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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Aug 12. 2019

ITZY와 이선희의 공통점

아재 덕후의 과거와 현재

 지난 7월의 마지막 날, 택배 상자 하나가 내 진료실로 배달되었다.

 그 상자 안에서 나온 내용물은 바로, 지난 2월에 데뷔 후 5개월 만에 컴백한 걸그룹 ITZY의 새 앨범 'IT'Z ICY' CD 패키지였다. 출시되기 며칠 전에 예스24에서 예약 구매해놓은 상품이 그날 배송된 것이었다.

 마흔 중반의 애 아빠가 무슨 아이돌 CD에 포카(포토 카드)냐며, 혹자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의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인 ITZY에게 이 정도의 감사 표시를 하는 게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설마, 내가 한낱 포카 따위가 탐나서 저 앨범 패키지를 샀을라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약간 탐나긴 했다. 만약 내가 구입한 첫 패키지에 최애 '류진' 포카가 들어있지 않았더라면, 나올 때까지 몇 개 더 샀을지도 모르는 일.)

  



 그나저나 CD 구입은 꽤 오랜만이다.

 작년 5월 말에 발표된 이선희 님의 리메이크 앨범 '르 데르니에 아무르' 이후에 처음이니까, 거의 15개월 만인 셈이다.


 사실 CD를 감상용으로 구입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주로 디지털 음원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는 현세대에게, CD는 감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소장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웬만큼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면, CD까지 사주진 않는다.

 그런고로 요즘의 앨범 판매량은 대중적 인기보다는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에 의해 좌우되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앨범 판매량 중에서도 예약 판매를 포함해 첫 1주일 동안 팔린 양을 말하는 '초동 판매량'은 팬덤의 화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인 만큼, 내 가수의 위상을 세워주기 위해 1인당 수십 혹은 수백 장씩의 앨범을 매입하는 열혈 팬도 더러 있다고 한다.

 내 가수에게 번듯한 초동 기록 만들어 주려고 영혼까지 탈탈 턴다고 표현되기도 하는 팬덤의 행태를 안 좋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필자에겐 자못 익숙하고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내가 35년 간 충성을 바쳐온 가수 이선희 누님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매번 수십 장씩 사들이며 친지들에게 선물로 돌린 바 있는 나다. (물론 내게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학창 시절이 아니라, 돈을 벌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에 그랬단 얘기다.)




 그러고 보니 ITZY의 컴백일이었던 2019년 7월 29일은 내 인생의 디바, 선희 누나의 데뷔 35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당찬 표정의 파마머리 여대생이 등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그날이 바로 1984년 7월 29일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국민학교 3학년생이었다.

 하늘처럼 맑으면서도 태양처럼 뜨거웠던 스무 살 그녀에게 영혼을 사로잡혀버린 열 살 소년은 어느덧 마흔 중반의 애 아빠가 되었지만, 지금도 누나 앞에선 순진무구했던 유년의 감성으로 회귀하곤 한다.


 선희 누나를 향한 내 덕질의 역사를 설명하려다 보니, '히든 싱어 이선희 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방영 당시 시청률이 잘 나왔던 데다 재방송도 자주 한 관계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방송을 보신 분들이 꽤 많으시리라 생각된다.

 바로 그 '히든 싱어 이선희 편' 1라운드 시작 전에, 판정단 석에 앉은 한 열성 팬의 인터뷰가 전파를 탄 바 있다. 전교 1등 하면 이선희 콘서트 보내주겠다는 엄마의 한마디에, 정말 전교 1등 해서 이선희 콘서트에 갔다는 의사 이야기….  

 그때 인터뷰했던 그 소아과 의사가 바로 나다.

 다음의 글은 '히든 싱어 이선희 편'이 방영된 다음 날인 2014년 8월 24일에 내 블로그에 남겼던 포스팅이다.

