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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Feb 23. 2023

영화: 천화

치매 노인의 죽음을 중심으로 비추어지는 한 여자의 삶

<천화>란 제목을 보고 어떤 소재의 영화인지 궁금했다. 만약 이 영화가 일본 영화이거나 중국계 영화라면 당연히 마작을 소재로 한 영화였을 것이다. 마작 게임에서 제일 높은 족보가 천화(天和)이기 때문이다. 포커로 치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정도라 할 수 있는데, 확률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이므로 마작을 소재로 한 것일 리는 없고, 감상해 보니 한 여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인 천화는 한자로 표기하면 “遷化”인데, “변하다”라는 뜻과 “죽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글 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인데, 왜 한자를 함께 표기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2018년에 제작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그리고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여자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야기인데, 이것이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고, 또 영화 전반부에 약간의 미스터리 성의 문제를 던지는데 그것이 어떻게 결말짓게 되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감독의 의도를 찾아보았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화(遷化)'는 한 치매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한 여인과 그녀의 곁에선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인간에겐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뿌리 깊은 원죄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비극이 아니고 해방이다. 원죄를 씻고 인간이 처음 창조될 당시의 완전한 생명으로 돌아가는 축복의 절차이다. 그리고 죽음으로 가는 통로에서 겪게 되는 고통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치러야 할 각자의 할당된 몫이다.”

이상과 같은 감독의 말은 무슨 뜻인지 정확이 이해가 되지 않고, 또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도 과연 이 영화의 이야기가 위와 같은 감독의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인가 선뜻 동의되지 않았다. 모두 내가 영화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 치자. 


제주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린 문호라는 노인이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끄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간병을 하는 윤정(이일화 분)이 언짢은 기색도 없이 그 노인을 잘 돌봐주고 있다. 


윤정은 40대 초중반 정도의 여성으로 짐작되는데, 제주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윤정이 제주도에 여행을 왔다가 정착하게 된 일본인이라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다른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정확한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바느질 공예가 직업인데, 사람들에게 공예를 가르치는 강습비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다시 문호를 만난 윤정은 깜짝 놀란다. 말쑥한 신사복을 차려입은 그는 단정한 노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본 정신으로 돌아왔다. 문호는 윤정과 만나면서 자신의 자난날을 후회한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집을 나와 떠돌면서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무책임하게 살았던 일을 윤정에게 하나하나 털어놓는다. 그런 뒤 얼마 후 문호가 사망한다. 

문호의 아내라고 하는 수현이라는 여자가 윤정을 찾아온다. 그녀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남편의 통장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돈이 윤정이라는 사람 앞으로 송금되어 왔다고 하면서, 제주도에 산다고 하는 그 윤정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윤정에게 본인이 아닌가 물어온다. 수현은 특별히 남편과 윤정이라는 여자를 책망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여자인지 알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렇지만 윤정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윤정은 서귀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종규(양동근 분)를 만난다. 종규는 겉 멋만 잔뜩 든 허세가 가득 찬 사이비 예술가이다. 칠 줄도 모르는 기타를 가지고 다니며, 소설을 쓴다면서 매일 술을 마시는데, 사실 그가 쓴 소설은 하나도 없다. 종규는 주위의 여자들에게 닥치는 대로 들이대면서 껄떡대는 사내이다. 그런 종규가 윤정에게도 접근한다. 처음에는 예술가라 그러려니 생각하고 과한 행동도 그런대로 지나쳤으나,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자 윤정은 정색을 하고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자 종규는 거친 욕설을 퍼붓고는 떠나버린다. 


문호나 종규 같은 남자들이 모두 떠난 뒤에서 윤정은 담담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살아간다. 


그런데 문호가 생전에 정기적으로 돈을 부쳐주었다는 그 윤정이란 여자는 누구일까? 문호는 왜 돈을 부쳐주었을까? 주인공 윤정과 아무 관계도 없는 동명이인의 또 다른 윤정인가? 감독은 의문만 던져놓고도 무책임하게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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