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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07. 2021

드라마:무사시대를 여는겜뻬이전쟁(3)

<義經>(요시쯔네), 신화가 된 영웅

일본인들에게 역사상 인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압도적인 다수가 미나모토 요시쯔네(源義經)를 꼽는다.


요시쯔네는 미나모토 가문의 우두머리인 미나모토 요시토모(源義朝)의 서자(庶子)로 태어나나, 요시토모는 타이라 가문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고 만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요시쯔네는 패배한 장수의 아들로 처단당할 형편이었으나, 어머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겨우 목숨을 구한다. 교토(京都) 제일의 미녀인 어머니는 아버지와 가문의 원수인 타이라 가문(平家)의 우두무리인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의 첩이 되어, 요시쯔네는 원수를 계부(繼父)로 알고 자란다.


그리고 요지쯔네는 타이라 가문에 맞서 군사를 일으킨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를 도와 타이라 가문을 쓰러트리고 요리토모가 카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형인 요리토모에 반기를 들다가 젊은 나이에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이 이야기에 또 요시쯔네의 측실인 아름다운 여인 시즈고젠(靜御前)이 등장하여 슬픈 사랑 이야기를 만든다. 이렇게 요시쯔네의 생애는 영웅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요시쯔네는 또 무예가 출중하고, 지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잘생긴 미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크고, 얼굴이 희며, 마치 미녀와 같은 예쁜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요시쯔네는 거의 1,000년 전의 사람으로, 사진이 남아있을 턱이 없고 따라서 그의 용모는 글이나 그림으로써 전해 내려올 뿐이므로 확인할 길은 없다. 그의 용모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글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이 검다는 기록물도 있고, 또 뻐덩니였다는 기록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요시쯔네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그려진다. 뭐 미소년이었던 추남이었던 그것이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므로 미소년이었다는 판타지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요시쯔네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역사상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다루어져 왔다. NHK 대하드라마에서도 이미 그에 관한 드라마는 몇 편인가 방영된 바 있다. 드라마 <義經>(요시쯔네)는 2005년 일 년 동안 방영되었다. 앞에 소개한 <平清盛>(타이라노 기요모리)보다 7년 앞서 방영되었지만, <요시쯔네>는 역사적으로는 이 보다는 조금 뒷 이야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平清盛>에 이어서 소개한다.

미나모토 가문(源氏)의 젊은 우두머리 <미나모토 요시토모>(源義朝)는 동년배의 타이라 가문의 우두머리인 <타이라노 기요모리>와 의기투합하여 우정을 나눈다. 그러던 중 요시토모는 당시 일본의 수도인 교토에서 최고의 미녀라는 <토키와 고젠>(常盤御前)을 측실(側室), 즉 첩으로 맞아들인다. 호겐의 란(保元の乱)에서 요시토모와 키요모리는 손을 잡고 권력을 쟁취했으나, 곧 둘 사이는 틈이 벌어져 싸움을 벌이는데, 이를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이라 한다. 이 싸움에서 미나모토 가문은 패하고, 승리한 기요모리는 전후 처리, 즉 미나모토 가문 잔당 숙청작업에 착수한다. 적장의 자손은 모두 처단하는 것이 이 시대의 룰, 기요모리는 요시토모의 자식들을 가차 없이 죽인다. 그렇지만 요시토모의 장남인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는 기요모리의 처의 간청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관동(關東)의 이즈반도伊豆半島)로 유배를 간다.


한편 <토키와 고젠>은 두 아들과 강보에 싸인 요시쯔네를 안고 도망가지만, 결국 잡혀 아들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키요모리의 측실이 된다. 요시쯔네의 형들은 절로 출가를 보내고 어린 요시쯔네는 기요모리를 아버지로 알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이때 씨 다른 여동생인 노(能)도 태어난다. 타이라 가문에서는 틈만 있으면 요시쯔네를 죽이고자 갖은 계략을 꾸민다. 그렇지만 요시쯔네는 겨우 이를 피해, 절로 출가를 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던 중 요시쯔네는 교토의 오조 다리(五条大橋)에서 우연히 승병(僧兵)인 벤케이(弁慶)를 만나고, 이 둘은 주종의 관계를 맺는다. 이 오조 다리의 만남은 일본에서 의기투합하는 사람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토키와

여하튼 계속되는 타이라 가문의 암살 시도에 위협을 느낀 요시쯔네는 벤케이와 함께 오슈(奧州) 지방, 즉 지금의 동북지방 방면으로 도망을 간다. 도망 중에 요시쯔네는 이후 목숨을 걸고 자신을 따르는 여러 명의 부하들을 만난다. 그리고 오슈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의 도움을 받아 착착 힘을 기른다.


이러던 중 이즈반도에 유배를 가있던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는 그의 처 마사꼬(政子)와 처가의 도움을 얻어 타이라 가문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이 소식을 들은 요시쯔네는 부하들을 이끌고 요리토모에 가담한다. 이후 미나모토 가문과 타이라 가문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미나모토 가문은 파죽지세로 타이라 가문을 패퇴시킨다. 마침내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단노우라(壇の浦) 해전에서 타이라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킨 미나모토 가문은 일본의 권력을 장악한다.