 TV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지만, 녹화 현장에서 느꼈던 기쁨과 영광을 방송을 통해 한 번 더 느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면서도 뭔가 얼떨떨한 밤이었습니다.    
 그냥 이선희 편이었다고 해도 재미있게 봤을 텐데, 중간중간에 저와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니까 더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새벽이 가까워 올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남들에겐 그냥 단순히 '덕후질' 정도로 보일 수 있겠지만, 30년 동안 제가 지켜온 그 의미는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답니다.
 '이선희'라는 존재는 제 인생의 토양에 아주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거든요.

 만감이 교차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주말이었어요.   

 긍정의 마법을 믿으며 살려고 노력해왔지만, 나도 모르게 불행과 좌절을 먼저 걱정하며 그 순간에 누려야 할 것들까지도 유예시키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던 것 같아요.  
 이젠 빛을 두려워하지 않을게요.
 빛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의 더 깊은 어둠이 두려워 차라리 어둠 속에 숨어버리는 어리석음 따윈 과거로 날려버릴게요.

 이렇게 또 한동안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네요.

 나의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언제나 당신은 저에게 기적 같은 마법이었습니다.  
 그 마법이 오래오래 풀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 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그래도 꽤 '성공한 덕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방송에 특별히 섭외되어서 선희 누님과 대면 인터뷰까지 했으니 말이다.

 진료 마감을 두 시간 앞당겨 끝내고 가서는, 오후 여섯 시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장장 여섯 시간 넘게 녹화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누님에게 충성해온 (당시 기준으로) 30년 세월을, 그 여섯 시간 동안 한목에 몰아서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내가 35년 동안 모셔온 디바 '이선희'와 이제 입덕 6개월 차에 접어든 'ITZY'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자와 후자 모두 '걸크러쉬'라는 점이다.

걸크러쉬 : 여자(Girl)와 반하다(Crush on)를 합친 단어로, 어떤 여성이 다른 여성의 동경이나 우상, 찬양의 대상이 될 때 사용되는 단어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선희 누나는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가창력과 보이쉬한 외모로 언니 부대를 몰고 다니던 원조 걸크러쉬였고, ITZY 역시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다른 애들과는 다른' 거침없고 당찬 매력과 탁월한 퍼포먼스로 남덕보다는 여덕을 더 많이 이끄는 신생 걸크러쉬 그룹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쁜 여자보다는 멋진 여자에게 더 끌리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선희 누나나 ITZY가 예쁘지 않다는 얘긴 아니고, 양쪽 모두 아름다우면서도 멋진 여성들이라고 하는 게 더 적확하겠다.  (그런 내가 선택한 우리 집사람 역시 아름답고도 멋진 여성이라는 사실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들 짐작하시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딸 가진 아빠로서, 우리 딸 '채연이' 역시 언제 어디서든 거침없이 당당한, 아름답고도 멋진 여성으로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 사랑 따위에 목매지 않아 세상엔 재밌는 게 더 많아~


난 특별하니까 YEAH~


 아닌 게 아니라, ITZY의 노래들을 듣고 있다 보면 '내 딸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다시 말해, 내가 채연이에게 바라는 가치들이 ITZY 노래에 많이 담겨있다는 얘기다. (페미니즘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다.)

 

고개를 들고 네 꿈을 쫓아 Just keep on dreamin'

Keep your chin up, We got your back

Keep your head up, Just keep on dreamin'


그러니까 이게 곧 아빠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채연아!

 

2019년 2월 24일


 덕질 얘기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결국 '기승전채연'이로구나!

 선희 누나와 ITZY가 아무리 좋아도,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뮤즈는 우리 딸 채연이니 말이다.


 이런 발언으로 끝내 버리면, 집사람이 서운해하겠지?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비너스입니다, 여보!







# ITZY 컴백 후 4관왕(쇼챔 1위, 엠카 1위, 음중 1위, 인가 1위) 축하해!

# 시대와는 동떨어지게 음반 성적 반영 비율이 너무 높아서 '음반 뱅크'라 불리는 '뮤뱅'도 각성하고 얼른 1위를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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