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대하드라마 <平清盛>(타이라노 기요모리)는 2012년 1년 동안 방영되었다. 타이라노 기요모리는 귀족들이 지배하였던 일본의 정치권력을 무사들이 빼앗아 옴으로 해서 무사정권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타이라노 기요모리가 무사정권을 세운 이후 19세기 말 명치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기 전까지 근 700년 동안 일본은 무사들이 통치하여 왔다.
12세기 후반 귀족들은 중앙권력을 독점함과 아울러 전국 각지에 자신들의 영지인 장원(莊園)을 만들어 부를 축적하였다. 전국 각지에 도둑이 들끓어 귀족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무사들을 고용하였고, 이렇게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무사들도 점차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무사들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여러 무사 가문들이 등장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타이라 가문(平家)과 미나모토 가문(源氏)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두 가문은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일본 천황가(天皇家)의 말예(末裔)로 알려져 있다. 천황가의 곁가지로서 천황과 약간의 혈연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장원을 가진 귀족들은 천황가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무사 가문을 고용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무사들의 세력이 커졌다고 하지만, 그들의 권력과 부는 귀족이나 천황가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그들은 귀족으로부터 무시당하였고 천대받았다. 마치 고려시대 무인정권이 들어서기 전 무신들이 문신들로부터 받았던 천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드라마 <平清盛>(타이라노 기요모리)는 기요모리가 천황가의 버려진 자식으로 태어나 타이라 가문에서 천대를 받으면서 자라나 마침내 타이라 가문을 장악하고, 이후 무사 정권을 세워 모든 권력을 타이라 가문이 독점하여 권력과 부를 누린다. 그는 일본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하지만, 그 꿈은 자꾸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나라”라는 이루지 못한 꿈을 남긴 채 세상을 뜬다. 타이라 가문의 기둥이었던 기요모리가 세상을 뜨자, 타이라 가문은 미나모토 가문과의 싸움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마침내 가문은 멸망하고 세상은 <미나모토> 가문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드라마 <平清盛>의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우리나라 역사드라마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일본 역사 드라마의 경우 대부분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내레이터는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시대 배경, 각 등장인물이나 세력들의 입장 등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준다. 드라마 <타이라노 기요모리>에서는 타이라 가문을 무너트린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가 내레이터로 등장하여, 그의 시점에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점도 흥미롭다.
이 드라마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무사는 왕가(王家)의 개”라 할 정도로 무사가 천대받던 시기에 키요모리(清盛)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시라카와(白河) 법황(法皇)의 낙윤(落胤)으로서 태어나, 타이라 가문의 우두머리로 성장할 때 까지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법황이란 무엇이며, 또 낙윤이란 무엇인가? 옛 일본에서 천황이 살아서 자리에서 물러나 그 후계자에게 천황 자리를 내주면, 앞의 천황은 상황(上皇)이 된다. 상황이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면 이를 법황이라 한다. 그러면 천황은 권력에 뜻이 없어서 상황이 되고, 법황이 되는가? 그게 아니다. 권력을 좀 더 효과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그런 방법을 택한다. 즉, 상황이나 법황이 되어 천황을 뒤에서 조정하면서, 권력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속셈에서 이러한 편법이 이용된 것이다. 낙윤(落胤)이란 지체 높은 사람의 “숨겨 놓은 자식” 혹은 “사생아”를 일컫는 말이다.
제2부는 타이라 가문의 우두머리가 된 키요모리가 미나모토 가문의 미나모토 요시토모(源義朝)와 손을 잡고, 골육상쟁을 통해 귀족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오고, 다시 동지였던 미나모토 요시토모와 권력 투쟁을 벌여 미나모토 가문을 멸망시키고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타이라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 그리고 무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략과 음모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 등이 얽히고설켜 권력투쟁을 벌이는 모습이 흥미롭다.
제3부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태정 대신(太政大臣)이란 최고 관직에 올라 권력을 독점한 키요모리를 중심으로 타이라 가문은 영화의 극을 이룬다. 타이라 가문의 사람들의 입에서는 “타이라 가문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오만한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키요모리는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 거기서 태어난 왕자가 천황에 즉위하여 안덕 천황(安德天皇)이 됨으로써 기요모리는 천황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기요모리의 처는 손자인 어린 천황을 스스로 키운다.
권력의 정점에 선 키요모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지만, 그가 벌리는 여러 사업들은 생각만큼 잘 진전되지는 않는다. 그런 와중에 키요모리는 병으로 사망하게 되고, 이후 타이라 가문은 미나모토 가문에 의해 멸망당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키요모리는 늘 “새로운 나라!”, “새로운 나라?”를 외치고 있는데, 그 새로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 정치”를 역설해왔던 안철수 씨가 생각난다고나 할까?
타이라 가문은 귀족들의 천대를 참고 견디며 귀족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빼앗는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한 타이라 가문은 귀족들의 뒤를 밟는다. 즉 자신들이 귀족이 되어, 시와 노래를 즐기며, 춤을 추고 연회로 날밤을 새우는 귀족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 이러한 <타이라> 가문을 보고 <미나모토> 가문의 사람들은 “평가 놈들은 허약한 귀족들로부터 권력을 빼앗고는 스스로 귀족이 되려고 귀족 흉내를 낸다”라고 비웃는다.
사치와 허영, 그리고 귀족 놀음에 빠져있던 타이라 가문들의 장군과 군사들은 미나모토 가문과의 전쟁에서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연전연패한다. 평가의 무사들은 물론 말 조차도 주인인 무사들이 훈련을 태만히 하는 바람에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지경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결국 타이라 가문은 기둥인 키요모리가 죽자 바로 미니모토 가문에 권력을 빼앗기고, 그리고 집안은 멸망한다. 키요모리가 그만큼 갈망하였던 “새로운 나라”는 한갓 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겜뻬이(源平) 전쟁에서 타이라 가문은 연전연패하면서 쫓겨 마침내 단노우라(壇の浦) 바다에서 마지막 해전(海戰)이 벌어진다. 이 싸움에서 타이라 가문이 패하자, 키요모리의 처인 타이라노 토키꼬(平時子)는 손자인 어린 안덕천황(安德天皇)과 일본 천황가의 보물인 <쿠사나기의 검>(草薙の剣)를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함께 죽는다. <쿠사나기의 검>이란 일본 건국신화로부터 비롯한 천황가의 보물인 <삼종의 신기>(三種の神器) 가운데 하나인 보검(寶劍) <아메노무라쿠모노 쯔루기>(天叢雲剣)를 말한다. 삼종의 신기에는 이 외에 거울과 곡옥(曲玉)이 있는데, 이때 보검이 수장됨으로써 <삼종의 신기> 중 현재는 결국 거울과 곡옥만 남아있다.
이 드라마에서 키요모리는 통이 크며, 호탕하고, 거침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행동이나 태도에서 격식이나 틀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이 내키는 대로 일을 추진하며, 지략보다는 행동을 앞세운다. <요시쯔네>에서는 그는 또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까?