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진심으로 대화하고 있을까
언제부턴가 대화하는 '법'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도,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혹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들이 넘쳐난다. 매끄럽고 서로가 웃으며 끝나는 '좋은게 좋은' 대화를 만들어 가고 싶은 보편적 욕망. 나는 이 욕망이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보통 대화에서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에 속한다. 나는 종종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어린 단어들을 교정해주곤 한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나의 이런 습관에 익숙해서,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관대하게 넘어가주곤 한다.
언제부턴가 많은 경우에 입을 다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공적인 사이에서의 대화가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게 되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상대에게 다시 말해, 공적인 사이가 묶어 준 일시적인 관계일 뿐인 상대에게 에너지를 쏟기 싫은 탓이다. 스쳐 지나갈 상대에게 '주제넘게' 교정과 교열을 선사해 사회적으로 '찍히기' 싫기 때문이며, 튀어서 좋을 것 없다는 삶의 지혜를 손수 익히고 관찰한 탓이다.
매끄러운 대화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쉽다. 진심으로 대화하지 않으면 된다.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냥 "네"라고 하고 넘어가면 된다. 어차피 그와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며, 그가 나의 사적인 생각을 알 필요도 없기 때문에 대화는 쉽고 간단하게 종결된다. 1년이 지나도 나는 그의 사생활에, 그는 나의 업무 처리 이상의 사적인 생각을 알 수 없다.
최근에 내 대화습관을 돌아보면서, 내가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까칠한' 태도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아닌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류로 시작되는 내 언어들은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을 믿고 있을 때 더 도드라졌다. 그리고 방금, 누군가가 우리와 너희라는 이분법으로 우리 사이를 규정하지 말라는 그 정치적인 '교정'이 나에게 날아와 꽂힌 순간, 내가 느낀 불편함은 내가 신뢰하던 누군가에게 선사한 그 불편함과 동일한 것이었을까.
우리의 대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이 곧 영원히 함께하자는 말과 같다는 우스개소리로 마무리되며, 그 불편함을 긍정하며 끝났다.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걸고 불편함을 무릅쓰고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한 그 순간 그가 나를 믿고 있었다면, 우리 대화의 이 불편함과 긴장은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대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은 성숙하고 신뢰가 가는 누군가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