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멈칫했다. 문진과 진찰부터 처방과 설명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쉴 틈 없이 반복하고 있던 나는 범상치 않은 환자의 등장에 그만 일시정지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월령에 비해 현저히 작은 몸집과 특이한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코에 달린 비위관만 봐도 뭔가 중대한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볼 수 있는 환자가 아닌 것 같은데요?”
4년 전, 할머니의 품에 안겨 내 진료실로 들어온 생후 9개월의 준이를 처음 대한 내 첫마디는 그러했다. 솔직히 나는 은근슬쩍 발뺌해버리고만 싶었다. 사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봐야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는 동네 소아과 의사에게 준이는 결코 달갑지 않은 환자였다. 아무래도 진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섣불리 처방을 내렸다가 혹시라도 아이가 더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애먼 덤터기를 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소아과 여러 군데를 다 가봤는데, 우리 준이를 잘 안 받아주시더군요. 다들 큰 병원에 가보라고만 해요. 그렇다고 감기 걸릴 때마다 대학 병원을 가려니 너무 힘들어요. 그냥 선생님이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준이 할머니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결국 준이를 진료한 후 처방전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혹시 심해지면 대학 병원으로 꼭 가보라는 당부를 덧붙이는 것으로 내 마음의 부담을 좀 덜어냈다.
그날 이후로 준이는 우리 소아과의 단골이 되었다. 평일에는 할머니가, 주말에는 부모가 준이를 데려왔다. 그런데 진료 대기 리스트에 준이의 이름이 뜨면 한숨부터 나왔다. 준이를 진료하려면 여느 환자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네 소아과 의사로서 내가 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준이가 내 진료실을 들락거린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준이네는 이웃 도시로 이사를 갔다. 한데 이사 간 후로도 준이네 가족은 계속 나를 찾아왔다. 거기서 우리 소아과까지 오려면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집 근처 다른 소아과에 가봤는데, 준이가 너무 울어대서 그냥 선생님한테로 왔어요.”
21개월이 되어서도 준이는 여전히 콧줄을 끼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목을 가누고 혼자서 앉아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아직도 입으로 먹질 못하고 비위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34주에 2.5Kg으로 태어나서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출생력이 있긴 했지만, 검사 상 뇌 병변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의 성장과 발달은 또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느렸고, 콧줄을 떼고 입으로 먹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월화수는 서울의 S병원에서, 목금은 수원의 V병원에서 운동치료와 연하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준이 할머니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선생님, 뇌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우리 준이는 왜 입으로 먹질 못할까요?”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준이 할머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군데의 대학병원에서 시행한 각종 검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그 원인을 동네 소아과 의사인 내가 밝혀낼 리 만무했다. 물론 준이 할머니도 내게 꼭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한 건 아니었으리라.
이사를 간 후에도 한 달에 두세 번 이상은 대기환자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준이가 한동안 뜸하다고 생각될 즈음이었다. 두 달 만에 다시 나타난 준이는 전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올 때마다 큰 눈을 이지러뜨리며 생글생글 잘 웃어주던 준이가 그날은 날 보자마자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하도 여러 군데 병원을 다니며 운동 치료, 연하 치료 같은 걸 수없이 받다 보니 우리 준이에게 병원 공포증이 생겼나 봐요. 제일 좋아하던 선생님을 보고도 우는 걸 보면요.”
내 진료실에 와서만큼은 얌전하게 진찰 잘 받던 준이가 갑자기 난리를 치니 준이 할머니도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우는 준이를 어르며 힘겹게 진찰을 이어갔다.
“헉!”
내 눈앞을 덮쳐오는 액체의 습격에 깜짝 놀란 나는 진찰을 멈추고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준이가 내 눈에다 침을 뱉은 것이었다. 눈 안으로 침방울이 튀어서,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세면대로 가서 물로 눈 주변을 닦았지만, 내가 받은 굴욕감까지 닦이진 않았다. 아이들을 진찰하다 보면 수시로 발로 차이기도 하는 소아과 의사에게도 얼굴에 당한 침 세례는 어이없는 굴욕이었다.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서도, 나는 준이와 준이 할머니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아무리 아이가 저지른 일이지만, 그런 무례에 사과 한 마디 없는 준이 할머니가 야속했다.
