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도구화하지 않는 목적 없는 삶에 대하여
나는 목적 지향적인 사람일까.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겠다, 고 결정하면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발전한다고 여기며 보람과 힘을 느끼는 성격의 소유자인 탓에, 내 삶에서는 크고 작은 성취를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최소한 향후 5년간 움직이지 않을 마음에 드는 회사와 마음에 드는 직무에 자리를 잡고, 하고 싶었던 공부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일까.
해결해야 할 과업이 당장은 사라지자, 향후 5년 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동안 1년차에는 이 일을, 2년차에는 이 일을 해야지 나름대로 생각한 계획이 있기는 하다. 다만, 지금처럼 여유가 있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여유롭다보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 생경함은 다급하고도 절실한 1차적인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데서 오는 생경함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해왔던 시절의 내가 보내는 어색함의 사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적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동원해야 했던 나의 삶에서, 가장 쉽게 희생되었던 것은 아마도 '나'였던 것 같다. 돈이 없을 때는 항상 내가 먹을 것, 입을 것을 줄였고, 목표의 빠른 달성을 위해 나의 감정을 가장 많이 희생했었던 것 같다. 가장 싸고, 회복이 빠르고, 티가 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사회적으로도 폭넓게 용인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4당5락이라는 말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이 지배적인 담론이 결국은 '나'를 극한으로 희생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라는 것으로, 인간을 극도로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던가.
스스로를 도구화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의 하나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들은 대화, 감정 등 세부적인 디테일 그 자체다. 빠르게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이라는 목적지만 되뇌이면 된다. 기차를 타고 갈 것인지, 차를 이용할 것인지, 자전거로 종단 할 것인지의 방법론은 모두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과 그렇지 못한 방법으로 나눠져 답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선택지가 된다.
빠르고 정확한 답을 포기할 때, 과정 중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빛나고 의미를 갖는다. 커다란 목적 아래 사소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줄세우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크고 빛나는 것들을 위해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희생하며 때로는 무시하며 살아 왔는지.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나'의 일상의 회복을 위해, 작고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노동의 가시화를 위해, 크고 위대한 목표를 던져버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