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창조한 인물들로부터 위로를 받다
'1년 전 오늘 게시한 게시물을 확인해보세요!'라는 인스타그램의 권고에 따라 1년 전 오늘의 게시물을 열어본 나는 깊은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딸아이와 집사람이 싱가포르 이모네에 가고 없는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 일정으로 후쿠오카에 갔던 날이 바로 1년 전 오늘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그 무렵에 서울의 벚꽃은 절정이었고, 후쿠오카는 이미 끝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딱히 후쿠오카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친 후에 출발해서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만한 해외여행지를 찾다 보니 (비행거리가 짧고 공항과 도심이 가까운) 후쿠오카가 선택되었을 뿐이었다.
그날 내가 후쿠오카에 가서 한 거라고는 숙소 체크인 후에, 호텔 앞에 있는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에 가서 라멘과 우설 구이를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취침한 게 전부였다. 본고장이라고 해서 기대를 가졌던 돈코츠 라멘 맛은 그냥 그랬고, 우설 구이 역시 별 감동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포장마차에 오롯이 혼자 앉아 벚꽃 문양이 그려진 아사히 맥주병을 마주하고 있던 그 순간은 생경하면서도 포근한 안식의 시간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1년 반 동안 매달렸던 웹소설 [걸그룹이 된 아재]를 완결한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고, 유료 연재를 통해 얻은 (많지 않은) 수익금을 몽땅 털어 종이책을 출간한 직후였다.
말하자면, 아직 내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할까?
당시에 내가 갔었던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는 내가 소설 속에 등장시켰던 배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소설에 등장시켰던 거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던 건, 실제로 가본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가 내가 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분위기와 상당히 일치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곳 어딘가에서 당장에라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했던 포장마차는 어느새 내가 창조해낸 소설 속 공간으로 바뀌고, 나는 내 사랑스러운 주인공들과 함께 둘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환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것은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내 두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은 진짜가 맞았다. 장장 18개월의 시간 동안 함께 울고 웃던 그 녀석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대책 없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나는 라멘과 우설 구이를 반절 이상 남겨둔 채로 맥주잔만 황급히 다 비운 후에 얼른 자리를 떠야 했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눈물을 미지근한 강바람에 말리며, 나는 강둑길을 한참 걸었다. 그리고선 나는 깨달았다. 이제 그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이젠 너희들을 놓아주어야겠다. 윤호, 주리, 한 대표, 그리고 핑크클라우드 멤버들! 이제 세상 속에서 알아서 잘 살아남길 바란다.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렇게 나는 내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가 창조한 소설 속 세계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고, 1년 반 동안 함께한 인물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게 바로 1년 전 오늘이었다.
인스타그램이 내 1년 전 기억을 들추어낸 김에, 나는 [걸그룹이 된 아재]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내가 쓴 글 읽는 걸 참 좋아하는 편인데, 솔직히 다시 읽어도 참 재미있으며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현재의 내게도 깊은 위로를 주었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나르시스트처럼 보일까?
하지만 그 대사를 읽으며 내가 위로를 받은 건 정말 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을 쓸 당시의 나는 카카오페이지의 '기다리면 무료(일명 기다무)' 프로모션 심사에서 탈락한 후 실의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절망에 빠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썼던 그 대사가 지금의 내게도 적잖은 위로를 준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일 아닌가?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성공이라 부른다면,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닌 포기입니다.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실패라는 판정은 두고두고 유보할 수 있고,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꿈을 꾸면 되는 거니까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냥 꿈만 꾸다 끝나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꿈도 없이 사는 것보단 끝까지 꿈꾸다 죽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삶 아닐까요?
혹시라도 제가 쓴 웹소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알려드려요!
[걸그룹이 된 아재] 카카오페이지 연재 링크 >>
http://page.kakao.com/link/51338301
[걸그룹이 된 아재] 종이책 링크 >>
http://www.yes24.com/Product/Goods/71381971?scode=032&OzSrank=3
http://www.yes24.com/Product/Goods/71117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