“준이를 진료할 때마다 혹시 제가 놓치는 건 없는지 가슴 한 구석이 늘 찜찜했어요. 의사로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도 제한적이라 안타까웠고요. 이제 준이는 그냥 대학병원으로 다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침 세례 굴욕으로 촉발된 내 항복 선언 앞에서 준이 할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기 시작했다. 뜻밖의 눈물을 마주한 나는 침 세례를 받았을 때보다 외려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 준이의 병명을 알았어요. 세 번째로 찾아갔던 A병원에서 겨우 밝혀냈지 뭐예요. 우리 준이는 코스텔로 증후군이래요. 너무 희귀한 병이라 다른 병원에서는 못 밝혀냈던 거예요. 저는 그래도 준이가 열심히 치료받으면 보통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애초부터 그런 병을 갖고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자라긴 힘들 거라는 말을 들으니 맥이 탁 풀리더군요. 이 병은 유전성 질환이라는데, 참 이상해요. 준이 엄마, 아빠는 둘 다 멘사 출신에 S전자 연구원들이거든요? 그렇게 똑똑한 부모 밑에서 왜 이런 아이가 태어났을까요?”
나는 준이 할머니에게 병명을 되물었다. 그리고는 메모지에 받아 적은 병명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나에게도 생소한 병이었기 때문이다.
‘코스텔로 증후군은 뇌, 신경, 피부, 근육골격계, 심장 등 여러 장기를 침범하는 유전성 질환으로 2,400만 명에 한 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한 얼굴 모습, 성장 및 발달지연, 유쾌하고 애교 있는 행동 양상, 저신장증, 연하곤란, 수유장애, 두껍고 헐렁한 피부 등이 관찰되며 심혈관계 이상과 악성 종양 등이 발생할 수….’
검색된 내용을 읽어갈수록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이 자료속의 내용을 준이 할머니도 읽거나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준이의 병에 대해 듣고 나선 제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정상적으로 키워보려고 너무 몰아붙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로만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로 했답니다.”
준이 할머니의 눈물 어린 고백 앞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의사로서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만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저는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요. 준이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 주시고, 정답게 말도 걸어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준이도 선생님을 좋아하고요. 그래서 거리가 좀 멀어도 여기까지 다니는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준이의 주치의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미안함만으로도 벅찬데, 황송하기 이를 데 없는 감사와 부탁의 말까지 들은 나는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준이네가 진료실을 나간 후에도 복잡한 감정의 체증이 풀릴 때까지, 나는 다음 환자를 부르지 못했다.
생후 9개월부터 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준이는 감기나 장염 증상이 있을 때마다 날 찾아오는, 내 환자다. 처음 보자마자 내가 볼 환자가 아닌 것 같다며 밀어내려고 했던 준이를 나는 5년째 보고 있는 셈이다.
요즘도 가끔 내게 침을 뱉기도 하지만, 어쩌다 기분 좋을 땐 살인미소와 애교를 보여주기도 한다. 비위관을 떼고 입으로 먹기 시작한 지는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유동식밖에 먹질 못 한다. 영양이 제한적이다 보니 여태껏 몸무게는 10킬로그램에 못 미친다. 간단한 단어 몇 가지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보조기를 차고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기환자 목록에 준이의 이름이 뜨면 나는 내 마음속 체크리스트를 펼친다. 첫째, 방문 때마다 준이의 변화와 발달 상황을 체크하며 아주 작은 진보에도 기뻐해 주기. 둘째, 혹시 침이 날아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피하기. 셋째, 요일별 치료 스케줄에 맞춰 준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애쓰시는 할머니 하소연 들어 드리기. 넷째, 낮엔 일하느라 밤엔 준이 돌보느라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엄마, 아빠 격려하기.
진찰을 하고 필요한 처방을 내린 후 ‘준이 전용 체크리스트’까지 수행하려면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갑게 준이를 맞는다. 왜냐하면 준이는 평범한 동네 소아과 의사인 나를 특별한 의사 선생님으로 만들어준, 나의 VIP 환자이기 때문이다. 2400만 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난 특별한 존재인 준이가 나를 주치의로 선택해줬으니, 나는 얼마나 특별한 의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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