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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재혁 Apr 20. 2019

행복의 푸아그라

월간에세이 2017년 6월호 이달의 에세이

 故신해철이 속했던 그룹 넥스트의 히트곡 ‘날아라 병아리’에는 육교 위 네모난 상자에서 처음 만난 병아리와의 슬픈 추억이 담겨있다.

 

 ‘굿바이 얄리,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어린 눈으로 처음 목격한 죽음을 노래한, 그 슬픈 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나 역시 병아리에 관한 추억이 있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얄리와는 육교 위가 아닌 학교 앞에서 처음 만났다. 집에 데려와서 한동안은 손수 물과 모이를 챙겨주고 손수건 이불도 덮어주며 유난을 떨었지만, 나의 애정과 관심은 얼마 안 가 병아리 몸에서 노란 깃털이 빠지듯 성글어졌다. 결국 병아리 뒤치다꺼리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거둬먹이신 덕에 병아리는 죽지 않고 닭이 되었다. 그런데 닭이 된 나의 얄리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초저녁에 우는 어스름 닭은 잡아먹어야 한다.”

 

 등산 다녀오시는 길에 우리 집에 들르신 외할아버지는 나더러 들어가 있으라고 하시고는 마당에 혼자 남으셨다. 얼마 후 우리 집 마루에는 잔치에 버금가는 거한 상이 차려졌다. 나는 외할아버지 앞에 놓인 닭모래집 볶음과 내 앞에 있는 닭튀김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잘 크면 된다.”

 

 닭모래집을 틀니로 질겅질겅 씹으시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시던 외할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망설임 끝에 캐러멜 색 튀김옷이 입혀진 닭다리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그게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나의 얄리를 닭이 될 때까지 키워서는 무참하게 잡아먹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은 환상적인 맛에 매혹된 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버렸다.




 어른이 되어 푸아그라의 맛을 알게 되었을 때, 불현듯 병아리에 관한 유년의 추억이 떠올랐다. 맛있어서 더 미안했던 그 미묘한 미식의 경험 말이다. 알맞게 구워진 상태로 검붉은 체리 소스에 휘감겨 나오는 푸아그라는 놀라운 식감과 풍미로 내게 황홀한 행복감을 선사했지만, 우연히 알게 된 푸아그라 채취 과정은 나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거위를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가둬둔 채 엄청난 양의 곡식을 식도로 연결된 관을 통해 강제로 먹인다. 그 과정에서 거위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고영양분으로 인해 간에 지방이 쌓이게 되고, 그 지방이 빠지기 전에 거위의 몸에서 간을 꺼낸다. 그렇게 푸아그라가 만들어지고 채취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인간의 잔혹성과 맞닥뜨려야 하지만, 꿈결처럼 부드러운 식감과 신비로운 풍미를 느끼고 나면 나는 기꺼이 잔인한 인류의 변호인이 되고 만다.


 ‘이왕 죽어서 먹힐 운명이었다면, 어떤 이에게 이런 미식의 행복을 남겨주고 떠난 거위가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산 게 아닐까?’


 이는 터무니없이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궤변일 것이다. 아마 동물 애호가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의 푸아그라 사랑을 포기하기 어렵다. 도대체 나는 어찌해야 하나?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잘 크면 된다.”


 집에서 키우던 닭이 토막 난 상태로 튀김옷을 입고 상 위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던 어린 내게 외할아버지가 해주셨던 그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본다. 푸아그라를 먹고 행복해진 내가 이 세상에 행복의 기운을 퍼뜨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되잖아? 그것이 바로 내게 행복의 푸아그라를 남기고 떠난 거위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맛있어서 더 미안한 만큼,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 갚으면 되지 않을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29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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