이때부터 전부터 싹트던 요리토모와 요시쯔네 간의 반목이 점차 격화된다. 요시쯔네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요시쯔네를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던 요리토모는 요시쯔네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천황으로부터 벼슬을 받은 것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질책한다. 두 형제는 어려서는 서로 한 번도 본 적도 없었고, 요시쯔네가 요리토모에게 합류함으로써 겨우 얼굴을 본 사이다. 그러니 형제간의 정이란 것도 별로 있을 리도 없다.


요리토모로부터 질책을 받게 된 요시쯔네는 천황의 명을 빌어 형인 요리토모를 역모의 수괴로 규정하고 그를 칠 것을 선언한다. 분노한 요리토모는 모반자로 요시쯔네 체포령을 내리게 되며, 요시쯔네를 부추기던 천황도 꼬리를 내리고, 요시쯔네를 역적으로 규정한다. 결국 요시쯔네는 동북지방으로 도주를 하나, 추격하는 요리토모의 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자기 부하의 손에 의해 죽게 된다. 그의 나이 서른넷.


앞에서 소개한 <平清盛>(타이라노 기요모리)는 정치, 군사 등 권력투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義經(요시쯔네)는 요시쯔네 개인의 역경과 삶, 그리고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편이다. 그의 측실 시즈고젠(靜御前)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요시쯔네가 죽은 후 요리토모는 시즈에게 연회에서 춤과 노래를 보여달라고 한다. 시즈는 그 연회에서 요시쯔네에 대한 사랑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요시쯔네와 벤케이

이 드라마를 보고 떠 오르는 생각 하나. 만약 이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요시쯔네는 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형인 요리토모에게 반기를 드는데, 정말 아무 대책 없이 반기를 든 것이다. 요리토모는 최고 권력자인 동시에 군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그런 형에게 대항하려면 병력을 확보하든지, 아니면 뜻을 같이할 장수들을 구하든지 어쨋던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여야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달랑 천황으로부터 받은 종이 쪼가리 한 장을 믿고, 최고 권력자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요리토모가 체포령을 내리자 당연히 이렇다 할 저항 한번 못하고, 줄행랑을 치고 만다.  


이러한 짧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마친 요시쯔네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영웅이 되어 전설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쓰여졌으며, 지금도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영웅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는 죽지 않고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들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기도 한다. 요시쯔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요시쯔네는 죽지 않고 외국으로 피신하여 나중에 몽고로 가서 <칭기즈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심심찮게 굴러다닌다. 몽고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다.

요지쯔네의 측실 시즈고젠

그럼 길고 길었던 겜뻬이의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나모토 가문의 우두머리인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는 <타이라> 가문을 멸망시킨 후 수도인 교토에 진출하지 않고, 동경 부근에 있는 카마쿠라(鎌倉)에 눌러앉아 막부(幕府)를 세우고, 쇼군(將軍)이 되었다. 바로 일본 최초의 막부인 <카마쿠라 막부>이다. 나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江戶) 막부는 일본 전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했지만, 이 때는 첫 막부이다 보니까 천황과의 권력 구도가 불확실하였다. 그래서 수도인 교토 부근에서는 천황이 권력을 행사하고, 그 동쪽으로는 대체로 막부가 권력을 행사하는 구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제도를 통해 권력을 유지, 계승하려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일본 역사상 손꼽히는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요리토모(源頼朝)와 요시쯔네(義經)를 비교하자면, 요리토모는 냉철하고 노회한 정치가인데 비하여 요시쯔네는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요시쯔네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은 받지만 정치적, 역사적으로 비중 있는 인물은 못된다. 대신 형 요리토모는 그 정치적 역량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권력을 잡은 미나모토 가문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역시 순탄한 앞길이 놓여있었던 것이 아니다. 요리토모의 처 마사꼬(政子)는 스스로 요리토모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또 그 집안인 호죠(北条) 가는 전력을 다해 요리토모를 지원하였다. 그러므로 마사코와 호죠 가는 카마쿠라 막부에 대해 충분한 지분을 가진 셈이었다. 요리토모가 죽자 마사꼬가 권력을 잡고 마음대로 쇼군(將軍)을 갈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쇼군인 자기 아들을 죽이고 다른 아들로 쇼군을 삼기도 하였다. 결국 쇼군 3대에 이르러 미나모토 가문은 스스로 쇼군을 내세울 힘조차 잃어버리고, 조정, 즉 천황에게 쇼군의 직을 이를 사람을 보내주도록 요청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권력의 쟁취보다는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좋은 교훈이다.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데 막부(幕府)는 무엇이고 쇼군(將軍)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전쟁에 나서는 장군은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즉 모든 작전을 즉시에 지휘하여야 하므로, 전황을 모르는 황제의 명을 기다리다가는 전쟁에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나라나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일본에서 천황제 아래 가장 높은 벼슬은 태정 대신(太政大臣)이며, 군부에서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세이이다이쇼군)이 가장 높았다. 정이대장군은 요즘 말로 하면 합동참모총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줄여 “쇼군”이라 하였다. 막부란 쇼군이 지휘 하에 전쟁터에서 작전회의 등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이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계엄사령부” 쯤 되는 조직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쇼군은 천황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막부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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