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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키워보니 다르더라

뒤늦게 아빠가 된 소아과 의사의 현실 육아

by 곽재혁

“밥 먹을 때 스마트폰 절대 보여주지 마세요!”

“밤 10시 이전에 꼭 재우세요!”

“배변 훈련은 18개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훈육은 8개월부터 시작해야 해요!”

“육아는 일관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옴표 안의 글귀들은 모두 내가 진료실에서 자주 했던 말들이다.

소아과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나름의 육아 전문가 행세를 해왔던 나는, 권위를 가장한 말투와 정색한 표정으로 저런 발언을 일삼곤 했다.


만약 지금 내게 타임슬립 능력이 생긴다면, 당장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가 그 입을 틀어막고 싶다.

그리고는 이렇게 한마디 쏘아줄 테다.


“제 아이도 직접 안 키워본 놈이 어디서 아는 척하고 지랄이야?”




마흔이 넘도록 자유로운 싱글라이프를 즐기느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된 후로도 8년 이상 미혼 상태였던 나는, 딱 그 기간만큼은 반쪽짜리 전문가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 미완의 전문가 시절엔 내게 부족한 게 뭔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육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여겼고, 내 아이가 생긴다면 정말 잘 키워낼 자신이 있는 준비된 아빠라고 믿었더랬다.

그런데 마흔하나의 나이에 결혼한 후 뒤늦게 아빠가 되어, 나와 집사람을 반반씩 닮은 딸을 낳아 직접 키워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론과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말이다.


이 지면을 빌려, 나는 우선 사과부터 하고 싶다.

멋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의사의 아는 척에 기가 막혔을, 혹은 기도 안 차는 울분을 느껴야 했을 부모님들께 회한이 담긴 사죄를 드리고 싶다는 말이다.


“고작 교과서나 육아 서적에서 얻은 알량한 지식만 가지고 아는 척해서 죄송해요!”

“제 아이도 직접 안 키워본 주제에, 24시간 아이와 시름하느라 고군분투하시는 부모님들을 감히 가르치려 들었던 제 과거를 용서해주세요!”




한데 주위를 둘러보면, 경험 없는 지식으로 멋모르는 소릴 지껄였던 과거의 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육아 지침을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엉터리 전문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밤낮 없는 육아 전쟁에 지쳐 가뜩이나 고단한 엄마·아빠들을 호통친다.


솔직히 딱 까놓고 말해서, 남성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성 전문가들조차도 정작 그분들의 아이는 친정어머니나 연변 이모님 등의 손에 키워지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베이비시터 없이 그분들의 왕성한 연구와 사회활동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니….

만약 그 전문가들이 24시간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이 주장하는 육아지침들을 현실에 온전히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매거진은 뒤늦게 아빠가 된 소아과 의사가 몸소 체험한 '현실 육아' 이야기다.

현역 소아과 의사로서의 중심과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느끼는 소회를 최대한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괜한 죄책감만 들게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공감어린 위로를 전하면서도 새로운 용기와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그런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아울러, 육아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실행 가능한 '현실 기반 육아 지침'도 제시해볼까 한다.


밤낮 없는 육아 전쟁에 지친 엄마·아빠가이 매거진을 읽으며 '나는 충분히 잘 하고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는 동시에, '앞으로 더 잘 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회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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