리고 허벅지와 종아리, 팔. 항암 6차를 받고 나서 주아의 몸은 항암 부작용으로 붓기 시작하더니 결국 항암 8차를 시작할 때는 15kg이나 불어났다. 만삭 때의 몸무게와 같았지만 주아는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 너무나 거북했다. 임신을 했을 때도 신체의 변화가 있었지만 자신의 몸이 혐오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같은 몸무게인 지금, 주아는 자신의 몸이 너무나 싫었다.

 그랬다. 항암의 부작용은 하루하루 항상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머리카락이 빠졌고, 설사가 났고, 구토가 났다. 그러다 림프를 절제한 팔에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다. 림프부종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압박 붕대로 오른팔을 22시간 동안 감고 지냈다. 그리고 허벅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어오르니 걸을 때도, 앉을 때도 아니 움직일 때마다 너무 아팠다. 주아가 걷는 모습은 마치 오리의 뒷모습 같았다. 무릎이 붙지 않아 다리를 벌리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그래서 주아는 압박 스타킹을 신고 다리를 압박 붕대로 묶었다. 그런데 이에 반작용이 따랐다. 온몸의 붓기가 배와 성기 부분으로 몰려 부풀어 오른 것이다. 주아는 임신과 출산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 변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부종으로 부풀어 오른 모습은 너무나 낯설어 힘들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신체 부위가 부풀어 오르는 것은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44살에 이제 여자로서의 삶은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아는 마지막 힘을 내 롱 원피스를 걸치고 민둥산 같은 머리에 모자 가발을 썼다. 주아의 머리카락이 빠진 건 항암을 하고 딱 3일이 지났을 때였다. 텔레비전을 보다 무심결에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기자 머리카락이 한 움큼 걸려 나왔다. 주아는 휴지통을 앞에 놓고 앉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머리카락은 봄날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3시간 만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주아의 풍성했던 머리칼은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우습게도 귓가 주변에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남아 끝까지 빠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샤워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아들이 놀랄까 걱정했던 일들은 기우로 끝날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들리는 주아의 웃음소리에 아들, 준호도 따라 웃었기 때문이다.

 주아가 처음 화장실에서 웃음을 터트린 날, 준호가 화장실 문 앞에 다가와 물었다.

 "엄마, 왜 웃어?"

 "엄마 머리가 너무 웃겨서. 골룸 같아."

 화장실 밖으로 웃으며 나오는 주아를 보고 준호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둘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크게 웃었다. 숨이 넘어갈 듯이.

 "근데 엄마, 골룸이 뭐야?"

 주아는 인터넷에서 골룸 사진을 찾아 준호에게 보여줬다. 그 사진을 보고 또 둘은 그렇게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덕분에 슬프고 충격적인 첫 번째 산은 코미디로 끝날 수 있었다.

 사실 주아는 준호가 놀랄까 걱정을 많이 다. 준호는 주아의 머리카락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준호는 아기 때부터 잘 때나 힘들 때 주아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아기 때는 주아의 머리카락을 너무 꽉 잡아 머리카락을 기르지 못했다. 가끔 준호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혀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호가 클수록 머리카락 쓰다듬는 것을 좋아해 주아는 아가씨 때도 안 기르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르게 되었다. 준호는 중학생이 되고서도 잘 때, 주아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랬기에 주아는 머리카락이 빠진 자신ㅌ의 모습을 준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화장실 해프닝 덕분에 이제 준호는 주아의 까끌까끌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들 정도로 주아의 머리에 익숙해졌다.

 



 안 빠지는 머리카락을 쉐이빙 받기 위해 주아는 처음으로 환우 전문 가발 가게를 찾았다. 쉐이빙 후, 눈에 띄는 모자 가발을 하나 써 보았다. 그때의 첫 느낌을 주아는 잊을 수 없다. 모자 가발은 마법처럼 주아의 암을 완전히 잊게 해 주었다. 수술 전의, 너무나 되돌리고 싶던, 그리웠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날 주아는 너무나 즐겁게 홍대 거리를 이리저리 누비며 일상의 공기를 느꼈고, 평범하게 점심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자 가발을 써도 더 이상 예전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아는 큰 맘먹고 마사지 샵을 끊었다. 병원에서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빠질 거라고 했지만 주아에게 시간은 가장 힘든 치료제였다. 뭐든지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선택한 마사지 샵은 실패였다. 마사지를 받고 운동 기기와 열기구에 들어갔다 나오자 몸의 붓기는 더 심해졌다. 보통의 부종이나 살이었다면 땀을 내면 빠질 텐데 항암 부작용으로 나타난 붓기는 땀이 나면 더욱 심해졌다. 사실 주아의 부종이 심해진 건 건강을 위해 실내 자전거를 하루에 2시간씩 타고나서부터였다. 2시간은 주아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단면이다. 주아의 성격은 정말 극단적이었다.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과하게 했고, 끝을 봐야 했다. 반면에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운동도 그랬다. 그 전에는 운동은 숨쉬는 것 이외에는 하지 않고, 와식 생활만 하다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하루에 2시간씩 실내 자전거를 탔다.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일까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자 허벅지는 걷잡을 수 없이 땡땡하게 부풀어 올랐다.  

 두 번째로 찾은 마사지샵은 기기 관리 없이 손으로만 마사지를 했다. 한 시간을 받고 나자 훨씬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지친 몸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 주아에게 힐링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마사지를 받기 위해 힘들게 집을 나선 것이다.

 오늘은 2시간 동안 배와 하체를 집중적으로 마사지 받았다. 이렇게 누워서 마사지를 받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호화로운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성 가득한 손길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44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픔 그리고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2시간 마사지를 받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주아는 탈의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다리를 드는 게 아직 힘들었다. 정신적인 힐링만큼 몸의 힐링이 따라와 주는 건 아닌 가보다. 그래도 주아는 기쁜 마음으로 옷을 입고 나와 다음 예약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집까지 걸어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번에 걸어서. 그런데 아파트 공동 현관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당신은 어떤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그 포스터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마스크를 항상 잘 쓰고 다녔고,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했는데 암이라는 복병을 만나 수술실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포스터를 볼 때마다 왠지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기뻐하는 주아 모습을 보고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었다.

 "마사지받으니 어때?"

 "너무 좋아."

 "네가 이렇게 기뻐하니 엄마가 더 기쁘다."

 엄마는 주아를 두 팔로 와락 안아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리도록 따뜻한 눈의 여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