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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Sep 30. 2019

가을 사생대회의 추억

내 마음속 수채화 (한국수필 10월호)

 한쪽 모서리에 도장이 찍힌 4절지를 받아 든 나는 이내 뛰듯이 걷기 시작했다.


 “재혁아, 잠깐만!”


 담임 선생님이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도, 나는 잰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려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아, 뭐가 그리 급하냐?”

 “빨리 가서 제 자리를 잡아야 하거든요, 선생님.”

 “천천히 가도 괜찮다, 재혁아. 잠깐만 서 봐!”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꾸만 나를 불러 세우려는 선생님을 애써 외면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였다.

 이윽고 내가 당도한 곳은 우리 학교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애망원 앞 자작나무 숲길이었다. 내가 며칠 전부터 미리 찍어둔 지점에 이젤을 놓고 화구를 펼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깊이 안도했다.

 덩달아 빠른 걸음으로 나를 따라오신 선생님은 그림 그릴 채비에 분주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계셨다.


 “그래, 곽재혁답게 평소대로만 해라!”


 한동안 뒷짐을 진 채 내 뒤편을 지키고 계시던 선생님은 그 말 한마디만 남긴 채 물러가셨다.

 ‘혹시, 내게 뭔가 다른 할 말이 있으셨던 걸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스케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오래 머물 자리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의 응원 메시지마저도 건성으로 응대했던 나는 지체 없이 스케치에 들어갔다.

 내가 4절지에 담을 풍경은 바로 자작나무 숲과 애망원 건물이었다. 흑갈색의 자작나무 숲과 붉은 벽돌 건물을 좌우에 배치하고 바닥엔 단풍든 수풀이 우거진 대각선 구도의 그림을 그릴 계획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며칠간 연습했던 구도였기 때문에, 나는 막힘없이 화폭을 채워갈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마치 가을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진 채,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대회 종료 시각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일찌감치 완성작을 제출했다. 그림을 더 오래 붙잡고 있다가 터치가 너무 과해지면, 도리어 그림을 망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벌써 제출했다고? 나한테 검사라도 받고 내지 그랬어!”


 이미 작품을 제출한 후에 화구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뒤늦게 나를 찾아오신 미술 지도교사 선생님에게서 그런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렸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대회 다음 날 등교한 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정보 제공자는 바로 판화 부문에 출전했던 같은 반 여자애 K였다.


 “수묵화 부문에 나갔던 S는 과학실에서 미술쌤이 다 그려주셨대. 과학실 창문을 신문지로 다 가려놓고는 그 안에서 그려주셨나 봐. 그런데 재혁이 넌 왜 과학실에 안 들어갔어?”


 그 전날에 내가 출전했던 미술대회는 바로 ‘1987년 대구 직할시 학생예술경연대회’의 일환이었다. 학생예술경연대회 중 미술 부문 경연이 바로 우리 학교에서 개최된 것이었다. 그때 6학년이었던 나는 풍경화 부문 학교 대표로 그 미술대회에 출전했다.

 당시에 개교한 지 5년밖에 안 된 신설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큰 대회를 유치한 터라 사뭇 고무된 분위기였었다. 대회 전날엔 전교생이 학교 구석구석을 대청소하는 데 투입되기도 했다.

 한데 그렇게 들뜬 축제 분위기 속에서 그런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알지 못했던 나였다. 아마도 우리 학교의 높으신 분들은, 대회를 주관하는 학교로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학교의 속 검은 책략은 그대로 주효했다. 수묵화 부문에 출전했던 S는 최고상인 금상의 영예를 안았고, 그녀는 학교의 영웅이 되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특선에 머무른 나에겐 아쉬움의 반응들만 쏟아졌다. 문예부 담당인 교무주임 선생님과 미술부 담당인 연구주임 선생님이 서로 끌어가려고 신경전을 펼칠 정도로 우리 학교의 기대주였던 내게 주어진 ‘특선’이라는 상은 학교 측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모교에서 개최된 미술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던 아쉬움의 응어리는 자못 오래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후, 마침내 그 응어리를 풀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인 1989년에, 2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회가 열렸지 뭔가?

 나는 꼭 패자부활전에라도 임하는 심정으로, 2년 전과 똑같은 구도로 대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자작나무 숲과 애망원 건물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에는 다홍빛 기와지붕이 생겼고, 자작나무 숲과 건물 사이에는 좁다란 오솔길이 나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각선 구도가 완성되어 있었다.

 2년 전보다 훨씬 더 짜임새 있고 정돈된 느낌의 구도와 업그레이드된 그림 실력으로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나는 ‘1989년 대구시 학생예술대회’ 중등부 풍경화 부문에서 금상의 영예를 안기에 이르렀다.

 2년 동안 내 어린 가슴속에 맺혀있었던 응어리가 한꺼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여름내 열기와 습기에 점령당해있던 대기가 어느덧 선선한 냉기로 채워지고, 초록을 다 소진한 녹음 대신 붉고 노란 단풍이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하면, 나는 가을 속에 푹 잠긴 채 수채화 삼매경에 빠져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가을마다 사생대회에 나갔으니, 나는 내 감수성이 가장 맑고 밝게 빛나던 시절에 수채화를 그리며 가을을 보낸 셈이다.

 내가 그림을 놓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요즘도 단풍든 풍경을 보면 보이지 않는 붓과 물감으로 내 마음속 화폭에 옮겨 그려보곤 한다.


 ‘혹시 그때 나도 과학실에 들어가서 미술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제출했다면 어땠을까?’


 그 당시엔 분명 오래도록 아쉬워한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외려 아찔해지는 기억이다. 내가 만약 그 조직적 부정행위에 동참했었더라면, 나는 두고두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테니 말이다. 하마터면 그 수채화처럼 맑고 순수한 가을 사생대회의 기억이, 떠올리기도 싫은 불편한 기억이 될 뻔했지 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대회 당시에 나를 쫓아오셨던 담임 선생님이 내게 꺼내려다 만 그 말은, 바로 과학실에 가자는 말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누군가로부터 나를 데리고 오라는 특명을 받고, 날 과학실로 데려가려고 따라오신 게 틀림없다. 그러다 끝내 내 앞에서 한마디도 못 꺼낸 채 돌아가셔서는, 학교 고위층으로부터 질책당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곽재혁답게 평소대로만 해라!”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그토록 묵직한 의미가 담겨 있었음을,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저지르려는 부정행위로부터 나를, 내 동심을 지켜주려 한 선생님의 결연한 의지를 뒤늦게야 깨닫게 된 나다.


 가을이면 떠오르는 사생대회의 기억과 함께, 나는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상곤 선생님을 추억한다. 그분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시는 한편,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가능성까지 발굴해 내게 많은 발전의 기회를 주셨던 고마운 분이시다.

 생각날 때마다 연락드리고 찾아뵙고 싶은 은사님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분은 이미 십수 년 전에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이다.

 빚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집을 날려 버린 후 셋방살이하시며 날마다 술로 괴로움을 달래시다 그렇게 되셨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선량함이 그 좋은 분을 그토록 비참한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니, 신을 향한 반항심 같은 게 솟구치는 것만 같다.

 다만 지금은 더 좋은 세상에서 더 고귀한 존재로 살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죄스러움을 조금이나 희석해 본다.


 “선생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그때 제 동심을 지켜주셔서, 맑고 순수한 가을의 기억을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받은 귀한 가르침으로, 이 세상에 좋은 가치를 퍼뜨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곳에서 부디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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