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7일, 나와 아들은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은 먼저 출국해서 우리가 3년간 살게 될 집을 구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난 한 번의 이직을 거쳐 대기업에 입사했고, 도합 약 17~8년 차의 전형적인 K-직장인이자 풀타임 워킹맘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영어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나의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라는 의구심이 커질 때쯤 남편이 뉴욕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물론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다. 나름 남편과 함께 시기와 지역을 고심했고, 운이 좋게도 원했던 바 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투덜대긴 했지만 꽤 좋은 직장이었고, 내 나이에 이제 다시 이런 직장에 재취업하기 어려울 거란 사실을 알기에 불안한 맘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미국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의 3막이 시작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더 컸다.
미국에 정착한 지 1년 3개월 차가 된 지금, 사람은 역시나 적응의 동물인지라 나의 치열했던 사회생활이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아득하다. 도시락을 싸야 하고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의 학교와 운동 라이딩에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여기서도 바쁜 건지 가끔 의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누워서 들리는 새소리에 기분이 좋아지고 초록초록한 잔디와 나무, 그리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 괜스레 미소도 짓게 되는 이 삶에 나는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Inside Out에서 처럼,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 중 불안함이 가끔 고개를 들이밀기도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가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돌아가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보람차게 알차게 지낼 수 있을까? 등등...
이런 불안한 감정들이 나를 집어삼키게 하기보다는, 이런 감정들로 인해 나를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파에 누워서 한국 드라마를 보기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영어 공부를 하려고 노력해보기도 하고, 새롭게 도전할 자격증은 없을지, 참여해 볼 만한 활동은 주변에 없을지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하고자 한다.
내 아이에게 나의 애정과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온전히 현재에, 내 가족에 집중하려 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 이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난 분명히 지금 이 순간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임을 너무 잘 알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